[편집자 주] 재개발 사업은 과거부터 땅값, 입주비용 상승 등으로 수십 년 동안 살던 지역주민을 몰아내는 사회 양극화의 전형적인 문제였습니다. 대구시 중구 명륜지구(50,117㎡, 남산동 명륜로11길 일원)도 2006년부터 재개발이 추진됐습니다. 이에 따라 소규모 지주, 영세민을 위주로 재개발을 막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명륜지구는 주민 연령이 높아, 행정적 절차를 따르는 것에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 재개발 반대 주민들은 재개발추진위원회 해산동의서를 받고 있으나, 실제 토지 소유자와 연락하고 신분증 사본을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 소유자 1/2 이상의 해산 동의서를 받기가 어려운 상태입니다. 주민들은 오는 4월까지 결격사유 없는 해산동의서를 받아야 합니다. <뉴스민>이 명륜지구 주민들을 찾아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고복자(80, 가명) 할머니는 50년 전부터 명륜지구에 뿌리내리고 살았다.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 잿빛 시멘트로 외벽을 친 집이 이어져 한 뼘 너비의 골목길을 만들었다. 회색빛 시멘트는 흘러내려 골목길 바닥으로 번져있다. 골목길을 헤매다 도착한 20평 남짓한 집은 갈색 합성수지로 외벽을 쳐 도드라졌다. 내부는 어딘가 습하고 퀴퀴했지만, 할머니의 자잘한 손때가 탄 흔적이 산적했다.
지난 17일, 집에 들어서자 할머니가 반갑게 맞이했다. 집 안 작은 방에는 특이하게도 불상 세 개가 모셔져 있다. 할머니는 매일 새벽 불상 앞에 찬물 한 사발을 떠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설날을 앞둬서인지, 찬물 대신 사과, 배, 강정 등 간소한 제사상이 차려져 있다. 이곳에서 할머니는 결혼 생활 11년 만에 사별한 남편 대신 슬하 5남매가 수갑 안 차게 해 달라. 몸 성하게 살다 가게 해달라고 빌었으나, 최근 할머니는 소원이 바뀌었다.
“···죽는 날까지 집에서 쫓겨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2006년 시작한 명륜지구 재개발 사업은 주민 동의로 시작했다. 당시 할머니도 재개발에 찬성했다. 아니, ‘젊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신청하라는 바람에 마치 쌀 받으러 보도연맹에 가입하듯 재개발이 뭔지도 모르고 서류를 넘겼다. 이후 재개발의 폐해가 알려지며 찬성했던 일부 주민이 반대를 시작했고, 할머니도 제출한 인감증명서를 반납받으려 했으나 2009년 4월 수립된 정비계획을 철회할 수는 없었다.
“젊은 사람들이 하라기에···재개발이 뭔지도 몰랐다”
“순리에 따라야지, 재개발해야 하면 해야지, 살 길만 만들어 달라”
할머니는 구청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신뢰한다. 특히, 윤순영 중구청장은 할머니가 두 번이나 뽑은 사람이다. 불상 앞에서 세 번째 당선을 빌기도 했다. 한 번은 남산동 경로당에 윤순영 중구청장이 왔을 때였다. 잠깐이라도 재개발 문제를 꺼내고 싶었으나, 아무래도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물어보지는 못하고 ‘세월을 헛살았다’는 자괴감에 혼자 울었다.
‘못 배웠다’는 자격지심이 할머니 내면에 자리 잡은 듯 했다. 어린 시절부터 글 한 자 배울 시간이 없었던 할머니는 스스로를 ‘이름 석 자도 못 쓰는 일자무식’이라고 했다. 충청도에서 대구시 감삼동으로 시집온 할머니는 ‘강도한테 칼 맞아’ 일찍 남편을 보내고 보따리장사로 5남매를 먹여 살렸다. 처음 감삼동 판자촌에 왔을 때, 생활비를 보태려 인삼을 시레기 엮듯 엮어 집집마다 방문했다. 하지만 쫓겨나기가 부지기수였고,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선 감삼못 물 한 바가지도 핏덩어리 같은 자식들 먼저 먹은 다음에 남은 걸 처리했다.
이곳 남산동 명륜지구에 와서는 조금씩 나아졌다. 60년대 남산동으로 옮기고 나서도 ‘새끼들 배 안 굶기려’ 입에 넘어가던 것도 뱉어서 먹이는 ‘눈물로 이 집 열채는 떠나가 버렸을’ 정도의 각박한 사정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나마 주민들과 관계가 좋았다. 당시 3통 5반 통장은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이후 소식을 들었는지, 밀가루 3되, 보리쌀 3되, 월남쌀 1되를 받을 수 있는 배급표를 챙겨다주기도 했다. 배급을 받고 소박한 행복감을 느꼈고, 막내딸이 맹장 수술하고 복막염에 걸렸다는 사정을 듣고 통장이 펑펑 울어 위안을 받았다. 그랬던 통장도 지금은 세상을 떠났는지 아닌지도 모를만큼 세월이 흘렀다.
파출소 한 번 안 보내고 어렵사리 키운 자식들을 출가시켰다. 자식들은 설날마저도 찾아오지 않아 허전했지만, 그나마 불상을 들여놓아 외로움을 덜었다. 외로울 때면 불상이 놓인 방을 찾았다. 딱히 종교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기도채로 들여놓고 ‘땅바닥을 기어 다니며’ 기도했다. 팔십평생 몸도 마음도 소진한 할머니. 지금은 ‘어차피 빈 손으로 가는 인생’이니 여생을 쫓겨 다니지 않게만 해달라는 할머니가 말을 잇는다.
“구청장님이 경로당에 왔을 때, 구청장님, 저 좀 살려줄 수 없습니까, 남산 2동을 좀 살려줄 수는 없습니까. 그 말이 그렇게 하고 싶었어. 그 생각밖에 안 나더라고. 구청장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좋아했는데···내가 집도 절도 없어지는데 날 좀 살려줄 수 없겠냐고. 나 안 죽게 해주고, 가야 하면 조그만한 방이라도 하나 사서 갈 수 있도록. 이 나이 들어서 남의 집 생활을 어떻게 해? 받아 주는 사람도 없어. (재개발이 되면)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죽어야 하나 살아야 하나? 신경을 쓰니 몸도 더 아파오고. 부처님과 이 집을 없애면 나는 그대로 탈진이라도 할 거 같애. 어느 동으로 갈지도 모르고···어떻게 살아야할꼬? 그게 참 어려운 숙제일세”
그러면서 할머니는 수납공간으로 쓰는 작은 방의 농장을 주섬주섬 뒤져 병 하나를 내어 놓는다. 250ml들이 황갈색 유리병에 흰색 알약이 가득 차 있다. 병에는 ‘진통제’라는 손 글씨가 쓰였다. 할머니는 그것이 ‘먹으면 가는 약’이라고 한다. 좁은 방 안에 할머니의 한탄이 울린다. 이 좁은 방에 할머니의 삶과 그 끝이 함께 있다.
“내가 이래 살아서 안 되겠다 싶어서 마음을 강하게도 먹어봤어요. 이거 털어먹고 물 마실까 생각을 한 두 번 한 게 아니에요. 남의 집 생활하게 되면 나는 그냥 이 자리에서 세상을 떠날 거라요. 공갈협박이 아니구마. 더 살면 뭘 하겠습니까. 아무 필요 없는 것이라. 기가 찹니다. 이제는 준비가 됐습니다.”
<대구 명륜지구 재개발과 관련된 기사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