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을 하던 청도 삼평리 주민과 대책위 회원들은 벌금 폭탄을 맞았다. 지난해 7월 21일 새벽 한전이 공사를 강행하자 이를 정면으로 맞서 저지했기 때문이다. 약 20여 명이 총 1억여 원에 달하는 벌금으로 삼평리 주민과 대책위 회원은 모두 불법인간이 됐다. 불법인간이 된 이들의 목소리를 뉴스민에 연속해서 싣는다.
여섯번째 주인공은 김진근 노동당 경북도당 사무국장이다. 그는 지난해 7월 21일 송전탑 공사가 기습적으로 강행되던 날 삼평리로 향했다. 경찰의 통제 탓에 멀찍히 차를 세우고 현장으로 향하던 그에게, 경찰은 '차를 견인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결국, 그의 차는 경찰에 의해 견인됐고, 그는 차를 뒤로 한채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삼평리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불의가 상식인 시대, 불법은 의무다'
이번 삼평리 투쟁과 관련하여 2번의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2번 다 맥없이 끝났다. 다음에 다시, 다음에 다시 하자며.
그리고 다음 재판 기일을 잡았다. 나에겐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판사, 변호사, 검사의 결정 하에.
나의 재판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1978년으로 돌아가야 간다.
1978년, 모두가 유신정권의 압제 속에 갑갑하게 살아가던 시대, 모두는 침묵을 강요받았다. 침묵은 하나의 명령이었고 이를 어기면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탄압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한 독재자의 생각을 넘어 제도로, 법으로 정착되었다. 그중 하나가 전원개발촉진법이고, 내 재판이야기는 이 법으로부터 시작된다.
전원개발촉진법은 전원개발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무시해도 좋다고 승인해주는 법이다. 개발이라는 핑계로 주민들의 의견 ‘따위’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발전’을 위해 민주주의는 제거되었다. 본말이 전도되면 비상식은 상식이 된다. 30년간 우리의 상식은 그렇게 형성되었다.
2009년 3월 어느 날, 삼평리에 알 수 없는 잔칫상이 차려졌다. 그 옆엔 퐁퐁도 있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한전이 철탑 세우기 위해 전파가 얼마나 흐르는지 설명해준다고 차려놓은 잔칫상이었다. 자신들도 뭔가 꺼림칙했던 걸까. 공사는 그렇게 퐁퐁과 함께 시작되었다. 하지만 퐁퐁으로 제아무리 빡빡 문지른 들, 비상식이 상식이 되지는 않는다. 1978년의 망령은 그렇게 삼평리에서 되살아났다.
2014년 3월, 나는 처음으로 삼평리를 찾았다. 앞서 2년 전부터 밀양 소식을 알고 있었고, 밀양송전탑 반대 집회에도 종종 참여하면서 삼평리 얘기를 살짝 알고 있던 터에 근처? 구미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찾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자주는 아니지만 몇 번 찾아뵀고 지역에서 모금캠페인을 하기도 하였다. 대책위가 만들어진 지 1년 됐다는 3월 어느 날엔 장승굿을 하며 막걸리로 목을 적시고 햇살에 몸을 녹였다. 삼평리의 봄 햇살은 따스했다.
2014년 7월 21일 새벽,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삼평리 침탈. 어서 삼평리로 와주세요..”
1시간 반이 지나 도착한 삼평리는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우리가 함께 꾸몄던 삼평리평화공원은 전쟁터가 되어있었고, 현장으로부터 300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는 경찰이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갓길에 차를 멈춰 세우고 걸어가려고 하니, 경찰은 내게 차를 견인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차로 접근할 수도, 차를 두고 접근할 수도 없었다. 경찰이 제공한 유일한 선택지는 당장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결국, 내 차는 견인되었다.
비상식이 상식이 된 공간엔 엄포와 협박, 연행만 있을 뿐 염치도 양심도 없었다. 삼평리평화공원 앞에 천막을 세우려 하니 경찰은 도로 교통을 방해한다며 이를 철거했지만, 그 뒤로는 멋쩍은 기색도 없이 뻔뻔한 경찰차들이 차도를 막아서고 있었다. 경찰의 비호 아래 한전은 주민 앞에 당당했고 주민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천막은커녕 평화공원 앞에 앉아있는 것도, 사진을 찍는 것도,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리는 것도 모두 불법이 되었다. 민중의 지팡이 경찰은 그렇게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땅을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먹으리”
1978년의 망령은 주민들의 항의를 불법으로 만들었고, 항의하는 시민들을 ‘빨갱이’로 내몰았다. 모든 원죄는 빨갱이로부터 기인하며 모든 해결은 빨갱이의 제거로 귀결되었다. 빨갱이는 국민도 한 민족도 인간도 아닌 단지 제거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그렇게 수십 명의 시민들이 연행되었고, 할머니들은 매일같이 실신했지만, 공사는 멈춤이 없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인종은 3부류인지도 모른다. 힘 있는 자, 힘없어서 복종하는 노예, 힘없는데 저항하는 빨갱이.
정의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이 정의인 시대다. 힘이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부정의한 것이고 불법이 된다. 우리는 힘이 없다는 이유로 동지 노예의 손에 이끌려 경찰서로 왔다.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예에게,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은 오롯이 주인에게 있다. 자유가 박탈되어 버린 노예는 주인의 입맛을 거스르는 동지 노예를 붙잡아 곤장을 때렸다. 내가 아픈 것은 엉덩이가 아니라, 동지 노예의 자유가 박탈된 손아귀다.
2014년 8월 7일, 나는 경찰에게 연행됐다.
진근: 저는 무슨 죄로 연행되나요?
경찰은 말이 없다.
진근: 무슨 죄로 연행되는지 고지해 달라구요!
경찰: 업무방해죄요.
진근: 무슨 업무를 방해했나요?
경찰: 선동했잖아요!
진근: 말만해도 죄인가요?
경찰: 조용히 갑시다!
진근: 말만해도 죄냐고요?!
경찰: 예!
나는 입이 있어 말을 좀 했다는 이유로 연행되었다. 과거 일본에서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됐다는 그 법, OECD에서 개정 요구까지 했던 유례없는 악법, 업무방해죄로 말이다. 잠시 유치장에 있다가 조사를 받으러 나왔는데 경찰이 나더러 공무집행방해라고 했다. 죄목이 바뀐 것이다.
진근: 예? 업무방해가 아니고요? 전 무슨 죄죠?
경찰: 조사받으면 나오니깐 일단 조사부터 합시다.
행위 이전에 처벌이 있었다. 불법은 조성되었다.
2015년 2월 6일 오후3시, 대구지법 신 별관 302호 피의자석에 앉았다. 지난번 재판 때, 별다른 내용 없이 끝났던지라 오늘은 좀 진전이 있으려나 하는 생각에 기대 반 긴장 반으로 재판장에 들어섰다. 판사는 내게 어떤 질문을 할까 생각하며 이 질문 저 질문에 맞는 답변을 미리 그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뭐람. 판사와 변호사 간에 몇 번의 대화가 오가더니 다음 기일을 잡는다고 했다. 나는 누구인가...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마치 연극의 들러리 같은 느낌이었다. 이 연극의 스토리는 대강 이렇다. 애초에 법은 저항하는 존재를 불법으로 등치시키고 사후적으로 죄목은 끼워 맞춰진다. 그리고 재판장에서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 간의 적절한 연기를 마친 후 적당한 형량을 부여하면 이 연극은 끝이 날 것이다. 막이 내려지고 관객들은 박수를 친다. 한 관객이 웃고 있다. 한전이다.
이미 경기장의 룰은 정해져 있었고 심판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경기는 뻔하게 흘러가는데 그곳에 힘없는 누군가, 아니 평범한 누군가가 뛰어들면 심판은 휘슬을 분다. ‘당장에 나가시오!’그 마저도 모두 시나리오에 들어가 있다. 적당히 고민하는 뉘앙스의 표정을 지으라는 지문과 함께.
이 연극의 주인공은 정부와 사법부, 그리고 한전이다.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짜여둔 틀에만 맞춰 연기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주제가 되고 그들이 주인공이 되는 연극을 다시 써야 한다.
2015년 3월 20일 나는 다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몇 차례의 재판을 더 거친 후 아마도 몇백만 원의 벌금을 받고 재판은 끝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송전탑 공사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항소를 하고 벌금을 모으기 위해 후원주점도 할 것이다. 그리고 송전탑과 관련된 악법들을 바꾸고 우리 사회에 다시는 제2의 삼평리가 없기를 염원할 것이다.
1978년 유신악법의 해소 없이 이 연극은 끝날 수 없다. 비상식이 여전히 상식인 사회에서 이 연극은 끝날 수 없다. 삼평리 할머니들이 눈물 아닌 웃음을 되찾고, 삼평리에 전쟁 아닌 평화가 자리하는 그 날까지, 우리는 비상식이 상식인 이 사회에서 불법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재판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의가 상식인 시대에, 불법은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