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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5년02월17일 13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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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66)
마가복음 9:2-9 "구름에 덮여라"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오늘 성경말씀 내용인 산상변모이야기는 예수가 높은 산(변화산)에 올라가서 천상의 모습으로 변한 사건을 말한다.

▲<무지의 구름>은 관상기도 영성수련의 원조이다.

구름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다.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시내산 위에 올라가 사십일을 머물렀다.(출애굽기 24장)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 구름이 야웨의 전에 가득했다.(열왕기상 8장) 이 말씀들에서 구름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 임재를 상징한다. 그래서인가, 영성수련에서도 구름이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무지의 구름>이라는 책이 있다. 관상기도 입문서이다. 14세기 무명의 저자가 썼다. 이 책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유명한 영성수련가 웰리엄 메닝거는 이 책 <무지의 구름>을 백 번 넘게 읽고 수천 명에게 <무지의 구름>에 나오는 단순한 기도 방식을 가르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웬만한 영성수련자들이 이 책 <무지의 구름>을 인용한다. 

<무지의 구름> 저자는 두 가지 구름에 대해 말한다. 하나는 '망각의 구름'이고 다른 하나는 '무지의 구름'이다. '망각의 구름'은 우리가 온갖 피조물들 위에 깔아야 하는 구름이다. 이유는 이렇다. "그대가 생각하는 대상은 그대가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 내내 그대 머리 '위에서' 그대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 이외의 다른 무엇이 그대의 마음에 깃들이면, 그만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무지의 구름, 77쪽』
한마디로 말해서 모든 만물은 이 망각의 구름 아래다 묻어두어야 한다.

'무지의 구름'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구름이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한 영적여정에 나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만이 그의 마음을 차지하기를 열망한다. 그러나 그는 시작하자마자 어둠밖에 발견하지 못한다. 하나님 자체를 구하나 하나님을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어둠 속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을 뿐이다. 하나님은 어둠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지의 구름이다.

[사진=https://www.flickr.com/photos/seokchanyun/]

그럼, 어떻게 이 무지의 구름, 즉 하나님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을 뚫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한편으로 치워두고, 내가 생각할 수 없는 그것(하나님)을 내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을 족히 사랑할 수는 있지만,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는 그분을 붙들고 차지할 수 있지만 생각으로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우리 앞에 놓인 일에 있어서는 그것마저도 끌어내려 망각의 구름으로 덮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의 타오르는 사랑으로 그대 위에 드리워진 그 어둠을 꿰뚫어 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니 간절한 사랑이라는 날카로운 화살로 두꺼운 무지의 구름을 맞추되, 결코 포기할 생각 따위는 하지 마십시오."(78쪽)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이지, 생각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서 생각은 무익하다. 오직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는 삶의 문제들이나 필요가 생겨서 기도의 동기로 삼는 일이 많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자신을 대면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입만 열면 무엇을 달라는 청원기도는 절제할 필요가 있다. 기도도 사랑의 대상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산상변모사건 이야기가 전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제자들은 예수가 부활하신 다음에야 비로소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명백히 깨달았다. 그러면서 그전에 자기들이 스승을 따라다닐 때를 생각해보니, 예수의 인품과 언행과 행적이 비범하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산상변모이야기는 예수가 부활 이후뿐만 아니라 부활 이전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증언한다.

예수는 중요한 일을 할 때는 꼭 세 명의 제자만 동행한다. 회당장의 딸을 살리실 때도 그랬고, 체포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실 때도 세 사람만 데려갔다.

"부름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마태 22:14) 이 말씀처럼 결정적인 때에 뽑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교회 다닌다고 다 신자 아니고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도 아니다. 회개의 절실함과 구원의 기쁨없이 다른 이유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많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정치성향과 신앙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우리의 안목과 경험으로 알다시피 악한 자도 많다. 예수보다 맘몬을 더 끔찍이 모시는 사람도 허다하다.

이처럼 교회 다니는 일이 허물투성이라면 교회는 뭐하러 다니나? 어떤 의미가 있는가? 여러 부정적인 일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신다. 그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구원의 자리에 이르도록 기회를 주고 기다리는 중이다.

사람은 어떻게 구원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나? 변화산의 체험이다. 하나님의 현존경험이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을 반성적으로 회고하자면, 인간적인 동기만 쟁쟁할 뿐이다. 하나님 현존경험이 없다. 하나님의 현존 속에 있을 때, 진정 자신도 거듭나는 기회가 된다. 그러려면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체험과 그에 따른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

▲변화산 성화 [사진=http://theologia.kr/]

오늘 성경말씀에서는 세 제자가 변화산에서 하나님현존 경험으로 거듭난다. 베드로와 두 제자는 높은 산에서 예수가 새하얗게 빛나는 것과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와 말을 주고받는 것을 봤다. 오늘 성경말씀에 나오는 이야기 소재들-엿새 뒤에, 동반자가 세 명, 산, 구름 등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신 이야기(출 24장) 소재와 비슷하다. 또 예수의 모습이 변한 것, 옷이 새하얗게 빛남, 초막 같은 소재는 묵시문학에서 종말서술 때 쓰는 소재들이다. 즉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의 권세를 가진 종말론적 존재라는 뜻이다. 예수가 말을 주고받은 사람이 엘리야, 모세인 것도 그런 뜻이다. 엘리야는 승천했고,(열왕기하 2:11) 모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신명기 34:6) 엘리야, 모세가 죽음에 있어서 초월적 존재인 것처럼, 예수의 죽음도 그러하리라는 암시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예수께 말한다. "랍비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랍비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9:5) 베드로는 자신이 본 광경이 너무나 좋아서 이 체험을 영원한 종말의 축복으로 끌어가고 싶어한다.

비록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또 겁에 질려서 말하는, 부족한 신앙체험이지만, 여하튼 베드로는 자기 나름대로 다른 사람이 전혀 모르는, 새로운 신적경험을 했다. 베드로의 경험은 산 아래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경험이다. 평범한 일상도 좋지만, 그 일상이 깨달음도 없고, 절실함도 없고, 그냥 공중권세잡은 자(에베소 2:2)가 장악한 일상이라면,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죄가 침범하지 못하는 거룩한 곳, 그분이 계신 곳까지 뚫고 나가는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한다.

세 제자들의 천상경험은 마침내 하나님의 소리까지 듣는다. 구름이 일어나서, 그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가 9:7) 비슷한 형태가 예수 세례 때도 있었다. 예수께서 물속에서 올라오시는데, 하늘로부터 소리가 난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마가 1:11) 세례 때는 예수만 소리를 들었는데, 변화산에서는 제자들이 직접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다.
 
원래 사람이 하나님의 현존을 겪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것이 모습이든 소리든 영광이든. 그런데 제자들은 무사하다. 그럴 정도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말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의 현존을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은총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표는 내 자아가 하나님 현존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해야 한다. 지상경험만 있으면 겉핥기에 불과하다. 사람관계에서는 피치 못하게 이해충돌, 호불호가 발생하지만, 모든 인간적인 이유를 뛰어넘어 그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자신만이 고백할 수 있는 신적경험을 하시라. 그것이 바울처럼 꼭 셋째 하늘에 올라간 것(고후 12:2)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죄성으로 이루어진 거짓자아투성인 것을 뼈저리게 자각하고 그래서 용서가 절실하고 그래서 주님께 회개하고,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받는 구원의 여정을 겪어야 한다. 그 후에 우리는 예수로부터 남다른 비밀을 받은 자로서, 다시 산 밑에서 정의와 평화의 증언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현존이 충만하시기를 빈다.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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