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성민 씨는 자신의 영화 데뷔작 <Black&White(2001)>를 14년이 지나서야 볼 수 있었다. 대구에서 연극을 시작한 이성민 씨는 2001년 송의헌 감독의 독립영화에서 ‘도둑1’역을 맡았다. 대형 영화관에 상영되지 않았고, 비디오 테이프로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성민 씨가 데뷔작을 처음 만난 건 2월 11일 대구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에서다. 이날 정식으로 문을 연 오오극장은 지역의 독립영화 창작자들과 관객의 소통을 목표로 삼았다. <Black&White(2001)>의 송의헌 감독과 배우 이성민 씨는 오오극장 홍보대사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송의헌 감독은 “대구에서 독립영화를 하기가 참 힘들었다. 장비가 없어 서울에 빌리러 갔다가 졸음운전 때문에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 지원을 받아서 손을 벌리고 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제 돈 가지고 영화하겠다고 떠났다가 아직 못 돌아왔다”며 “다양한 영화를 상영할 곳이 이제 생겼다. 이상한 영화, 정말 터무니없는 영화가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데뷔작품을 처음 보게 된 이성민 씨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는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화이>, <시>를 제작한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도 이날 개관식에 참석해 기쁨의 박수를 보냈다. 그러고 보면 대구는 많은 영화인을 배출했다. 이성민 씨는 대구 연극판에서 10년을 활동했다. 또, 한국 최고의 예술영화로 평가받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배용균 감독도 대구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윤순영 중구청장과 문무학 대구문화재단 대표, 대구시 관계자도 이날 개관식에 참석했다. 오오극장의 개관을 축하하며 대구가 독립영화계의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길 원했다. 하지만 오오극장 설립에 관청에서 보탠 돈은 한 푼도 없었다.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최태규 사무국장, 미디어핀다 권현준 대표, 대구민예총 한상훈 사무처장이 부지 선정에서 공사까지 도맡아 했다. 그리고 오오극장에 뜻을 보태준 시민의 힘이었다.
그렇기에 관청이 나서서 오오극장에 예산을 지원하기 바라지는 않는다. 오오극장 측은 영화 제작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이 다 올라갈 때까지 불을 켜지 않겠다고 했다. 대구시를 포함한 관청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영화에 미쳐서 터무니없는 영화를 만들어 갈 독립영화인들을 기억하고 아끼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폐관 위기에 처한 예술영화전용관 동성아트홀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동성아트홀도 중구에 있다)
<Black&White> 이후 영화판을 떠난 감독 송의헌과 대구를 떠난 이성민. 제2의 이성민, 송의헌이 나와서는 안 되지 않는가. 어처구니없는 영화를 만드는 이들과 그 어처구니없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이 늘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적 다양성만큼이나 중요한 다양한 문화가 숨 쉬는 대구, 그 첫발을 오오극장이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