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뉴스민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노동자의 삶과 노동, 투쟁을 연재합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힘을 모아낸 여성노동자, 노동조합은커녕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어려운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2주에 한 번씩 십여 차례 연재하고자 합니다. 제보와 문의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뉴스민 (070-8830-8187, newsmin@newsmin.co.kr)
오전 9시가 되면 집안 창문을 활짝 연다. 바닥에 떨어진 지저분한 것들을 주워담고, 책상이나 화장대 정리를 시작한다. 흰옷과 색깔 옷을 구분해 세탁기를 돌리고, 바닥 청소를 시작한다.
박순선 씨(60세)는 “눈에 보이는 일은 정리부터 싹 다 한다. 책상에 책을 어질러 놓으면 우리가 막 책꽂이에 꽂는 게 아니고, 책상 위에 반듯하게 정리하고, 깨끗이 닦고 이렇게 한다. 청소, 주방일, 세탁, 있는 거는 다 한다”며 본인의 하루를 소개했다.
바닥 청소가 끝나면 설거지, 가스레인지 닦기 등 주방 정리를 하고, 욕실 정리도 한다. 오후 1시가 되면 모든 일을 끝낸다. 얼른 점심을 먹고, 다음 집으로 이동해야 한다.
순선 씨는 “목욕탕은 힘들다. 정리가 안 되면 보기가 싫잖아. 정리가 돼 있어야 집안에 표시가 확 나지. 큰 거 마루 하나 닦는 거야 싹 닦으면 훤하게 표시나 나지. 장식 많은 집은 일도 잘 안 된다. 하나씩 붙은 거 일일이 손대고 닦으려면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5년 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하던 사업이 잘 안되자 스스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순선 씨의 첫 직업이다.
순선 씨는 “이 나이에 뭘 하겠나. 천지 오라는데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 텔레비전 자막을 잠깐 보니까 이런 게 나오데. 대구여성회관에서 할 때부터 했다. 나이 많은 우리 같은 경우에는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인데도, 돈 벌면서 하려니깐 굉장히 어렵더라”고 말했다.
5년 전 대구여성회관에서 ‘홈핼퍼(Home-Helper)’라는 이름으로 전문적으로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집에서 늘 하던 일이었지만, 막상 직업으로 하게 되니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솔직히 좀 부끄럽더라. ‘띵동’하고 들어가니까 사람도 낯설고, 좀 서먹한 느낌이 들면서 이걸 정말 해야 되나 생각이 들데. 그런데 작업복 딱 갈아입고 들어가니까 하게 되더라”며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5년 전 ‘홈핼퍼’였던 순선 씨는 3년 전부터 ‘가정관리사’가 되었다. 현재는 전국가정관리사협회 대구지부장이다.
집주인은 사모님 아니고 ‘고객님’
가사도우미, 가정부, 파출부, 식모 아니고 ‘가정관리사’
SBS 일일드라마 ‘달려라 장미’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다. 황회장 집에서 일하게 된 나연주가 “가정관리사 나연주에요”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가정부는 하대하는 느낌이잖아요. 전문가로 대우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에요”라고 딱 부러지게 말했다.
황회장은 “하시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강하네요”라며 웃음을 지었고, 옆에서 지켜보던 황여사는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지었다.
가사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는 가사도우미, 가정부, 파출부, 식모 등 여러 가지의 이름으로 불린다. 나연주의 대사처럼 왠지 모르게 하대하는 느낌이 든다.
 |
▲위 황회장, 아래 왼쪽 황여사, 오른쪽 나연주(SBS 방송화면 갈무리) | | |
순선 씨는 “나도 가정관리사가 뭔지 몰랐다. 이 집에 온 지가 3년 정도 됐다”고 말했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집안에 가사와 돌봄을 제공하는 전문직업인’을 가정관리사라고 칭한다.
이어 “파출부 온다. 우리 집에 도우미 온다 하는 거보다 가정관리사가 온다 하니까 듣는 내 자신도 파출부보다는 훨씬 낮잖아. 보통 다 이모라고 부르지. 그런데 그분들도 생각이 바뀌어야지. 시대도 바뀌는데”라고 말했다.
가정관리사라는 호칭 속에는 가사노동자를 존중하고, 노동자성을 인정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 대구지부는 예비사회적기업 형태로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협회에서 가정관리사를 직접 고용한다. 근로계약서도 작성하고, 4대보험도 든다. 협회 회원들이 함께 교육도 받고, 직접 홍보 활동도 한다.
순선 씨는 “협회를 통해 우리는 월급을 받는다. 일이 없는 날은 사무실에 와서 이렇게 홍보 작업을 같이한다”며 “그렇게 하는 게 좋다. 고객님이 어느 날 갑자기 오지 마라 하면 일자리가 뚝 떨어지잖아. 또, 많이 오라고 한다고 해서 나는 한 사람인데 다 갈 수는 없으니까. 협회를 통해서 조율해야지”라고 말했다.
가정관리사는 한 집에서 기본 4시간 일한다. 4시간에 일당 4만 원, 시간이 지나면 연장수당을 받는다. 그렇게 한 달이 쌓이면 협회로부터 월급 형태로 임금을 받는다. 기본급과 식대, 교통비, 일한 만큼 추가수당을 받는다.
조순란 대구지부 팀장은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이고, 추가적으로 식대, 교통비가 들어간다. 본인이 일한 만큼 10% 추가수당도 있다”며 “4시간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일하니까. 여기서 온 힘 다 써서 바짝 하고 그다음 집 가면 힘들다. 웬만한 노동보다 노동강도가 세다. 파트타임으로 하면 매일 8시간 씩 못 한다”고 말했다.
가정관리사협회에 등록하고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안된 김소은 씨(가명, 50대 후반)는 4시간 일하고 칼퇴근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소은 씨는 “60평 넘는 집은 4시간 하니까 안 되더라. 빨래를 4번 돌렸다. 색깔이 있는 거, 흰 빨래 일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시간 안에 다 못하겠더라고. 자기들이 (시간 다 됐다고) 말해주면 모르는데, 돈 더 달라 소리도 못 하겠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순선 씨도 처음에는 칼퇴근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나도 처음에 2년 정도는 일 많이 해도 말 안 하고 그냥 집에 왔다”며 “하던 거 남겨두고 올 수는 없으니까 나도 1~20분은 더 해준다. 그런데 30분 이상 넘어가면 추가비 받아야 된다”고 말했다.
소은 씨가 “그러다 잘리면 어쩌냐”며 걱정하자 순선 씨는 “한 시간 더 해주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 그러다 보면 당연한 거처럼 생각한다. 오지 말라고 하면 다른 데 갈 생각하고, 시간 되면 옷 입고 나와야 된다. 다른 사람이 가면 자꾸 그렇게 해야 되니까”라고 답했다.
소은 씨는 아직 고객님이라는 호칭도 익숙하지 않다. 늘 사모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을 낮춰왔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다 되어도 일이 끝났다고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조순란 팀장은 “예전부터 이렇게 일을 했으니까 ‘고객님’하면 어려워할 수 있는데, 고객님이라고 하는 게 맞다. 정확하게 4시간이 내 노동시간이라는 거에 대해서 인지해주고 해야 된다”고 소은 씨에게 당부했다.
순선 씨는 “나도 예전에는 사모님이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그렇게 안 하지”라며 “내가 일해서 돈을 받는 건데, 자꾸 생각해도 내가 왜 감사한 지 이해가 안 가.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바꿨어. 돈을 받았으니까 뭐라고 답변은 해야 되는데 생각을 하니까. 잘 쓰겠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내 마음이 뿌듯하더라”고 말했다.
가정관리사라는 호칭으로 어느새 자부심이 생긴 순선 씨다.
고용노동부 가사노동 양성화 정책 실효성 있을까
가사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분명해야
지난 2011년 6월, 국제노동기구(ILO)는 가사노동자를 위한 괜찮은 일자리 협약(가사노동자 협약)을 채택했다. 가정관리사, 베이비시터, 정원사 등 가사노동자의 정기휴일 보장, 산재 시 보상, 노조 결성 등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또, 고용인이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때, 급여ㆍ노동조건ㆍ노동시간 등을 명시한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가사노동자를 가사사용인으로 규정하고, 법 적용을 제외하고 있다. 맞벌이 가정의 증가로 가사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지만, 이들이 제대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박은정 대구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전국적으로 가사, 돌봄노동자는 30~5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4대보험도 안 되고, 옆집에서 그냥 일 해주는 경우도 있으니까 공식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1월 13일, 고용노동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비공식 부문인 가사노동을 공식화하는 ‘가사서비스 이용 및 종사자 고용촉진에 관한 특별법(가칭)’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가사서비스 이용권을 도입하고, 정부인증을 받은 기관은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고, 이용자는 기관으로부터 서비스를 제공받는 공급구조로 개편한다는 내용이다. 세재혜택 부여, 사회보험료 일부 지원 등을 통해 직접 고용을 유도한다는 내용도 담길 예정이다.
박은정 대표는 “정부 발표난 거 내용을 살펴봤는데, 이용자가 카드를 선불로 사서, 시간당 1만 2천 원이더라고. 4대보험 넣고, 임금을 최저임금보다 더 주면 효과성은 있을 것 같긴 한데, 아직 어떨지 잘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어 “정부가 내놓은 게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내놨다. 기관에는 세재혜택을 주겠다고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가사노동자를) 쓰는 사람에 대한 지원은 없다. 사실 가사노동에 대한 부분이 보편화되려면, 맞벌이 부부나 한부모 가정 등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노동자협회와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고용노동부 발표가 난 뒤 성명서를 내고, “단순히 세수확보를 위해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거나, 통계상 고용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만 부각될 경우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며 “가사노동의 사회적 인식 개선이라는 성평등적 관점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순선 씨는 “아직까지도 집안일 다른 집에 가서 해준다 하면 그걸 왜 하느냐는 사람들 흔히 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무슨 일이라도 다 하라는데 괜찮다”라며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보였다.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이번 고용노동부의 발표는 반가운 일이다. 순선 씨의 말처럼 그들의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함께 만들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