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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5년02월09일 18시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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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이 삼평리로 간 까닭은?
[연속기고] 불법인간 (3)

보헤미안 tkoffer@naver.com

[편집자 주]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을 하던 청도 삼평리 주민과 대책위 회원들은 벌금 폭탄을 맞았다. 지난해 7월 21일 새벽 한전이 공사를 강행하자 이를 정면으로 맞서 저지했기 때문이다. 약 20여 명이 총 1억여 원에 달하는 벌금으로 삼평리 주민과 대책위 회원은 모두 불법인간이 됐다. 불법인간이 된 이들의 목소리를 뉴스민에 연속해서 싣는다. 

세 번째 주인공은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경북도청 회의실에서 농성 중일 때 방문해 피켓을 정리하다 연행된 '보헤미안' 씨다. 그는 핵없는 사회를 위한 대구공동행동 회원으로 탈핵집회를 나가다 송전탑 문제를 알게 됐다.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찾아 하던 그는 얼떨결에 연행이 됐고, 기소가 됐다. 아직도 그는 왜 자신이 기소됐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할매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 손에서 자라지 못하고,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그래서 처음 삼평리 할매들을 보았을 때 내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당신도 중년이라면 내 어머니가...그보다 젊다면, 내 할머니가 떠오를 것이다.

내가 처음 삼평리 할매들을 알게 된 것은 물레책방에서 열린 사회문제를 다룬 무료영화제였다. 그날 내 앞줄에는 초록색 삼평리 송전탑 반대 운동 조끼를 입은 분들이 나란히 앉아계셨는데, 그 조끼에는 뽀글이 파마를 한 할매가 지구를 지키고 계신 듯한 재미있는 만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앞뒤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던 나는 무심코 삼평리에서 할매들이 뭔가 재밌는(?) 일을 벌이고 계신가보다 하고 가졌다.

-화요시

▲'핵 없는 사회를 위한 대구 공동행동'의 화요시. ⓒ보헤미안

그 후 내가 매주 참여하고 있는 탈핵집회 ‘화요시’에서 청도 삼평리와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처음으로 삼평리와 밀양 현장에 가보게 되었다.

지난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핵 없는 세상을 위한 대구시민행동’은 매주 화요일마다 대구백화점 앞 또는 한일극장 앞에서 노후 원전 폐쇄와 방사능에 오염된 식재료 학교급식 반대 등을 내걸고 집회를 열었다. 벌써 100회가 넘었다. 핵 없는 세상을 바라는 대구시민 및 대구지역시민단체의 순수모임이다.

나는 평소에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후쿠시마 핵사고를 보면서, 이건 나 혼자 아끼고 잘한다고 해서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좀 더 알고 행동하기 위해 ‘화요시’ 활동을 시작했다.

-청도와 밀양
막상 청도와 밀양의 현장에 가보니 재밌는(?) 일보다는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길바닥에 나앉아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쓰며, 몸부림을 치고 계셨다.

처음에는 나이도 많고 몸도 불편하신 어르신들이 도대체 왜 저러고 계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도대체 누가 저분들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생각했다.

-송전탑 반대운동
그곳에선 생계와 일상에 바쁜 자식을 대신하여, 할매들이 정부와 한전의 부당한 토지수용과 공사강행에 맞서 몸과 마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정부나 한전은 모든 것을 건 할매들의 ‘투쟁’에 대한 중대성이나 심각성은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투정(?)’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어 보였다.

솔직히 삼평리나 밀양의 송전탑 반대 운동은 어르신 특히, 할매들의 헌신적인 투쟁이 아니었다면,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삼평리와 밀양의 송전탑 반대 투쟁은 ‘할매’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됐다. 할매들은 송전탑 반대 투쟁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매주 참여하는 탈핵집회와 더불어 송전탑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밀양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대구·경북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청도 삼평리 송전탑 문제와 할매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매주 ‘화요시’에서 피켓을 들고 서있거나 반대서명을 받고, 탈핵과 송전탑 문제에 대해 대구시민들에게 알리고, 가끔 청도와 밀양의 현장에 가보는 것이 전부였다.

- 도청 점거 농성
그러다가 지난 2014년 8월 18일, 청도 송전탑 문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삼평리 할매들은 김관용 경북도지사에게 송전탑 문제 해결을 요청하며 경북도청 농성에 들어갔다.

그 다음날 ‘화요시’도 도청에서 농성 중인 할매들을 찾아뵙기로 했고, 나도 경북도청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라서 드나드는 사람들과 함께 별다른 제지 없이 할매들이 농성 중인 경북도청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연행
그곳에서 나는 거기 계신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찾았다. 모여 있는 쓰레기를 치운 후 현장에 있던 송전탑 반대 피켓을 챙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할매들과 현장에 있던 사람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건장한 형사 두 명이 피켓을 챙겨들고 서있던 내 팔짱을 끼고 연행하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으로 경찰에 연행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

그렇게 대구북부경찰서로 이송되어 지문을 체취당하고, 조사를 받고 당일 오후에 풀려났다. 조사 과정은 강압적이지 않았지만, 내가 왜 연행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도청회의실은 경북도청이 할매들에게 도지사실에서 이동을 요청해 제공한 장소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서 밖으로 나오니 연행자 명단에 내 이름을 보고, 할매들과 현장에 있던 분들은 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묻고 있었다. 투쟁보다는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오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하던 나는 눈에 별로 띄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튼 처음 경찰에 연행되는 ‘색다른 경험’을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일이 잊혀질 때쯤 본가로 북부경찰서에서 연행 사실에 관한 통지서(?)가 날아와 부모님이 놀라셨다. 다 지난일이고 해결된 일이니 안심하시라고 말씀드렸지만,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검찰조사
그런데, 2014년 정리할 것 많고, 바쁜 연말에 갑자기 ‘검찰청’에서 전화가 왔다. 처음엔 보이스피싱 전화인줄 알고, 속으로 “이것들이 어디서 약을 팔어”하고 있었는데, “삼평리...경북도청...북부경찰서...연행...”어쩌고 하는 게 보이스피싱이 아니었다. 검사실로 출두하라는 것이었다.

평생 처음 ‘출두’해서 조사를 받고, 삼평리 송전탑 반대 운동 관련 연행자들이 모여서 만든 ‘기소자모임’에서 모임을 갖자는 문자를 받았다. 문자 내용은 ‘삼평리전투 기소자 총회’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안사건
기소자모임에 나가서 이미 연행 당일 풀려나고 훈방되어 종결된 줄 알았던 일이 왜 이리 되었는지 물으니 누가 이 일은 ‘공안사건’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公安? 천안문 광장에 총 들고 깔려있는 그 꽁안? 대한민국이 공산국가도 아니고, ‘공안사건’이라니...? 이 무슨 소리인가...난 도저히 모르겠다.

지금도 나는 왜 ‘기소’가 되었는지, 다른 데서 연행되었던 사람들처럼 벌금이 몇백만 원씩 나올지 그 벌금을 내지 못하면, 감옥에 가야할지 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다. 골치가 아프다.

-멍석말이춤
얼마 전 새해 벽두 인터넷에 올라온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의 글 "벌금 70만원? 차라리 나를 감옥에 가둬라"에 격하게 공감한다.

백기완 소장은 2011년 12월 3일 '민중대회'와 2012년 5월 10일 '쌍용차 문제 해결, 대통령 면담 요구 기자회견'때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을 하고 기자회견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원으로부터 벌금 70만원을 부과받았다.

“박근혜 정부가 이제는 나의 발밑에 널빤지를 깔아놓고 발등을 대못으로 찍었어. 그럼 널빤지가 걸려서 뛸 수도 없고 못을 뺄 수도 없어. 그걸 빼려고 막 몸부림을 치잖아. 그게 바로 멍석말이춤이야. 그 춤 전문가가 바로 나야!"라며 “합법을 위장한 돈의 탄압”이라고 표현하였다.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무고한 사람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이 멍석말이춤을 추어야만 한단 말인가? 나 또한 이 춤을 추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저 삼평리 문제나 함께 연행되었던 분들에 관한 문제나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평화적으로 해결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2015년 2월 2일 -보헤미안

보헤미안 tkof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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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찰, 검찰 조사기: 나는 선량한 시민이다
뜨거웠던 삼평리의 여름을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나의 살던 고향은...단지 삼평리에 살았을 뿐인데
두렵다, 그러나 두렵지 않다.
나의 재판이야기: 불의가 상식인 시대, 불법은 의무다
이것은 나의 사랑 이야기이다
민주공화국과 삼평리
3월6일을 기다리는 삼평리 친구들의 외침:악법은 어겨서 깨뜨리리라!
삼평리의 봄, 우리의 봄은 성큼 다가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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