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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64)
사도행전 19:1-7 "자아와 하나님 현존"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기독교회는 지금 주현절을 지키고 있다. 주현절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날이다. 1월 6일을 시작으로 여섯 주간이다. 동방교회는 주현절에 예수 탄생을 축하한다. 특히 아기 예수가 이방인인 동방 박사들을 통하여 메시아임을 드러낸 것을 기념한다. 주현절 때, 러시아정교회는 예수가 세례받은 것을 기념하여 한 겨울 찬물에 침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현절 러시아정교회 침례 모습 [사진=http://russiainfo.co.kr/]

주현절은 2세기에 시작했고, 성탄절은 4세기에 주현절에서 갈라져 나왔다. 그런데 주현절보다 성탄절이 더 유명하다. 그 이유는 서방교회의 정통기독론이 승리하면서 4세기 중엽부터 성탄절이 급속히 퍼져나간 까닭이다.

기독교 절기이므로 매우 순수하고 고결하고 모든 사람의 뜻이 일치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서방교회와 동방교회가 각각 성탄절과 주현절을 중시하는 것에서 보듯이, 절기 하나에도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가 작용하는 게 실상이다. 하지만 종교적 절기에 이처럼 인간의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고 실망, 비관할 필요는 없다. 원래 사람 사는 세상이 순수 백퍼센트보다는 불순, 혼탁이 더 크게 작용하고 흐르면서 역사가 됐기 때문이다. 새해 정초에 동해바다 일출경험이 있는 분은 알 것이다. 밝은 바다 수평선 위에 시원하게 해가 솟으면 좋겠지만, 대개는 구름이 잔뜩 끼거나, 해가 구름에 가려 안 보일 때가 더 많다. 그래도 해는 뜬다. 자연도 이럴진대, 사람 사는 세상에서 깨끗한 모습만 보려고 하는 건 욕심이다.

오늘 성경말씀은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3차 선교여행에 들어가면서 주 활동무대가 되는 에베소교회 이야기이다. 기독신자들에게 익숙한 두란노 서원이 에베소교회의 전신이다. 오늘 성경말씀 바로 이어서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바울이 회당에서 하나님나라를 강론하는데, 몇몇 유대인이 바울이 말하는 도를 집요하게 비난한다. 할 수 없이 바울은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자유로운 공간을 찾아 나간다. 그 공간이 두란노 서원이다. 바울은 이곳에서 이 년 동안 날마다 강론을 했다. 그래서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그리스 사람들이 모두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 두란노서원은 당시 꽤 유명한 대중교육 장소였다. 바울의 신학 얼개가 이때 자리를 잡고, 활짝 꽃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바울이 이 년 동안 공개강좌를 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에베소교회 창립멤버들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에베소교회 유적 전경 [사진=http://www.ephesus.ws/]

로마 제국 아시아 주의 수도여서, 온통 로마와 그리스문명 일색인 도시를 기반으로 살던 제자들이 바울을 따라 나온 것은, 에베소의 종교정치문화사회관계에서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임을 커밍아웃하는 것이다. 그렇게 공개할 수 있었던 믿음의 동기는 무엇인가?

에베소교회 초기 목회자는 아볼로이다. 알렉산드리아 태생으로 아볼로라는 유대 사람이 에베소에 왔다고 했다.(행전 18:24) 그는 말을 잘하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다. 알렉산드리아 태생이라는 말이 그의 자질을 엿보게 해 준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로마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왔다. 알렉산드리아는 수십만 권의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이 유명할 정도로, 학문이 왕성한 도시다. 당시 인기 있는 학문은 수사학인데, 아볼로가 말을 잘했다는 것은 수사학에 조예가 깊었음을 암시한다.

그런 인텔리 아볼로가 에베소 교인들에게 예수에 관한 일을 열심히 말하고 또 정확히 가르쳤다. 그런데 요한의 세례밖에는 알지 못하였다고 했다.(행전 18:25)

이게 좀 이상하다. 요한의 세례를 알면, 요한이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누가 3:16)고 한 말도 잘 알 텐데 말이다. 궁금하지만 성경은 아볼로가 어째서 예수의 세례는 몰랐는지에 대해 어떤 단서도 말하지 않는다.

당연히 아볼로의 가르침을 받은 에베소의 제자들도 요한의 세례를 받은 선에서 딱 멈춰있다. 바울이 묻기를 "여러분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니,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하였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슨 세례를 받았습니까?" 하니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에베소의 제자들은 구원의 도와는 좀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오순절 사건 때 베드로와 사도들이 거리에 나가서 대중설교를 하자, 사람들이 듣고는 마음이 찔려서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묻는다. 그때, 베드로가 말한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행전 2:38) 라고 했다. 베드로의 말은 구원공식에 가깝다. ①회개하고 ②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받고 ③죄용서를 받고 그 열매로 ④성령을 받는다. 이 공식에 비추자면, 에베소 제자들은 ①회개만 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말하기를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라고 했다. 그 뒤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이 제자들은 마음이 열려 있어서, 즉시 바울을 통하여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바울이 안수하자, 곧바로 성령이 그들에게 내리셨다. 성령이 임한 표식으로 그들은 방언으로 말하고 예언을 했다. 모두 열두 사람쯤인데, 예수의 유대인 제자 열둘처럼, 이들은 이방인 제자 열둘의 충분한 상징이 됐다.

에베소 교인들은 평생 요한의 세례만 알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헛된 믿음, 헛된 인생을 살 뻔했다. 자기 열심에 빠져서 자족하고 신앙행위를 하지만, 치명적 결함인 줄 모르고 그냥 갈 뻔했다. 그런 점에서 에베소의 제자들은 전적으로 하늘로부터 구원의 선물을 받았다.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일이다.

그럼 에베소 교인들이 주 예수 이름으로 세례받고 성령을 받은 이 사건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이끄신다. 사람은 다만 은총을 입고 그 영역에 들어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에 동의하면 하나님의 현존에 함께 있는 것이고, 인식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은총과 무관하게 그냥 자기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 치명적 결함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자기 방식의 믿음에 대해 의심하고 분별해야 한다. 자기 경험에서 나온 인식과 판단, 결정들에 대해 관찰해야 한다. 내 경험을 절대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가, 그 경험에서 나온 인식을 매우 신뢰할 수 있는가, 정말 나의 판단은 옳은가에 대해 분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할 일은 자신을 부인하는 일이다.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누가 9:23) 이 말씀을 따르자면, 분별의 첫째 요건은 자기 부인이다. 여기서 자기는 거짓자아이다. 필히 거짓자아를 부인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자아에 대해서는 별로 의심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자아에 대해 틀림없는 확신을 하고 산다. 그러나 그렇게 자기가 신봉하는 자아는 거짓자아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내 자아 속에는 자기중심과 이기적인 속성이 있고, 그것이 오랜 세월 습관이 되고 숙성된 것이 자신도 모르게 자기정체성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단 자기 판단 경험 인식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현존(지금여기 나와 함께 계심)에 머물지 않고(동의하고 수용하기), 내 의지와 노력에서 나오는 모든 마음의 생각과 행위는 거짓자아를 강화한다. 유감이지만, 거짓자아는 진짜 내가 아니다. 내가 진짜 지향해야 할 자아는 참 자아이다. 참 자아는 하나님의 현존에 동의하고 그분께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지각할 수 있나? 고요한 시간을 갖고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관찰해 보라. 침묵하고 있으면 어찌나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지!

[사진=http://blog.daum.net/kfmcapuchin]

내 소소한 일상과 관련한 생각부터, 사회적 요구, 도리, 책임 같은 고상, 거창해 보이는 생각까지. 오랜 시간 숨어 있었던 과거의 아픈 상처부터 미래의 뜬구름 잡는 공상까지. 말 그대로 오만가지 생각이 내 속에 있다. 하나님은 그 여러 생각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 조용히 들어와 있기를 원한다. 성령은 그것을 돕는 보혜사(돕는 존재)이다. 성령은 내 마음속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안내해 준다. 그 안내를 받는 길은 내가 다가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내가 하나님의 현존 속에 있음을 조용히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 의지나 행위로 되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영역이기 때문에 동의와 수용이 매우 중요하다. 에베소교인들이 성령을 받으므로 주 예수를 만나고, 참신앙을 찾았듯이, 독자들도 거룩한 영의 도움으로 자아를 분별하고 하나님 현존에 온전히 머물기를 빈다. 새해 벽두 참사람이 되는 길을 지향하기를 축복한다.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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