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 사라졌다. 골목의 대장이었던 아이들도 사라졌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떠돌던 자리에 골목의 졸음을 깨우는 자동차 경적 소리가 맴돈다. 어쩌다 찾은 고향 집의 골목이 낯설었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친구들이랑 어울려 고무줄놀이하던 골목에는 대도시에서 다니러 온 친구들의 자동차가 주차되어 가뜩이나 좁은 골목이 더욱 비좁아졌다.
대로변의 모습도 달라졌다. 기차역에서 고향 집까지는 도보로 십오 분 거리이다. 사 차선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식당, 은행, 여관이나 모텔 같은 건물이 사열한다. 건물의 높이는 나날이 올라가고, 외관도 날마다 화려해진다. 해장국 집 옆에 새로 들어선 대기업 상표의 카페가 있어 깜짝 놀랐다. 카페에서 45도 건너편에는 도시에 흔한 대형 할인마트가 있고, 그 옆에는 천사 날개를 단 프랜차이즈 카페가 새로 자리를 잡았다. 파리바게뜨, 신라 제과, 〇〇막창 식당, △△숯불갈비, 청송 막걸리 …… 간판을 쭉 훑어보니 어디에도 있거나 어디에는 없는 가게였다. 대기업 계열 카페는 인구 얼마 이상이란 조건에 맞으면 주로 시 단위 이상에선 ‘어디에도 있’을 것이고, 농촌 지역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반면에 작은 식당들은 간판 이름만 다를 뿐 메뉴는 어디든 있는 흔한 밥집이다. 심지어 대기업 상표의 카페는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배치가 너무 낯익어서 자주 가던 동네 그 카페에 온 것 같았다.
자주 찾지도 않는 고향의 변화에 둔감했다. 그런 내게 씁쓸한 기분으로 고향의 도로와 건물을 생경하게 보게 했던 책이 있다. 바로 소모임 <문화 공감>에서 첫 번째 주제도서로 읽은 <도시의 로빈후드> 이다. 이 책은 생태도시 꾸리찌바를 우리에게 소개한 저자 박용남 님이 격월간지 <녹색평론>를 비롯한 여러 지면에 발표한 글을 다듬어 놓았다. 저자는 총 2부로 나눠 1부에서는 ‘사람을 위한 교통’이란 제목으로 세계 곳곳의 다양한 교통실험 사례를 소개했고, 2부에는 ‘위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란 주제에 맞춰 금융, 식량, 피크오일, 기후변화위기 등 다중위기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묶었다.
책에 따르면 최근 세계 주요 도시의 큰 흐름은 고가도로나 하상도로 같은 도시간선도로를 해체하거나 제거하는 사업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 이유는 하이웨이의 재건 및 수리비용보다 더 저렴한 대안을 찾거나, 경제 활성화와 부동산 가치의 증대, 이동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좋은 해결책의 하나로 이런 사업을 시행한다는 것이다. 뉴욕이나 파리의 자동차 없는 날, 자전거 전용도로의 확대, 폐철로의 공원화, 청계천 복원도 이런 조류의 연장이다.
즉, 세계는 지금 도시 교통의 '생태화'를 지향한다. 내게는 새로운 개념인 ‘생태교통’은 한마디로 석유생산 정점과 기후변화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기후친화적인 교통체계를 뜻한다. 자가용을 사용하지 않는 카 셰어링이나 무동력 교통수단(걷기, 자전거, 수레, 유모자, 휠체어, 인력거 등)과 전기 이동수단(전기 자전거, 전기 오토바이, 전기차, 전기 스쿠너, 전기 휠체어 등) 그리고 버스, 전철, 기차 등의 대중교통을 포괄하는 교통수단을 연계한 것으로, 친환경성과 사회적 포용성을 지니고 있다. 궁극적으로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빈민 등 사회, 경제적 약자들이 모두 소외당하지 않는 교통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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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와 자전거, 사람을 중심에 놓은 보고타시의 교통시스템 ‘트랜스 밀레니오’> | | |
저자는 이러한 생태교통의 지향성을 지구상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한 사례로 남미 콜롬비아의 보고타를 꼽는다. ‘트랜스밀레니오’라고 불리는 버스를 중심으로 ‘트랜스밀레니오 S.A' 공기업이 시스템의 계획, 개발과 통제를 전담하여 다수의 민간운영자와 파트너 쉽을 발휘해 운행되고 있다. 중앙버스전용차로와 자전거전용도로의 확보, 상대적으로 승객수가 적은 노선의 안배, 장애인과 노약자를 배려한 정류장 시설, 미혼모 같은 사회적 약자의 고용, 요금징수와 분배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버스 요금의 전자카드 사용, 경제적 약자를 고려한 간선급행버스 등 보고타의 교통체계는 그야말로 이동의 공공성에 충실하다. 이 같은 보고타의 변화는 모험과 도전정신, 창조적인 상상력이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을 가진 돈키호테나 로빈 후드 같은 인물 엔리케 페냐로샤 전 보고타 시장의 재임기간에 마련되었다. <도시의 로빈 후드>란 제목처럼 저자는 세계 최초로 식량권을 인정한 도시 벨루오리존치, 습지로 밀려난 빈민촌에서 이룩한 지역 공동체 은행 파우마스, 인간중심의 새로운 사회경제체제를 발명한 몬드라곤 등 기존 체제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사례는 우리의 삶터에서 ‘너도나도 적극적으로 로빈 후드나 돈키호테’ 같은 일상 혁명가가 증가할 때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이제 행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글을 맺었다.
국어사전에 ‘환경’의 뜻은 첫째,생물에게 직접ㆍ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 둘째, 생활하는 주위의 상태라고 나와 있다. 이 책을 덮고 ‘자연적 조건’이란 협소한 의미로 사고했던 자신을 돌아보았다. ‘인문’을 어떤 철학자는 ‘사람의 무늬’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공간을 ‘인문적 환경’이라고 칭할 수 있다면, 그 무늬는 다름 아닌 우리가 만들어간다.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소도시 고향이 자본의 논리에 아름다운 내성천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도심은 획일화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엔리케 페냐노샤 전 보고타 시장의 말이 떠올랐다. "도로 공간의 재분배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므로 우리의 의지 여하에 따라서 도시는 사회정의가 구현되는 장소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라는 그의 말은 ‘환경’에 대한 고민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숙고하라 한다. 새삼 이 책을 읽고, 해야 할 일이 많아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