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점입가경(漸入佳境)
네이버에 점입가경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일러주네요. ‘가면 갈수록 경치(景致)가 더해진다는 뜻으로, 일이 점점 더 재미있는 지경(地境)으로 돌아가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임’
경치나 이야기나 가면 갈수록 점점 흥미로와야 되겠지요. 그러나 이야기 만들기 초보자의 경우는 반대 상황과 만날 때가 많지요. 처음 구상했을 땐, 엄청난 이야기를 만들어야지 싶었지만 이야기가 진행할수록, 맥이 빠지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급기야는 포기상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야기 진행에 점입가경의 몇 가지 원칙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흥미롭게 발전 시키는데는 문법을 필요로 합니다. 자아 이야기 한 자락 들어보실래요?
수현은 음대에서 플롯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이것은 프로필입니다) 그녀는 낙엽이 흩뿌리는 가을날 교정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만치서 자전거 한 대가 달려옵니다. 자전거는 묘기를 부리며 돌진해 옵니다. 수현은 겁이 많습니다 그녀는 사소한 속도감에도 공포감을 느낍니다. 그녀는 돌진해 오는 자전거에 어지럼증을 느낍니다.(이것은 캐릭터입니다) 달려오던 자전거엔 진욱이 타고 있습니다. 진욱은 법대생입니다(이것은 프로필입니다) 진욱은 오래전부터 수현을 눈 여겨 보았습니다. 지금 자전거가 달려오는 것은 진욱의 의도된 행동입니다. 내세울게 없는 진욱은 자전거의 묘기로 수현에게 어필해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진욱의 의도는 전혀 엉뚱한 쪽으로 나아갑니다. 강박적 공포감과 어지럼증으로 수현은 쓰러집니다. 교정에선 약간의 소동이 벌어집니다. 진욱과 수현은 그렇게 처음 만났습니다. 그야말로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다가 온거죠. 청춘 남녀는 그렇게 만나 사랑을 시작합니다. 수현은 벤치에 앉을 때도 손수건을 깔고 앉는 깔끔한 성격입니다. 그에 비해 진욱은 털털합니다. 진욱은 수현을 만날 때 아무렇지도 않게 코를 팽~ 풀기도 합니다(이것은 캐릭터입니다) 수현은 기겁을 합니다. 그러나 수현은 어쩐지 진욱이 싫지 않습니다. 자신과는 성격이 정반대여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지만 반대의 캐릭터는 매력으로 바뀝니다. 수현 주변을 빙빙 돌던 진욱은 마침내 수현을 연인으로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그렇게 하여 두 사람은 몇 달간의 연애 끝에 결혼하여 아들 딸 놓고 잘 살았다고 한다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겠지요. 이것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앞으로 잠시 되돌아가서, ‘진욱은 마침내 수현을 연인으로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에서 다시 시작해 볼게요. 진욱은 자전거에 수현을 태우고 집에 데려다 줍니다. 뒷자리의 수현이 진욱의 허리를 감싸 안아줍니다. 자전거는 달립니다. 진욱은 생애 최고의 행복감으로 자전거를 달립니다. 두 사람은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연인입니다. 그런데....네에 바로 이 단어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가 이제 시작됩니다. 수현의 집 앞에 나이 먹은 조폭 분위기의 남자가 서 있습니다. 흉폭 분위기의 남자는 진욱을 향해 냅다 발길질을 합니다. 급작스런 습격입니다. 흉폭한 남자는 진욱을 아주 작살을 냅니다. 그리고 흉폭남은 말합니다. ‘우리 수현에게서 떨어져~!’
흉폭남은 수현의 아빠였습니다. 흉폭남은 사채업계의 거물입니다. 엄청난 재산가이지요. 흉폭남은 진욱의 뒷조사를 이미 마쳤습니다. 진욱은 천애고아였습니다. 죽자 살자 일하면서 공부하는 법대생입니다. 흉폭남은 진욱의 사랑을 의심하는게 분명했습니다. 수현의 집 배경을 보고 접근하였다고 흉폭남은 판단합니다. 그렇게 하여, 진욱은 눈물을 머금고 두 번 다시 수현을 보지 않았고, 수현 또한 아빠의 말에 순종하여 중매로 결혼하여 두 사람은 각자 인생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한다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겠지요. 네에 그렇습니다. 이것또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수현에게서 떨어져~!’ 로 되돌아가겠습니다. 그러나 강단 있는 진욱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진욱은 어릴 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정도 고난이라면 싸워볼만 합니다. 흉폭남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수현과 진욱을 떨어지게 하려고 온갖 짓을 합니다. 마침내 흉폭남도 지쳐갑니다. 자식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지요.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를 허락하고 두 사람은 잘 먹고 잘 살았답니다 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좀 시시해 지겠지요?
흉폭남은 절대 허락할 수가 없습니다. 오기도 생깁니다. 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쥐똥만한 녀석과의 자존심 싸움이 시작됩니다.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도 합니다. 집요함 말입니다. 반드시 이 놈을 자신의 가시권에서 사라지게 하는게 절대 명제가 되었습니다.
한편, 네에 또 중요한 단어가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한편, 이라는 단어입니다. 이야기가 막히면 새로운 단어를 떠 올려야 합니다. 그중에서 중요한 쓰임새의 단어가 한편~!입니다.
한편, 흉폭남의 상황을 잠시 들여다 볼게요. 그는 조폭에서 출발하여 사채업으로 재산가가 되었습니다. 재산가가 되니 권력이 그립습니다. 정계 쪽으로 슬슬 눈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치 비자금 문제가 터졌습니다. 흉폭남은 매일 검찰에 불려가 곤욕을 치릅니다. 어린 검사에게 반말 짓거리의 모욕을 당합니다. 자신도 검사 아들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절실함이 생깁니다. 그러나 자식은 외동딸 수현 뿐입니다. 그리고 딸 아이는 음악 전공자입니다. 그때 흉폭남의 뒷덜미로 벼락같이 꽂히는게 있었습니다. 바로 진욱입니다. 진욱을 가만 떠올려 봅니다. 부모도 없다. 집요함 성질머리는 자신을 닮았다. 어떤 고난이라도 버텨나갈 놈이다. 그런 근성이면 수현을 잘 지켜줄 남자다. 천애고아 출신이 법대생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진욱의 모든 조건은 하늘이 내린 선물 같습니다. 자아, 이제 이야기는 급반전을 합니다.
흉폭남은 진욱의 반지하 자취방을 찾아갑니다. 흉폭남은 진욱에게 손을 내 밉니다. 그 동안의 고생을 치하해 줍니다. 너의 근성이 어디까지인가를 테스트 한 과정이었다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흉폭남은 제안을 합니다. 사법고시에 집중을 하라고 합니다. 합격이 되면 결혼을 시켜주겠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진욱은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에 합격하고 법관이 되고 수현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라고 한다면... 그다음 뭔 말이 나올지 이젠 예상되겠지요? 네에...이것 역시 이야기가 아닙니다. 작가는 등장인물이 행복해 지는 꼴을 절대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이야기 만드는 자는 모질어야 합니다. 네에 그렇습니다. 절대로, 이들을 잘 먹고 잘 살게 두면 안되겠지요.
이야기는 되돌아갑니다. 흉폭남이 진욱에게 손을 내미는 부분부터 다시 진행할게요. 아빠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두 사람은 다시 행복해집니다. 흉폭남은 진욱을 보니, 모든게 사랑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어찌하여 저런 보석같은 녀석에게 그토록이나 모질었던가 후회가 막급입니다. 세 사람은 사이는 절대 밀착의 상황입니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입니다. 그런데....네에 그렇습니다. 이쯤에서 바로 그 음산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런,데~!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수현이 쓰러집니다. 수현이 병원으로 실려갑니다. 의사의 진단결과가 나옵니다. 수현은 희귀병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강박적 성격도 그저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욱과 처음 만난 날 쓰러진 것도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진욱과 흉폭남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비보입니다.
자아, 여기까지 진행을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정리해볼게요. 위의 이야기는 모두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입니다. 그와 그녀의 만남은 영화 ‘겨울나그네’에서 진욱의 상황은 영화‘ 가문의 영광’에서 수현의 희귀병은 막장 드라마에서 슬쩍 가져 온 것들 이네요. 지금 우리는 이야기의 구조에 관해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구조 파악을 위해선 낯선 이야기 보다는 익숙한 이야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수현과 진욱이 앞으로 진행될 상황도 점점 더 진부한 면이 있더라도 참고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김전한
1991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당선
2008.03~ 동아방송예술대학 영화예술과 겸임교수
2005년 영화 녹색의자 (각본)
2007년 영화 69년, 달의 궁전 (각본 및 연출)
2011년 영화 다슬이 (기획) 2007년 영화 69년, 달의 궁전 (각본 및 연출)
2011년 영화 다슬이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