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뉴스민>이 함께 하는 [인권제안]은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 세계인권선언’ 66주년 기념으로 다양한 인권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12월 한 달 동안 총 13편이 연재 될 예정입니다. “인권의 바람이 통하도록 마음의 창을 열어주세요.”
나는 1939년에 산간벽지 농촌에서 태어났다.
1961년 7월 대한민국 최초의 자동전화기가 첫선을 보였다. 이후 전화에 대한 수요는 늘어났지만, 공급이 따라주지 않아 1970년대 중반 한때는 구매할 수 있는 전화가입권이 서울 변두리 주택의 가격과 맞먹는 재산 가치를 지니기도 했다는 기록이 국가기록원에 남아있다고 한다. 하지만 1986년 디지털식 전전자교환기가 개발되면서 일반 전화기가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했고, 1984년 한국이동통신이 설립되면서 이동전화 서비스도 시작되었다. 1984년 이동전화 가입자수는 2,658명이었으나 2013년 말 기준 통계로는 5468만 840명 가입하여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지금 폴더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보급된 전화 덕분에 우리는 멀리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편지나 전자우편과는 달리 직접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안부를 묻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용무를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 목소리보다 자동응답기의 녹음된 안내 음성을 먼저 듣게 된다.
대게 공공기관이나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 사업체에서는 자동응답시스템(ARS)을 사용하고 있다. 용건이 있어 전화하더라도 자동응답기의 안내를 받으면서 여러 단계를 거쳐야만 어렵게 담당자와 통화를 할 수 있게 된다. 업무부서가 많은 곳은 해당 연결 번호를 하나하나 다 듣고 기억해야 하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복잡한 안내 음성 속에서 헤매다 보면 시간에 쫓겨 실수하기도 한다.
특히 휴대전화를 이용할 때면 더 정신이 없다. 수화기와 숫자 버튼이 따로 분리된 집 전화기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수화기를 귀에 대고 안내를 들으면서 숫자 버튼을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더 휴대전화나 스마트폰의 경우, 버튼이 너무 작거나 아예 숫자 버튼 화면이 숨겨져 있어 찾다 보면 입력 시간을 초과하게 되고 다음 안내 음성을 놓치기 일쑤다. 또 본인 인증을 위해 주민번호와 카드번호를 입력하다가 혹시 버튼을 잘못 누르기라도 하면 난감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전 단계로 돌아가는 방법을 몰라 쩔쩔매다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고 다시 처음부터 반복해야 한다.
점점 나이 들어가는 내겐 화면을 전환하고 버튼을 누르는 간단한 일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나이 든 사람이 전화하였다고 해서 버튼을 누를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주지 않는 자동응답기 안내 음성의 간격은 내겐 너무 짧고 부족하기만 한 시간이다. 기계를 다루는 것이 느리고 서툰 이들에게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이 모든 것이 지나가고 만다. 결국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하면서 정작 제대로 된 통화는 해보지도 못 하고 포기할 때도 종종 있다.
누구나 이렇게 한 번쯤 자동응답기를 대하면서 불편했던 점이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자동응답기’라는 기계에 의존하는지 모두에게 묻고 싶다. 기계는 인품과 정감이 없어 거부감이 앞선다. 반면 사람이 응대하면 좀 더 살갑게 대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대처할 수 있다. 급하고 중요한 통화일수록 자동응답기보다는 사람을 통해 더욱 정확하고 신속하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만약 일할 사람이 없어 사람이 아닌 기계가 전화를 받도록 하고 있는 것이라면 나라도 불러 쓰면 좋겠다. 물론 내가 전화한 사람의 욕구를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그이가 무엇 때문에 전화했는지 확인해서 그 일에 답해 줄 수 있는 사람과 연결해 주는 일은 그럭저럭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정도의 자원봉사는 나이 든 나와 내 친구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최근 들어 버튼식이 아니라 음성을 인식하여 전화한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여 해당 부서에 연결해 주는 시스템을 사용하는 곳이 생겼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이런 시스템이 더욱 확대되었으면 좋겠으나 그것이 어렵다면 처음 연결되었을 때부터 천천히 안내하고, 단계 단계마다 더 많이 기다려 줄 수 있는 연결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마치 카메라의 ‘슬로우 모션’기능 버튼처럼.
흔히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기에 더불어 협력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호 간의 원활한 의사 전달과 소통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이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말하는 단어뿐만 아니라 숨소리, 목소리의 높낮이와 길이, 그리고 어떤 작은 소리까지도 꼼꼼히 챙겨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자동응답기와는 그런 대화를 할 수 없다. 큰 불편함이나 어려움 없이 정확하게 서로의 의사를 주고받으며 대화할 수 있는 것, 이것도 넓게 보면 인권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우리가 편리하고자 만든 시스템이 도리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지 한 번 살펴보고 개선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