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원자력해체기술연구센터(원해연) 유치를 위한 서명에 중·고등학생들을 동원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주시 S학교 교사 아무개 씨는 지난달 책상에 놓인 서명지를 발견했다. 원해연 경주유치추진단 명의로 된 ‘원해연 경주 유치 찬성’ 서명지였다. 서명지에는 원해연의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했다.
아무개 교사는 <뉴스민>과의 통화에서 “학교에서 받은 서명을 제출해달라고 했다. 우리 학교의 경우 교사들에게 압박을 주진 않았고 우리 반 학생들에게 서명을 받지는 않았다”며 “공문이 공식 전산망으로 전달됐다. 이걸 단순한 안내라고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학생들이 정치적 문제에 관심 갖고 서명할 권리가 있지만 국가 기관을 유치하려는 지역이기주의적 경쟁에 학생들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경주시는 11월 11일부터 원해연 경주유치 20만 범시민운동을 진행 중이다. 경주시는 각 읍면동과 동국대, 위덕대, 관내 중고등학교, 일부 단체와 식당 등에 홍보물(리플렛 5만, 전단지 11만, 포스터 3천 장)을 배포 중이며, 이 과정에서 경주시는 11월 중순 경주교육지원청과 관내 30개 중·고등학교에 ‘원해연 경주유치를 위한 서명참여 및 홍보 협조’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에서 경주시는 “원자력해체연구원이 반드시 경주에 유치될 수 있도록 경주교육지원청과 관내 각 중·고등학교의 교직원 및 학생들의 적극적인 서명 참여를 당부”한다면서 ▲인당 1매 홍보물 배부와 학내 포스터 게첨 ▲교직원 및 학생들의 범시민 20만 서명운동 적극 참여 및 홍보 ▲원자력해체연구원 경주유치 관련 행정기관(읍면동)의 협조 요구 시 지원을 요구했다.
이에 전교조 경주 초·중등지회는 이달 4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학생들에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미래에너지로서 위험 부담이 많다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 된 핵발전소와 연계된 원해연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이 국책사업이고 부풀려진 일자리와 경제효과를 무분별하게 설명해 서명에 동원하는 것은 학교와 학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원해연 유치 묻지마 경쟁에 학교와 학생을 이용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덧붙였다.
한편, 경주시는 “원해연 경주 유치를 위한 홍보 차원”이었다고 반박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원해연 경주 유치를 위한 홍보 차원에서 시민의 한 구성원인 학생들도 알아야 한다는 취지로 협조 공문을 보낸 것”이라며 “무작정 서명하라는 게 아니다. 홍보물을 학생 1인당 하나씩 배부해서 사업을 설명하고 자율적 의사로 서명에 참여해 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해연은) 원해연 유치에 8개 시도에서 나서고 있다. 만약에 원해연이 핵시설이라고 한다면 누가 자발적으로 유치하려 하겠느냐”며 “원해연 유치로 직접적인 경제효과보다는 산업군 형성으로 인한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력해체기술연구센터는 안전한가
원해연은 연구개발비 포함 1,473억 원의 예산으로 2015년 상반기 중 입지를 선정해 2019년 완공될 계획이다. 원해연 유치에 나선 경북, 부산, 울산 등 8개 시·도는 원해연 유치로 국제원자력인력양성원, 원자력기술표준원 등 유사시설 동반유치를 꿈꾸며 유치 경쟁에 나섰다. 특히 동해안원자력클러스터 조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경상북도는 김관용 도지사가 나서서 “원전해체센터가 경주에 들어서지 않으면 원전을 보이콧 하겠다”고 하며 유치에 강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경상북도는 홍보물 배포로 원해연 유치의 경제적 효과를 역설하지만, 일각에서는 원해연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없으며, 오히려 원해연이 들어서는 지역에 핵발전소 관련 시설을 추가적으로 유치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원해연 유치 서명에 무작정 학생들을 동원시킨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핵발전소 해체가 필요하고 관련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도 동의된다. 하지만 해체 기술이 필요하다 얘기하려면 우선 관이 핵발전소 해체에 동의를 해야 하는데 정작 경주의 노후 핵발전소인 월성 1호기 폐쇄 계획도 없다”며 “주민들은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우려하지만 원해연을 유치하는 것은 탈핵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관련 시설들을 더 유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해연 자체도 방사능 오염물을 가지고 기술을 연구할 것이므로 연구소 자체의 방사능 유출 위험이 있을 수 있다”며 “또한, 원해연 유치를 위해 주민 동의를 받아가는 과정도 비민주적이다. 통장을 통해서 주민들에게 자세한 내용 설명 없이 받아간다”고 지적했다.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국제적인 탈핵의 흐름을 볼 때 해체기술 연구 자체는 이미 늦었다고 할 수 있어 시급한 과제지만 폐로 산업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안전한 폐로를 할 수 있는 기술이 중요”하다며 “지금 계획으론 2030년에야 해체 기술을 상용화한다며 투자하겠다는 건데 지금 와서 해체 기술을 연구한다는 것에 우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