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태의 우즈베키스탄 방문기 (1) - 뉴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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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4년11월04일 19시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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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태의 우즈베키스탄 방문기 (1)
“우리 민족이 왜 이런 먼 곳까지 와서 외롭게 살고 있느냐”

이헌태(대구 북구의원) heontael@hanmail.net

[편집자 주] 이헌태 대구시 북구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독거노인 쉼터 '아리양 요양원' 원장을 지냈다. 그는 얼마 전 우즈베키스탄을 열흘 간 다녀왔다. 원장을 지낸 '아리랑 요양원'도 다녀왔고, 고려인 집단촌 시온고 마을의 고려인 노인회관도 들렀다. 우즈베키스탄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그는 열흘간의 방문기를 블로그(http://blog.daum.net/heontae/)에 남겼다. <뉴스민>은 이헌태 의원의 동의를 얻어 우즈벡 방문기를 3차례에 나눠 연재한다.  

정부산하기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소속 아리랑요양원장으로 임명받아 현지에서 2년 1개월 동안 일하다가 2011년 2월 한국으로 돌아온 저는 3년 8개월 만에 요양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아리랑 요양원 설립은 재외동포사에 길이 남을 참으로 아름답고 숭고한 사업입니다. 

재단에 근무하면서 50만 명 구소련권 재외동포 고려인의 숙원사업인 만큼 꼭 추진하고 싶다며 상급기관 보건복지부에 호기를 부려 허락을 받고 우즈베키스탄으로 건너온 뒤 아리랑요양원 설립 허가를 받고 건물을 준공하고, 이어 우즈베키스탄 전역을 돌며 불쌍한 고려인 독거노인을 찾아 직접 모셔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어르신들은 움막이나 허름한 집에서 혼자 어렵게 살다가 우즈베키스탄 최고 수준의 시설에서 좋은 식사와 치료를 제공받으니 그야말로 로또 인생이 되었지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도 조국이 있구나”라며 한민족에 대한 정체성과 긍지를 가졌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난관을 잘 헤쳐 왔습니다.

요양원은 50만 명 고려인이 간절히 희망하는 숙원사업이고 우리 조국이 해주어야 하는 인도적 동포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허가를 미적대고, 현지 건설업자는 부실로 대충대충 공사해서 제 애를 태웠습니다. 상급기관 한국 보건복지부도 고려인문화협회에 운영을 맡기고 재단이 철수하라고 하기에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며 처벌을 각오하고 뚝심과 집념 하나로 재단이 직접 운영해야 한다고 밀어붙인 일까지 생각하니 개인적으로 어찌 감회가 남다르지 않겠습니까.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보람된 시절이었습니다.

[사진=의헌태 의원]

아리랑 요양원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신 분들 가운데 가족도 없이 혼자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정부가 지원 운영하고 있는 요양기관입니다.

지금은 중앙아시아 까레이스키(고려인)의 상징물이 되어 한국인들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할 때는 필수 방문코스이며 우리나라 고려인 방송 다큐멘터리의 단골 소재입니다. 이번에 제가 방문했을 때도 MBC 방송팀이 취재 중이었습니다. 

제가 요양원장일 때에도 국회의원을 비롯한 수많은 한국방문객이 기념사진을 찍었고, 고려인 어르신들을 만나 현장에서 받은 북받친 감동을 방명록에 남기곤 했지요. 마침 이번 방문 때 보니 요양원 로비에 설치된 요양원 홍보 소개물에 제가 원장 재임시 찍은 사진들이 너무 많이 전시되어 있어 당시 왕성한 활동이 떠올라 기분이 흐뭇했습니다.

요양원은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쉬켄트 시내에서 30분가량 떨어진 시골마을에 있는데, 가는 동안 차창 밖은 여전히 목가적 풍경이었습니다. 마침 목화 수확철이라 더 풍요로워 보였습니다. 요양원이 있는 고려인 집단촌 시온고 마을에 들어서니 마을도, 요양원도 옛 모습 그대로 평화롭더군요.

아리랑 요양원이 시야에 들어오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제 꿈과 땀이 그대로 배어나던 곳입니다. 이번 방문에서는 대구 북구의회 의원들과 비사라이온스클럽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으로 한국 과자 사탕과 금일봉을 건네며 따뜻한 동포애를 전했습니다. 

[출처=이헌태 의원]

현재 38명의 입소자 가운데 제가 직접 우즈베키스탄 전역에서 모시고 온 어르신이 아직 24분이 있으셨습니다. 그간 돌아가신 어르신을 포함해서 한분 한분 기억이 오롯이 납니다.

특히 돌아가신 어르신들의 소식을 접하니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여든이 넘으신 고령에도 늘 책을 가까이하시고 평소 곱고 단아하셨던 기품의 이옥순, 작은 키에 뒤뚱뒤뚱 걸으시며 활달했던 최 발렌티나, 치매가 걸려 제가 늘 모시며 산책을 하곤 했던 춤꾼 티베라, 선생님 출신으로 항상 얌전하셨던 박 예레나 어르신 등이 모두 고인이 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결같이 저를 보고 싶어 하셨다니... 이 자리를 빌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옥순 어르신은 특히 생각납니다. 입소하고 나서 생신잔치를 해드리니 마냥 우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유를 물으니 “나는 자식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 너무 슬퍼 눈물이 난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아들 같은 원장이 있다”면서 달랬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우즈베키스탄을 떠나던 날, 이옥순 어르신은 원장인 제 방에 찾아와 연금으로 받은 돈 10만쑴(현지 청소부 월급이 20만쑴이니 큰돈이죠)을 주면서 이 돈으로 한국에 계신 저희 어머니에게 전해달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못 받는다고 사양하자 원장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면서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가져가라고 애원해서 일단 제가 받아 직원에게 제가 떠나고 나서 다시 돌려주라고 한 적이 있는 어르신입니다.

아주 딱한 처지에 사셨던 최 이반, 박 루드밀라 두 어르신은 여전히 씩씩하게 잘 계시더군요. 이 어르신들은 직접 거주지를 방문해 보니 너무나 비참한 환경에서 혼자서 살고 있어 “우리 민족이 왜 이런 먼 곳까지 와서 외롭게 살고 있느냐”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최 이반 어르신은 알말릭이란 지방도시에서 차로 1시간 이상 더 가야 하는 시골의 움막에서 걸인처럼 혼자 살고 계셨거든요. 지나가는 고려인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방문하니 우리말도 잘하시고 정신도 멀쩡해서 건강검진을 받고 요양원으로 모시고 왔는데, 어린이마냥 좋아하셨습니다.

[사진=이헌태 의원]

박 루드밀라 어르신도 수도 타슈켄트에서 가까운 우즈벡 시골 마을에서 유일한 고려인으로 자식이 없었는데, 남편이 죽고 나서 혼자 살고 계셨습니다. 집을 방문하니 겨울철 난방도 되지 않는 헛간 같은데서 살고 있어서 바로 모시고 왔습니다.  

당시에는 우즈베키스탄 각지에서 경찰 신고받듯이 불쌍한 고려인을 찾아다녔습니다. 지금은 다들 행복해하십니다.
 
이번 방문 동안 두 번이나 아리랑 요양원을 들러 어르신과 대화도 나누며 그간 있었던 일로 얘기꽃을 피웠습니다.

“원장님 다시 오신 거냐”, “다시 왔으면 너무 좋겠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원장님 이야기합니다”, “원장님 솔방울로 귀고리를 만들어주시며 사진 찍어 주던 생각도 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요양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시던 생각이 납니다”....

제가 떠나고 나서 그동안 3분의 원장께서 열심히 일하셨겠지만, 요양원을 짓고 어르신들을 모시고 와서 함께 생활한 초대원장인 제가 아무래도 더 생각이 나겠지요.

“내년 다시 오겠으니 그때까지 건강히 꼭 살아계시라”는 말에 “원장님이 다시 온다니 꼭 그렇게 하겠다”는 어르신들의 다짐 소리를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동안 건강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이헌태(대구 북구의원) heonta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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