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10월 26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세상적으로는 1909년 이날,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또 1979년 이날은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총 맞아 죽었다. 그 날 이후 이 나라가 독재의 때를 벗고 더욱 민주주의로 나가야 하는데, 알다시피 우리는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을 더 많이 겪었다. 그리고 35년 후에 그 딸이 그 아버지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 나라를 지배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교회적으로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이다.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총(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을 슬로건으로 내건 개신교(프로테스탄트)의 상징이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발단은 면죄부였다. 면죄부는 교회가 부과한 형벌을 사면해 주는 증서이다. 중세교회 때, 고해성사를 통해 개인이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면, 사제가 죄의 용서를 선언하고 기도나 금식, 자선 또는 교회에 대한 기부 등으로 보속(죄를 속함)하도록 했다. 그런데 보속이 나중에는 돈으로 거래하는 데까지 갔다. 심지어 면죄부를 통해 연옥에 있던 영혼이 하늘나라에 간다고까지 선전했다. 그래서 도미니코 수도회출신의 요한 테첼이라는 부흥사는 "여러분이 면죄부를 사기 위해 내는 돈이 연보통에 짤랑 소리를 내자마자, 여러분 부모의 영혼이 하늘나라로 즉시 이동한다"고 선전해서 민중들의 마음을 홀렸다. 젊은 수도자 루터가 볼 때,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었다. 그래서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회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그 날이 1517년 10월 31일이다.(그런데 이날이 10월 31일인지는 논란이 많다) 여하간 이 반박문이 독일민중들에게 급속히 퍼지면서 종교개혁의 불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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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텐베르크 대학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는 마틴 루터 [출처=http://social-media-university-global.org/] | | |
95개 조항을 읽어보면, 루터의 주장은 성경에 매우 충실하며 건전하고 상식적이다. 루터는 특히 교황과 면죄부에 대해 많은 문제를 제기했다. 요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죄의 용서를 교황이 좌우할 수 있는가? 속죄가 죽은 자에게도 해당하는가? 속죄에 대해 면죄부방식이 옳은가?" 등이다. 몇 개를 인용하겠다.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하셨을 때, 이는 믿는 자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10. 죽어서 가는 연옥을 교회법의 벌로 삼는 사제들은 무식하고 악한 이들이다.
13. 죽은 사람은 죽음으로써 모든 형벌로부터 벗어나고, 교회법에 관한 한 이미 죽었으며 그로부터 해방될 권리를 갖고 있다.
27. 돈이 연보궤에 짤랑하고 떨어지는 순간 영혼이 연옥으로부터 풀려난다고 말하는 이들은 단지 인간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36. 진정으로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은 면죄부 없이도 죄와 벌로부터 완전한 사함을 받을 수 있다.
40. 진정으로 회개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죄 값을 달게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면죄부는 벌을 가볍게 하려는 것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벌 받기 싫어하게 하는 것이다. 적어도 이는 벌 받기를 싫어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43.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꾸어주는 것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선한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45. 궁핍한 사람을 보고도 이를 지나치며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임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50. 교황이 면죄부 교사들의 진상을 안다면, 그는 자기 양의 뼈와 살 그리고 그 가죽으로 성 베드로 사원을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원이 재로 화하기를 원했을 것임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51. 교황은 면죄부 판매자들로부터 돈을 갈취당한 많은 이들에게 성 베드로 사원을 팔아서라도 돈을 나누어 주기를 원할 것이며 또 원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75. 면죄부를 과대평가하여 인간이 아무리 못할 짓을 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어머니를 범했다 할지라도 면죄부가 그 죄를 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86. "오늘날 최고의 부자였던 크라수스(Crassus)보다도 훨씬 부자인 교황이 가난한 신자들의 돈으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돈으로 이 성 베드로 사원을 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시대 종교업자들이 유대교의 안식일법과 정결례법으로 민중을 발가벗겼다면, 중세시대에는 교회가 인간적인 교리로 민중을 발가벗겼다. 종교개혁은 교황이 지배하는 가톨릭교회에 저항하는 프로테스탄트, 개신교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지금으로부터 497년 전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종교개혁을 말하는 게 요즘 유행하는 말로 '아무 의미 없다'. 오늘날 교회개혁이 훨씬 더 매우 시급한 과제인지라 500년 전의 종교개혁을 기념할 만큼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을 촉발한 중세교회의 곪은 점은 무엇인가? 베드로 성당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면죄부에 과도한 사면의 의미를 부여하여 민중들을 홀려 먹은 거다. 이미 이전에도 민중들은 라틴어로만 돼 있는 성경을 한 글자도 알아먹을 수가 없어서 사제가 뭔 말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면 그런가보다 하며, 혹세무민당했다. 민중은 교회의 밥이었다. 요즘말로 호갱님이었다. 오죽하면 루터는 성 베드로 성당이 민중의 뼈와 살, 가죽으로 지어진다고, 갈취당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최고 부자인 교황의 돈으로 성당을 짓지, 왜 가난한 민중의 돈을 뜯느냐고 비판했다.
이렇게 민중을 발가벗기는 데는 시대의 차이가 별로 없다. 오늘 복음말씀은 마태복음 23장이다. 루터가 교황에게 직격탄을 날렸듯이, 예수는 그 시대 지배자들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예수는 그들이 얼마나 평등세상을 비켜나 있는지를 규탄한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 데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23:3,4)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은 유다교의 잡다한 율법규정들을 말한다. 그들 자신이 애초에 이 율법규정들을 지킬 마음이 있다면 613개나 만들지도 않았을 거다. 어차피 자신들은 지킬 마음이 없고 백성들에게만 부과할 속셈이어서 이런 지독한 규정을 만들었다. 그래서 예수는 계명을 단 두 가지,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압축했다.(마태 22:34-40)
특히, 23장 13-33절을 보면, 예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강력한 심판선언을 한다. 완전수인 일곱 가지 선언을 함으로 민중을 호린 그들의 위선과 타락 역시 극한수준임을 고발한다. 첫 번째 선언부터 일곱 번째 선언까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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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 23장, 예수가 율법학자 규탄하는 모습. [출처=http://committedtotruth.files.wordpress.com/] | | |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이 일곱 가지 심판선언을 보자면, 이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선적이고 악한가를 생생히 보여준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 탐욕을 채우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이들의 율법적용이 탐욕에 기반하고 있음을 신랄히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23"24) 율법의 정결례규정에 따르면, 하루살이도 낙타도 부정한 동물이다. 그래서 철저한 바리새파는 모든 마실 것에 헝겊을 대서 걸러 마셨다. 행여나 하루살이 같은 곤충을 먹어서 부정하게 되지 않으려고. 하지만 같은 방식을 낙타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낙타는 돈 나가는 재산이 되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삼켰다.
오늘날 종교업자들은 무엇으로 교회민중을 혹세무민하나? 번영신학이다. 모든 이야기의 목적을 성공에 맞춘다. 그래서 교회담론에는 성공이야기만 넘쳐난다. 상대적으로 실패이야기는 흐지부지 피해야 하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따라서 성공을 이루기 위해 한 개인이 어떤 가치판단을 하고, 처세해야 하는가? 하는 처세신앙이 신앙의 처음과 끝을 차지해버렸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도 번영신학과 처세신앙에 흡수돼 버렸다. 이 부작용으로 교회는 정의실현과 약자보호라는, 하나님이 당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두 가지 가치를 잃어버렸다. 주로 권력이 불의와 약자침탈을 자행하는데, 권력의 행위에 대해 눈뜬장님이 돼 버렸다. 되레 성공을 위해서 권력과 한 몸을 이루는 지경까지 갔다.
이런 흐름은 일차적으로 종교업자가 유발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교회민중이 그런 말에 장단을 맞춘다. 예수는 그 시대 종교업자에게 말했다. "너희에게 화가 있다"라고. 그것은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무너지고 그들이 비참하게 학살당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우리에게는 어떤 끝이 기다리고 있는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두렵기만 하다. 시대를 구하는 한 사람으로 살기를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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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호화 건축과 오정현 목사의 여러 의혹들로 논란을 겪은 사랑의교회 건물 ⓒ뉴스앤조이 구권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