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 2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6. 영웅과 일상의 루저들.
모든 이야기의 원인은 캐릭터에 있고 그 캐릭터의 결과물로서 따라오는 것이 구성입니다.
구성의 원인자는 캐릭터입니다. 캐릭터를 이야기 꺼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실재보다 과장되게 그릴 필요가 있지요. 과장된 인물을 그리기 위해서는 독특하고 개별적인 특성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 인물을 그릴 때일수록 그의 보편적인 인간성을 함께 섞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의 독특함을 듣는(보는, 읽는) 이는 감정적으로 납득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고대 희랍극이나 중세의 이야기는 위대한 영웅을 그리기를 즐겼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차츰 보통의 사람들도 극 속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지요. 그러나 우리의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해서 그저 밋밋해서는 곤란하겠지요. 그 인물은 분명 우리와 비슷하지만 누구나가 가질 수 없는 그 만의 독특한 특징을 입혀주어야 합니다. 현실속의 갑남을녀이지만 가공된 과장성이 필요하겠지요?
유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인물이지만 그 속에 내재된 어떤 영웅성을 찾아내든지 혹은 악마성을 추출해 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를 극 속의 주인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영웅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입니다. 그때는 그 인물의 외형적 거대성보다는 사소하고도 내면적인 약점을 들춰내야 합니다. 이야기를 듣는(보는, 읽는) 사람은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 영웅의 사소한 약점을 통해 감정이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유사 이래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하나로 자주 거론되는 예수의 예를 들어보지요. 그가 마지막 날 밤 겟세마니 동산에서 울부짖는 상황으로 가 볼까요?
그는 십자가 길로 가기 전날 밤, 겟세마니 동산으로 홀로 올라가 기도를 합니다. 경건하고 위대한 예수의 모습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한 청년의 공포가 그려집니다.
‘아버지 이 길을 피할 수 만 있다면 피하게 해 주소서’
이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만약 예수가 죽음의 공포도 없었다면 그의 십자가행은 얼마나 밋밋했을까요? 그는 극도의 공포 속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 이런 기도를 올립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따르겠습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마음을 추스려 고행의 길로 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극적인 대비로 인해 그의 캐릭터는 한층 부각이 됩니다. 보통 사람들의 감정이입이 되는거지요.
평범한 인물의 영웅적인 면과 영웅의 사소한 일상성과 함께 현대극의 특징 중엔 악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가장 주의 해야 할 것은 그가 비록 외형은 악인이라고는 하지만, 어느 한 구석엔 그를 구제할 여지를 남겨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극의 흐름은 그 주인공에 의해 운반되기 때문입니다. 그 악인이 저지르는 온갖 악행이 듣는이(읽는, 보는)의 눈앞에 펼쳐지지만 하나의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 악인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거지요. 그 나름대로의 이유란 알고 보면 그도 세상으로부터의 피해자이고 가슴 아픈 사연이 있어야겠지요. 그래야만 그 악인에게 감정이입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감정이입도 되지 않는 악인이 끌고 가는 스토리를 보는 것은 엄청난 고통입니다. 결국 앞서 세 개의 유형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모든 인간의 내면 속에 잠재된 명암을 작가의 내밀한 시선으로 들여다보자는 것이지요. 그 속에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있을 수 없습니다. 절대 영웅도 절대 비겁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현실이 바로 그러하지요. 우리 개개인의 내면 세계가 바로 그런 것 이지요.
선과 악, 영웅성과 비굴성이 뒤엉켜 있는 것이 우리네의 삶 이지요. 작가는 어느 상황을 확대해석하고 창의적으로 표현하는가가 캐릭터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초점입니다.
결국 우리 속에 잠재된 어떤 측면을 끄집어내어 캐릭터를 만든다면 위대한 성인이나 엄청난 악인보다는 평범한 뒷골목의 인물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가 더 쉬울것입니다. 왜냐하면 독창적인 인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앞서 보아왔던(영화나 소설, 연극) 인물들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내야 합니다.
구성이라는 문법적인 딱딱한 틀에서 벗어나 앞서 있어왔던 이야기 속의 정형화된 인물에서 자유로운 진정 자신만의 캐릭터를 잉태시켜 세상에 풀어 놓자는거지요.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되지 않는 불안한 보폭을 우리들의 현실 속으로 던져 넣어 보자는거지요.
캐릭터는 인격체입니다. 인격체는 스스로 자라게 됩니다. 그 성장의 어느 지점이 되면 작가 자신도 놀랄 수밖에 없는 의외의 사고와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건 바로 작가가 캐릭터를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캐릭터의 성장을 바라보며 그의 뒤를 좇으면서 기록을 하면 됩니다. 세상을 향한,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말입니다. 이것은 공연한 비유나 상징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캐릭터의 창조는 앞서 있어왔던 영화나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내 이웃의 표정 속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지요.
김전한
1991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당선
2008.03~ 동아방송예술대학 영화예술과 겸임교수
2005년 영화 녹색의자 (각본)
2007년 영화 69년, 달의 궁전 (각본 및 연출)
2011년 영화 다슬이 (기획) 2007년 영화 69년, 달의 궁전 (각본 및 연출)
2011년 영화 다슬이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