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뉴스민은 68주기 10월항쟁을 맞아 '10월항쟁행사위원회'가 벌이는 행사와 10월항쟁의 기억을 더듬어 되살리는 기사를 5회 연재하고자 한다. 그 첫번째는 23일 열린 학술토론회 '전평 9월총파업과 10월항쟁'에 관한 기사다. 68주기 10월항쟁 추모제와 10월문학제 취재 기사다.
“․․․순간, 이곳을 스쳤을, 이름을 버린,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쑥대밭을 생각한다/ 아직도 그 무엇이 오래 진행되고 있는 중인/뭐 특별할 것도 없이 걸리적거리는 국가의 존재를 생각한다/아 우리의 조국/조국의 품속은 늘 고통이었다․․․”(『인간의 문제』고희림)
10월항쟁 68주기, 68년 전 10월항쟁이 시작되었던 대구에서 10월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추모제가 열렸다.
10월 1일 오후 6시, 2.28공원 청소년광장에는 10월항쟁유족을 포함해 시민 100여 명이 모였다. 공원 둘레로 하얀 만장에 적힌 추모시 50편이 병풍처럼 둘러쌌고, 그 속에서 시민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더러는 눈시울을 붉히며 10월항쟁을 되새겼다. 이들은 10월항쟁이 “더 이상 추모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
10월항쟁유족회 등 25개 정당,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10월항쟁 68주기 행사위원회는 결의문을 통해 “10월항쟁은 미군정의 실패한 식량정책에 대한 항의와 토지개혁 요구를 직접적 계기로, 자주국가 수립을 국면적 계기로 해 솟구쳤다”며 “항쟁을 대구 폭동이라고 기억하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10월항쟁은 미군정과 친일 세력에 맞서 민중의 생존권과 민주주의를 주장한 투쟁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현재 10월항쟁은 망각에 놓여있다. 아직도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사 치유’와 관련해 적극 해결할 것을 밝혔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10월항쟁 역사의 복원과 피해자 치유, 이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국가권력에 자행된 민간인 학살과 폭력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사과와 10월항쟁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대구 10월항쟁에 참여했고, 한국전쟁 무렵 경찰에 강제연행돼 목숨을 잃은 채병기의 딸인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 회장은 “10월항쟁을 좌익선동 폭동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는데 전체 민중적 항쟁이다”며 “위정자들의 손에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던 역사를 잊지 말아야한다. 과거 청산은 시대의 요구임에도 이 정부는 나몰라라 외면하는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고 밝혔다.
양용해 전 한국전쟁전후민간인 희생자전국유족회 상임대표의장은 “다시는 10월항쟁과 같은 학살의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며 “그러기 위해 10월항쟁을 똑바로 기억하고, 용서하되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고귀한 희생 보답하는 길이다. 영면하시기를 빌고, 유가족의 고통에도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고 말했다.
임성열 민주노총 대구본부장은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 역사책 속에 박제된 야경국가가 부활하고 있다”며 “박근혜 정권의 폭압 속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질 위기에 있다. 국가는 예나 지금이나 가진자를 위해서만 작동한다”고 말했다.
추모제 막바지에 마임이스트 조성진 씨가 진혼무를 시작했다. 단상 위에서 10월항쟁 희생자들의 넋과 혼을 부르고 영면을 비는 몸짓을 보이자 추모제를 지켜보던 참가자들도 꽃을 들고 나와 헌화했다.
추모제가 끝난 오후 7시, 대구경북작가회의가 주최한 “10월 문학제 2014 시극 ‘시월’”도 개최됐다. 고희림 시인의 ‘인간의 문제’ 낭송을 시작으로 추모시 낭송, 연극화와 가무도 진행됐다.
한편, 1946년 9월 대구에서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총파업으로 노동자가 거리에 나왔고, 미군정의 식량정책에 항거하며 도시빈민이 거리로 나왔다. 또, 미군정의 친일관리 고용과 토지개혁 지역에 항의한 ‘10월항쟁’이 일어났다. 대구에서 경북 전역으로 확산된 인민항쟁은 그해 12월까지 지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