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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대 폭력의 역사는 왜 반복되는가
[기고] 남승인 총장은 왜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가

편집국 newsmin@newsmin.co.kr

[편집자 주] 남승인 대구교대 총장의 성희롱 폭언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대구교대 학생들은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해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대책위는 총장 사퇴를 요구했지만, 총장은 사과문을 게재하고 총장으로서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는 것에 그쳤다. 가해자가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사건 직후부터 대구교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피해자를 지지하는 선언을 이어갔다. 이러던 와중에 익명의 대구교대 졸업생이 뉴스민에 기고를 보내와 글을 싣는다. 실명이 드러나는 교수들의 사건은 <뉴스민>이 사실 확인 과정을 거쳤다.

“총장이 그랬대. 학생한테.”
 
대구교육대학교 총장인 남승인 교수의 성희롱 및 폭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학내에서 기자회견이 열린 9월 11일. 사건을 몰랐던 학생들도 알게 되면서 강의실이건 식당이건 남승인 총장의 성희롱과 폭언에 대한 이야기로 대구교대 캠퍼스 곳곳이 들썩였다. 마치 15년 전으로 타임슬립이라도 한 것처럼.
 
2001년, 대구교대 미술교육과 김창식 (전)교수에게 피해를 당한 학생들의 사례가 책자로 만들어져 뿌려졌던 날도 이렇게 날씨가 좋던 가을날이었다. 그날도 종일 사람들이 사례들을 이야기했다. 처음으로 가해자가 공개적으로 비난받는 날이었다.

▲대구교대 정문의 모습. [사진=대구교대 홈페이지]

10년이 걸린 폭력 교수의 해임

대구교대 학생들이 김창식 (전)교수로 인해 받은 피해와 고통의 역사는 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하나의 운동이나 역사로 갈무리되지 않았고, 한국에 인터넷 사용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부터였기 때문에 온/오프라인 모두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결국,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시기별로 재학했던 사람들의 증언뿐인다.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증언은 1994년에 대구교육대학교에 입학한 사람의 증언이었다. 김창식 교수와 관련한 폭력 사건이 있었고, 그에 대한 해결이 소수 학생을 중심으로 논의된 적이 90년대 후반에 있었다. 이것이 김창식 교수의 임용 연도(1997년)를 고려할 때 첫 번째 문제제기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두 번째 문제제기는 수년간의 시간이 축적되어 학생들의 분노도, 피해사례도 대규모로 터져 나왔던 2001년이었다. 김창식 교수는 일관되게 폭력적인 태도로 학생을 대했는데 특히, 자신이 담임-당시 대구교대는 ‘반’이라는 단위가 존재했고 반마다 담임 교수가 있었다-한 미술과 99학번 학생들에게 입학 때부터 폭언과 비하를 일삼았고, 과 행사나 과 학생회 일에 참여하지 못하게 막았다.

수업에서도 김창식 교수는 시작 시각과 끝나는 시간을 지키지 않았고, 수업 시간 내내 나타나지 않기도 했다. 학생을 대상으로 지정한 특정 미술학원을 지정하여 다니게 하고 학원에 학생명부를 넘겨 누가 다니는지 보고받았다. 수업 중 폭언과 성폭력 사례는 일일이 언급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많았다. 수업시간에 ‘못생긴 애들은 뒤쪽에 앉아라. 앞에 앉으면 기분 나빠서 수업을 못하니까’, ‘남자가 귀걸이 하고 있으면 무조건 F다’ 등의 발언을 빈번하게 했고, 수업 시간 내내 자위나 섹스에 대한 이야기로만 일관한 경우도 있었다. 자신이 손을 씻으면 수건을 가져다주는 당번을 정하게 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자신이 다른 사람을 폭행해 병원에 입원시킨 적이 있었다든가 자신의 자녀가 어항의 물고기로 장난을 치길래 물고기를 억지로 먹였다는 등의 폭력적인 이야기로 공포 분위기를 학기 내내 지속해서 조성했다. 또, 자신의 처가가 모 대학재단이며 그래서 학생들이 자신을 걸어도 ‘교수로 근무할 대학은 많다’, ‘어차피 교수는 안 잘리고 학점으로 보복만 당하고 학생이 쫓겨난다’ 등의 이야기로 학생을 위협하기도 했다.
 
모든 일의 원인은 안팎에 있듯이 재학생 전원이 김창식 교수의 피해자이다시피 했음에도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던 것은 시대적 상황과 대구교대의 내부 원인이 모두 작용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사건인 1997년 IMF-외환위기.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돌입했고 신규채용을 중단했던 1998~2002년 사이에 대구교대에 입학한 학생들의 상당수는 직장생활을 하다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2~30대 청년실업자들이었다.

퇴직금으로 재수학원에 다녀 교대에 입학한 사람들이 과마다 있었고 남학생은 절반 가까이가 이미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다른 학생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교원구조조정이 이루어졌고(이 시기를 기점으로 한국의 교사비정규직 비율은 수직으로 상승했다), 교원수급 상황이 파도치듯 해마다 달라졌기에 안정된 직업을 최대한 빨리 가지는 것이 이전 어느 때보다 더 중요했다. 이미 한 번 해고를 경험한 사람들이 교수에게 저항하고 학교에서 퇴출당하는 선택은 너무 위험한 선택지였다.
 
대구교대 학생들의 문화 역시 학생들의 문제제기를 어렵게 했다. 90년대 초중반까지 교대에는 RNTC제도가 있었다. RNTC란 초등교사가 부족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대학 학생들에게 재학 중 군사훈련을 받고 졸업 후 5년간 교사로 근무하면 병역을 면제해주는 제도였다. 남성의 교대진학률을 높이고 더 빨리 교사로 발령 낼 수 있었기에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시기까지 RNTC제도는 유지되었다. 교대 최대의 이점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대학이 곧 군대라는 점에서 RNTC제도는 교대를 병영화시켰다. 일상적으로 군사훈련이 캠퍼스 안에서 이루어졌고, 학생들이 군복을 입고 다녔다. 남학생들은 학생이면서 군인이었고, 상명하복의 문화는 대학 전반을 지배했다. 대구교대의 RNTC 훈련은 90년대 초반 사라졌지만,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대구교대의 학사과정이 가지는 특수성 역시 원인이었다. 대부분 교육대학교는 교원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졸업요구학점 자체가 높아 학사관리가 빡빡하다. 그중 대구교대는 다른 학교에 비해 더 융통성 없는 학사과정을 가지고 있어 학생들이 수강하는 수업 대부분이 필수과목이다. 수업을 학생이 선택하지도 못할뿐더러 단 하나의 수업이라도 이수하지 못하거나 거부하면 졸업자격을 잃는 셈이다. 단과대학 규모의 교대는 교수인력이 종합대처럼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전공별 교수의 수가 적다. 따라서 한 교수의 수업을 거부하여 F학점을 받더라도 다음 학기에 그 교수에게 다시 수업을 들어야 하는 구조다. 심지어 2000년대 초반까지 대구교대에는 한 과목을 3번 수강해서도 학점이수를 하지 못하면 제적시키는 방침이 있었다. 이러한 학사운영은 학생들이 어떤 수모라도 한 학기를 그냥 버티는 것을 선택하게 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견디지 못하고 일어났다. 2001년 수업 중 자신이 폭행한 학생과 그 부모에게 김창식 교수가 사과를 받았다는 것이 알려지자 해당 과 학생회에서 김창식 교수의 책임을 묻고 사과를 요구하는 대자보를 게재했다. 그러나 자보는 떼어졌고, 같은 시기 대구교대 홈페이지 열린 총장실 게시판에 김창식 교수에 대한 조사와 처분을 요구하는 실명 게시글이 올라왔다.

"임마" 정도의 욕은 기본이며 개강 첫 수업시간에 조금 늦게 들어와서 미안해하며 어쩔줄을 몰라하는 마음 여린 여학생에게 운동장을 5바퀴 뛰게 합니다. 험악한 분위기에서 말입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야- 임마, 나이 제일 많은 놈!"이라고 부르는데 대답하고 싶겠습니까 ? "야-임마! 띵하게 있지마 ! "라는 말에 "교수님 저 띵하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얘기하니 "야- 임마 너 지금 반항하나 ? 죽을래!!"라고 합니다. 수업에 지장이 있을 듯하여 수업 후에 저의 생각을 말씀드릴려고 "교수님 수업 끝나면 말씀 좀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하니 "야- 임마 ! 그게 반항이야! 지끼지마!"라고 합니다. (중략)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총장님께 경고처분을 받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 문제에 대하여 김창식 교수의 공개적 사과가 없었다는 점과 전임강사에서 조교수로 아무문제 없이 승진 발령 받았다는 것이 지금의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 대구교대 사회과 박ㅇㅇ 씨가 2001년 9월 7일
대구교대 홈페이지 열린총장실에 올린 글에서 일부 발췌

대학은 게시글을 삭제했다. 그러고는 조사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사나 조치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글을 올린 박ㅇㅇ 씨는 여러 경로로 압박받기 시작했다. 이후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조사된 피해사례가 자료집으로 제작·배포되었고 김창식 교수 퇴진 운동이 학교 전체에서 일어났다.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져 MBC 시사 프로그램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가을은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교직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는 시기였다.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를 36시간 연수 후 초등교사로 임용하는 정책 등에 반대하여 전국의 교육대학교 학생들은 임용고사 응시 거부 및 무기한 동맹휴업에 들어가게 된다. 결국. 김창식 교수 퇴진 운동은 결실을 보지 못하고 중단됐다. 한동안 압박을 받던 대학본부는 정직 2개월 후 김창식 교수를 해외에 내보내는 것으로 상황을 봉합했다.

1년 뒤 김창식 교수는 대구교대로 복귀했고, 폭력은 계속되었다. 2008년에도 학생들의 문제제기와 사퇴 요구가 있었지만, 이번 역시 대학본부의 적극적 조치는 없었다. 수많은 피해자를 외면하고 그들의 요구를 묵살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가해자-김창식 교수를 보호했다.

2009년 12월 18일. 김창식 교수는 급기야 면담 중에 표정을 찡그렸다는 이유로 학생을 10여 차례 폭행한다. 대구교대 학생들은 학내와 거리에서 김창식 교수 파면을 요구하는 서명전을 벌이고 지역사회와 함께 공동대책위를 꾸렸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도 김창식 교수 파면을 요구하는 시민 청원이 올라왔다. 그리고 이듬해 3월 8일. 대구교대 징계위는 김창식 교수 해임을 결정한다. 대구지역 여성대회에서 김창식 교수가 '성평등걸림돌‘상을 받은 날도 이 날이었다.

▲남승인 총장의 성추행, 폭언 사건 이후 대구교대 학생들은 대책위를 구성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졸업생과 재학생들의 피해자 지지 및 남승인 총장 사퇴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대구교대 학생대책위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교육적 체벌이라 불린 저서 강매와 폭행

아직 대구교대에 재직 중인 홍종관 교육학과 교수 역시 수업 중 학생을 폭행한 교수이다. 인간중심주의 상담이론으로 저명한 학자인 동시에 목사이기도 한 홍종관 교수는 책으로 출석을 확인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출석을 확인할 때 교수가 이름을 부르면 대답과 함께 책을 높이 들어보여야 하는 것이다. 책을 사지 않고 빌려서 가져오는 학생들이 있자 홍종관 교수는 표지에 굵은 매직으로 이름을 써야만 출석을 인정했다. 교대 학생들은 교사임용고사를 볼 때 학점으로 내신등급과 내신석차를 산출한다. ‘전교등수’를 내는 경쟁에서 기본점수에 속하는 출석은 영향력이 엄청나다. 책으로 출석매기기는 당연하게도 수업 교재-자신의 저서를 반드시 사게 강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2005년, 홍종관 교수는 한 학생에게 표지에 쓰인 이름이 연한 색이기 때문에 출석을 인정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학생은 고개 숙여 선처를 부탁하는 대신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따졌고, 이에 화가 난 홍종관 교수는 학생을 때렸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교수는 발로 학생의 배를 걷어찼다. 수업 중 일어난 일이었고, 해당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이 목격자이자 피해자였다. 폭행을 당한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목격한 다른 학생들도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든 폭행이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해당 수업을 듣는 2학년 학생 전체가 홍종관 교수의 수업을 거부했다.

그러나 대학본부는 개인 간의 문제라며 발을 뺐다. 교수들 역시 피해자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학생 중에서도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다’, ‘아버지 같은 교수에게는 대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등 2차 가해가 이루어졌다. 총학생회는 비대위 초기 결합했으나, 이후 피해자를 배제한 채 대학본부와 별도 간담회를 가지고 대응을 마무리했다. 그로 인해 홀로 남게 된 피해자는 그 어떤 사과나 재발방지대책 등을 요구할 수가 없게 되었고 견디다 못해 휴학을 선택했다.

대학 측은 물론 홍종관 교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피해학생을 만나거나 사과한 일이 없다. 홍종관 교수는 현재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책]이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교대가 문제다

10년이 넘는 학생들의 문제제기 끝에 김창식 교수는 해임되었으나 학생들은 불안에 떨었다. 김창식 교수가 복귀한다는 소문이 횡횡했기 때문이다. 김창식 교수가 징계위 결정에 항소했고, 파면이 아니라 복귀가 가능한 해임이었기에 소문은 쉬 가라앉지 않고 학생들을 긴장하게 했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대구교대가 김창식 교수를 복귀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없었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말이 있다. 네이버 베스트댓글로 유명해져 관용구처럼 쓰이는 말이다.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다. ‘잘못이 용서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와는 별도로 우리는 늘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인간들 속에서 살아간다. 그럼에도 우리가 불안으로 미치지 않는 것은 이 사회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다시 말해 누군가 날 폭행했을 때 나의 억울함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고 날 지지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다. 그것이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들이 모여 만든 ‘사회’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구교대에는 이것이 없다. 누가 날 때려도 누가 내게 욕설을 해도 누가 내 몸을 강제로 만져도 대구교대라는 대학은, 그 안의 사람들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학생들을 불안하게 했다. 최초 발단이 개인의 언행이더라도 이후에 대학이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고 학생을 폭력 교수들의 수업으로 계속 밀어 넣은 것은 피해자의 편에 서기보다 가해자의 손을 들어준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폭력이었다.

왜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가

2001년 김창식 교수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자신의 폭력 행위를 ‘교수 방법’이라 칭했다는 점에서 공분을 샀다. 형식은 사과문이었으나, 끝끝내 자신은 학생을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교수라는 것을 강조한 셈이다. 2005년 홍종관 교수 역시 자신의 폭력행위를 교육적 체벌이라 주장했다. 지난 9월 17일 남승인 총장의 사과문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에게 사과한다는 말이 적혀있지만, 학내 구성원들에게 ‘성평등인권교육’을 실시하겠다, ‘관련 교과목을 신설하겠다’ 등 처음부터 끝까지 총장으로서의 발언뿐이다. 자신이 성평등인권교육을 받겠다는 말이라면 다르겠지만,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고 자신의 변화를 약속하기 전에 재발방지대책을 발표하는 것은 사실 책임모면과 빠른 봉합에 가까운 적반하장 격이다. 여전히 학생들은 남승인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교수의 비리와 폭력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교수 1인의 사퇴가 문제의 해결은 아니다. 그러나 가해자의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고 옳지 않은 일이라고 규명하는 것은 학내 구성원들이 피해자 편에 서서 함께 외치는 과정이다. 대구교대의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문화를 바꾸어가는 근본적인 해결과정인 것이다. 다행히 지금 대구교대 학생들은 2005년과 달리 피해자의 편에서 총장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많은 졸업생도 예전에 미처 행동하지 못해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지지와 반성의 글을 전달하고 있다. 반면, 대학본부와 남승인 총장은 사전 시간조율도 없이 성윤리위원회 개최를 통보하고 일방 진행하는 등 여전히 고압적 태도로 학생을 대하고 있다.

대구교대는 총장 사퇴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07년 [대구교대 바로세우기 교수 모임]을 중심으로 강현국 당시 총장(국어교육과 교수)의 논문대필 및 인사비리 등이 폭로되었다. 강현국 총장은 결국 자진사퇴했다. 2007년 대구교대를 바로 세우고자 총장 사퇴를 외쳤던 교수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 글에 적힌 모든 일을 대구교대에서 직접 겪은 남승인 총장은 왜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가.
 

편집국 newsmin@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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