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유신독재는 이른바 '인혁당 사건'을 만들어 한 시인의 아버지(민촌 라경일)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한순간에 소문은 퍼지고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친척들까지 그의 가족들을 찾지 않았다. 남은 이들도 빨갱이가 된 것이다. 그 불안한 세월 동안 시인과 가족들은 서로에게 기대며 숨죽이고 살밖에... 무죄로 밝혀질 때까지 그랬다. 굳은 마음만 지니고 희망은 버린 채.
故 라경일 씨의 아들 시인 나문석(58) 씨가 첫 시집 ‘정삼각형 가족’(시와에세이)을 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연좌제와 눈총 탓으로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을 다닐 수 없던 그는 일찍이 출판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시 ‘어느 출판노동자의 이력’을 통해 고백하듯 30년 넘게 출판밥을 먹었다. 지금은 두엄출판사 대표로 일하고 있는 그는 1975년(대구달성고등학교 재학) ‘오구문학’ 동인으로 활동, 2009년 계간문예지 ‘시에’에서 ‘아버지의 우물’ 외 2편으로 등단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다
이런저런 구실로 하여
그 마음을 바꾸지 마라
먼 훗날 그 일로 하여
그대가 지닌 마음속
지울 수 없는 생채기 하나
노을 빛 아름다운
강가에서
다시 바라보게 될 테니까
- ‘노을제’
민주의 바람으로 한평생을 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머니는 치매를 앓으면서 “이제 문밖에만 서도 당신의 집을 찾지 못한다". 지금도 그때처럼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어머니는 "대문을 닫아걸었다".
원기둥 안으로
차가운 물방울들이 쏟아졌다
살을 가르는 물방울의 원 구슬 속에서
푸른 이끼 냄새가 났다
어머니는
그 냄새가 집 밖으로 퍼지는 것이
싫다고, 대문을 닫아걸었다
사각형 커다란 철문이
철거덕 쇠 닫히는 소리를 내며 땅 위에 우뚝 섰다
그 해부터 골목 주위를
반구형 투구를 쓴 사내들이 서성거리고
소문은 자꾸만 가로등 불빛을 따라 퍼져나가며
어둠 속에서 커다란 눈동자를 두리번거렸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마당 안에 놓은 원기둥 속
우물을 들여다보았다
깊이도 모를 빛깔로 출렁이는 물방울들
그 물방울 같은 불빛을 달고
먼지가 쌓이던 아버지의 책상 위에
하늘로 올라가는 흰 촛불의 원기둥이 탑처럼 술렁이고
원기둥 끝에 어머니의 한숨이 맺힐 때마다
검고 깊은 심지 끝
검은 물방울들이 내 혈관을 돌아다니면서
물방울무늬의 슬픔들을 토해냈다
- 아버지의 우물
 |
|
정윤천 시인의 말이다. “그의 시들은 일정 부분 비명과 비탄과 절규에 닿아있다. 시라는 고루와 낭만을 얼기설기 꿰어 입혀주긴 했지만, 곳곳의 행간에서 신음소리들이 묻어난다. ‘간첩의 아들(그것도 하필이면 외아들이다)’로 살아온 30여 년의 시간과 세간의 눈총들이 그의 손과 가슴에, 어쩌면 이렇게도 ‘저녁이면서 새벽인’ 시집 속의 시들을 들려주었다. “여전히 거꾸로 가는” “항로를 잃은 나라”에 “파종을 해도 새 살이 돋아나지” 않음을 울어 예는 노래가 지금까지의 시가 아니랴. 그러나 이제 그 ‘죽임’의 “사서함”을 비웠으니, 시인 나문석이여. 영원하라.”
‘오구문학’ 동인 김경호 시인은 시인 나문석을 이렇게 평한다. “그 눈빛과 표정이 40년 가까이 흘러 머지않아 예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변함없는데, 불행하게도 이 시대 상황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보인다. 나문석 시인의 시들은 정직하다. 그의 시편들이 때로는 삼각형이나 사각형들의 모난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시대의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견뎌내기 위한 자기방어의 모습이리라. 대구분지에서 ‘오구문학’동인으로 처음 만나 짧지 않은 세월을 함께한 문우로서 그의 첫 시집을 이제야 마주하는 기쁨이 남다르고, 이 시집으로 인해 그의 시가 더 둥글고 빛나는 높이의 경지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기를, 그리고 이 개떡 같은 시절도 어서 지나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