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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4년06월14일 07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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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김전한의 스토리텔링 (8)
이야기의 황금광 시대 2

김전한(시나리오 작가) kjh697@naver.com

 영국에서 바다 하나 더 건너볼까요? 고단한 인생을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해 볼게요. 이 남자는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생업을 뛰어야 했지요. 그는 어머니 대신 어린 두 동생을 돌보아야 했지요. 보너스로 집안일까지 짊어져야 했고요. 겨우 6살 남짓의 나이때 였으니, 이 남자의 인생, 시작부터 암담했습니다. 10살 때부터 농장일, 페인트공 등등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세상의 힘든 일은 다 하였지요.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 고개 돌려보니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렸네요.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인 Loser 인생의 전형이었지요. 그러나 근면성실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요. 늘그막에는 가까스로 레스토랑 하나를 가지게 되었지요. “하이고 힘들었다~~” 길게 날숨 한번 쉬면서 인생의 단맛을 보려는 순간이었지요. 그런데 이게 왠일이랍미까. 자신의 레스토랑 앞에 고속도로가 휑하니 뚫렸네요. 쫄딱 망했지요. 개업한 지 딱 일 년 만의 일이었지요. 그의 지갑엔 달랑 105달러만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 65세때 였지요. 참 지지리 복도 없는 인생이었지요.

 105달러로 뭘 할 수 있을까? 대체 이 돈으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몸은 노인이 되어버렸는데 말입니다. 이쯤에서 인생 포기하고 경로당으로 갔으면 이야기는 끝이겠지요. 그러나 이 노인네 참 지독했지요. 일단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체크해 보았지요. 레스토랑 운영하면서 닭고기 튀기는데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거지요. “그래, 이 기술을 팔아보자~!”

 그는 압력솥을 샀지요. 그리고 털털거리는 트럭에 압력솥을 싣고 먼 길을 떠났지요. 미 전역을 돌면서 프렌차이즈 영업을 시작한 거죠. 닭튀김 프렌차이즈 말입니다. 여정은 고단했지요. 그의 전 인생의 좌절보다 더한 고밀도의 험난함이 시작 된 거지요. 그의 시대엔 프렌차이즈가 낯선 개념이었습니다.

 다들 혀를 찼겠지요. “이거 미친 노인 아냐?”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트럭에서 잠자고 튀긴 닭다리 씹어 먹으며 돌고 또 돌았지요. 무려 1009군데나 들이댔다고 하네요. 생각해보세요. 109군데도 아닌 1009번이나 들이대고 거절당했다니, 이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보통 사람의 할 짓이 아니지요.

 그러나 1010번째  그는 기인과의 조우를 하지요. 피터 허먼이라는 남자는 이 노인네의 치킨 맛에 혀끝의 몽롱함을 느꼈지요. 치킨 한 조각당 4센트의 로열티 계약을 했지요. 바로 KFC 1호 매장의 탄생이었지요. 그의 나이 68세 때의 일이었지요. 우리는 세계 어딜 가나 낯익은 미국인 한 명을 만날 수 있습니다. KFC 매장 앞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 하얀 양복의 할아버지 말입니다. 불운의 종합선물 셋트, 루저 인생의 대표자, 그러나 결국은 될 때까지 물고 늘어졌던 영웅, 집요함의 진뜨기, 그의 이름은 바로 Colonel Harland Sanders입니다. 

 우리는 지금 미국의 신화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세상엔 숱하게 많은 신화들이 있습니다. 신화에는 천지가 창조되고 신이 등장하고 문명이 시작되고, 초자연적 현상들이 일상처럼 마구 벌어집니다. 그러나 미국의 신화에는 초자연적 현상은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미국의 신화이야기는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입니다. 미국의 신화학자 Joseph Campbell은 “신화는 대중의 영역이고 꿈은 개인의 신화이다” 라고 했습니다. 미국 신화의 특징은 이 한마디에 모두 포함되어 있네요. 미국의 신화는 신이 세상을 창조하는 초자연성이 아니라, 하얀 양복의 치킨집 할아버지 Colonel Harland Sanders입니다.

 초자연적 신비주의 신화가 미국에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은 시대의 흐름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의 건국은 18세기였고, 그보다 조금 앞서서 유럽에선 뉴턴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뉴턴의 만유인력 이후, 세상은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시대가 열린 거지요. 이런 시대 흐름에 나라가 들어섰습니다. 버려진 쌍둥이 아이를 늑대가 키웁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훗날 왕이 됩니다. 로마건국 신화이야기지요. 신탁이 나오고 바위를 자르는 보검이 나오는 아서왕의 영국 신화도 있지요. 모든 나라의 건국 신화는 신비롭습니다. 그러나 미국 건국시대에는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지요.

 그러나 모든 국가의 시작에는 신화가 필요한 거지요. 미국처럼 역사가 짧고 단기간에 근대 국가로 발전하려면 신화이야기는 더욱더 필요한 것이지요. 그러나 미국의 건국시대에는 더 이상 초자연적 현상을 내세울 수 가 없었으니...

 초자연적 신비주의 이야기가 없었던 미국은 불행이었을까 행운이었을까요? 네에 그렇습니다. 그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 내었습니다. 바로 건국의 영웅들이지요. 건국의 아버지들 토마스 제퍼슨, 존 애담스, 리차드 헨리 리, 존 핸콕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스토리는 한국의 단군신화와 맞먹는 이야기들이지요. 또한 미국의 신화 이야기는 그런 거시적인 영웅뿐만 아니라 소시민 영웅들에게도 초점을 모아줍니다. 앞서 소개했던 닭튀김 가게 주인부터 돌리 여사의 이야기까지 말입니다.

 돌리 여사? 이 분도 잠깐 소개해야겠네요. 미국의 4대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메디슨 돌리 여사의 이야기도 꽤 흥미로운 미국 신화이지요. 당시의 미국은 여전히 영국과의 전쟁 중이었지요. 영국군은 백악관을 향해 돌진해 오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백악관의 사람들은 모두 피신하기에 바빴겠지요. 백악관을 버리고 모두 헐레벌떡 피신하는 상황에서 메디슨 돌리 여사는 목숨을 걸고 백악관으로 돌아갔지요. 초상화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미국의 건국 아버지,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 때문이었습니다. 메디슨 돌리 여사는 미국 정신의 상징인 조지 와싱턴의 초상화를 적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던 거지요. 목숨 걸고 지켜낸 초상화 이야기. 그녀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 중에 한 명이 되었던 거지요. 미국식 영웅의 탄생이지요. 미국의 신화이야기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중세의 영웅들과는 판이하지요. 우리 일상의 영웅들이지요. 영웅이면서도 소시민인 사람들의 이야기 말입니다.

 영웅과 소시민이 겹쳐진 이야기라면 이 남자를 소개해야겠네요. 바로 미국 44대 대통령 오바마의 경우입니다. 그의 스토리는 너무나 많이 소개되어서 새삼스럽습니다. 그러나 굳이 여기서 다시 한 번 그의 이야기 중에 하나를 소개하는 것은 소시민의 영웅화, 즉 영웅 창조의 좋은 예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날 승리 연설에서 평범한 흑인 할머니를 소개했습니다. 106세의 앤 닉슨 쿠퍼 할머니입니다. 오바마는 투표 상황을 보던 중 최고령자 중 한 명인 흑인 할머니의 조기 투표에 감동을 먹은 거지요.  그리고 그는 노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신의 지지를 얻어 얼마나 기쁜지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라고 인사를 올렸지요. 그리고 그날 밤 승리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오늘밤 나는 그녀가 살아온 세기, 고통과 희망, 투쟁과 진보, 우린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던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라고 했지요. 보통의 소시민을 미국의 상징 중의 하나로 끌어올린 거지요. 평범하게 살아온 106세의 흑인 할머니는 그날 밤 미국인의 또 하나의 영웅이 된 거지요. 또한, 평범한 소시민을 영웅으로 끌어올린 오바마는 뛰어난 스토리텔러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신화 이야기의 매우 중요한 특징입니다. 미국의 신화는 다른 나라들처럼 건국초기에 만들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국의 신화이야기는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들 영웅에서부터, 서부활극 존 웨인의 이미지에서 치킨 가게 할아버지에서 106세의 평범한 흑인 할머니까지 미국신화의 주역들은 매일 새롭게 탄생되고 있습니다.

 신비주의가 없었던 미국신화가 행불행의 갈림길이었듯이 미국은 민족주의가 없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국가의 강력한 결속을 위해서 민족주의는 매우 요긴한 개념 같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를 보면 반대의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국가주의가 강력하지만, 민족주의는 상대적으로 희미하지요. 민족주의가 없으니 다양한 인종을 받아들였겠지요. 그런데 이것은 인종들을 받아들임에만 그치는 게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지역의 이야기들을 받아들여 미국화해버린 것이 특징입니다.

 디즈니의 작품들을 살펴볼까요? 신데렐라 이야기는 어떤가요? 신데렐라는 디즈니의 에니메이션으로 인해 전 세계에 확대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데렐라 이야기는 미국 출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데렐라 컨셉트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콩쥐팥쥐에서부터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이야기입니다. 뮐란의 경우는 어떤가요? 뮐란이라는 소녀의 이야기는 중국 북조 시대의 소녀 영웅 이야기입니다. 전통적으로 이야기 밑천의 후발 주자 미국은 전 세계의 이야기를 긁어모으기에 온힘을 쏟았습니다.

 그들은 1960년대부터 콘텐츠 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도 하였지요. 일찍부터 이야기를 산업화시켰다는 거지요. 알라딘의 이야기는 그들이 그토록이나 적대시하는 아랍민족의 전래 이야기지요. 인어공주는 또 어떻고요. 덴마크의 이야기를 시침 뚝 떼고 디즈니의 이야기로 새로 편집해 버렸지 않나요. 사소한 것에서 신화를 만들고, 민족주의를 벗어나서 재미난 이야기는 모두 자기들의 이야기로 녹여 버리는 미국의 이야기 산업, 그 절정이 바로 할리우드이겠지요. 이야기 산업으로서 할리우드는 수치를 굳이 따지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전 세계 현존 인류는 할리우드의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야기 산업의 최강자가 되어 버린 것이겠지요.
 


김전한
1991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당선
2008.03~ 동아방송예술대학 영화예술과 겸임교수
2005년 영화 녹색의자 (각본)
2007년 영화 69년, 달의 궁전 (각본 및 연출)
2011년 영화 다슬이 (기획)
김전한(시나리오 작가) kjh6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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