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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4년05월31일 01시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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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김전한의 스토리텔링 (7)
이야기의 황금광 시대

김전한(시나리오 작가) kjh697@naver.com

9. 이야기의 황금광 시대

 세상엔 숱한 이야기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거대한 산업화로 옮겨온 경우를 살펴보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가 있지요. 바로 그림형제입니다. 그림 형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도서관에서 일하였습니다. 그때 그들은 흩어진 민담을 수집하였지요. 그들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동화들 대부분은 수집된 민담들이었지요. 즉 이차 가공품이라는 거지요. 세상에 흩어진 스토리들을 채집해서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거지요.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이거야말로 대동강 물로 물장사를 시도한 봉이 김선달에 비유할만한 사건이군요. 셰익스피어의 경우도 그런 혐의가 상당히 있지요. 주인 없이 흩어진 숱한 이야기들을 채집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 수법 말입니다. 자아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그림형제의 책들과 영화화된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전혀 다른 산업으로 진화해 버린 경우를 살펴볼까요?

 독일에는 메르헨 스트라세(Merchen Strasse) 라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옮겨보자면 ‘동화의 길’이라고 하면 되겠네요. 이게 동네 골목길이 아니고 무려 600여km에 이어진 거대한 이야기 길입니다. 600km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1.5배의 거리네요. 대한민국 전체 길이보다 더 긴 지역을 동화의 길이라는 컨셉트로 묶여있네요.

 이 길의 출발지점은 헤센주의 작은 도시 하나우 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끝은 브레멘입니다. 그런데 이길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고요? 이야기 산업이 생겨난 것입니다. 바로 그림형제의 동화와 관련된 지역이기 때문이지요. 브레멘 음악대의 브레멘 시. 피리 부는 사나이의 하멜른. 빨간 모자의 슈발름슈타트 등등 600km의 길 위로 연결된 그 지역들은 그림 형제의 동화들과 연관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습니다. 자아, 이제 이야기는 이야기로만 존재하지 않게 되었지요. 그 지역사람들은 동화와 관련된 문화 상품 즉 제 삼차 가공품들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지요. 흩어진 민담이 일차 원석이라면 그림형제가 이차 가공품으로 만들었지요. 그리고 훗날 사람들은 삼차가공품을 만들었다는 거지요. 동화 이야기에 바탕을 둔 연극, 뮤지컬, 캐릭터 상품, 테마파크 등등이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600km의 길 자체를 상품화시킨 것이지요. 삼차 가공품의 산업적 부가가치는 계량화하기가 힘들 정도로 엄청나겠지요. 하나의 예만 들어봐도 알 수 있습니다. 동화, 피리부는 사나이로 유명한 하멜른 시의 경우를 보지요. 하멜른 시의 인구는 대략 5만여 명입니다. 그 작은 도시에 일 년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무려 400여만 명이라 하네요.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이야기를 이 지역 배경으로 만들 때 설마하니 이런 엄청난 이벤트가 생길 줄은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러나 이것이 현실입니다. 바로 이야기의 힘이지요. 참으로 무시무시한 괴력의 힘이 이야기에 있네요.

 바다건너 영국으로 가 볼까요? 그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중세 영국의 북쪽 해안에 스카보로 라는 어촌 마을이 있었지요. 그곳은 상인들의 중요한 교역장이었지요. 스카보로의 시장엔 상인뿐만 아니라 마술사들이 모여들어 45일간 거대한 향연을 벌이기도 하였지요. 마술사가 모여들었다는 건 숱한 이야기보따리들을 지고 들어왔다고 봐야겠지요. 이 축제기간에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대륙에서도 각종 인파가 모여들었으니 어쩌면 최초의 국제박람회 분위기였을 것 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상업박람회가 아니라 이야기 박람회였겠지요.

 사람들은 그때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지요. 엘핀 나이트. 차일드 발라드라는 민요가 그렇게 생겨났지요. 또한, 음유시인들은 그때 상황을 수 십 편의 시로 남기기도 했고요. 그리고 중세시대는 문을 닫고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마술사들의 시장도 문을 닫았지요.

 그러다가 20세기에 두 남자가 등장합니다. 두 남자는 중세 때 전해져 오는 엘핀 나이트라는 민요를 새롭게 편곡을 했지요. 두 남자의 편곡된 노래는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지요. 바로 그들의 이름은 사이먼과 가펑클이었지요. 바로 그 유명한 스카보로 페어입니다. 두 남자는 노래 하나로 그 옛날 스카보로의 환타지를 노래에 담았고, 지금은 조용한 작은 어촌마을을 전 세계에 알려주었지요.

 1970년대 극동지방의 소년이었던 저도 스카보로라는 마을이 환타지로 자리 잡았지요. 그런데 이 노래를 가만히 듣노라면 살짝 이상한 부분이 있어요.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가사가 좀 희한해요.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입니다. 모두 요리와 관련된 식물이름들이군요. 좀 뜬금없지요. 이 노래는 연인에게 버림받은 한 남자의 발라드인데 왠 요리 관련 식물들일까요. 네에, 그렇다면 파슬리에 대해서 잠깐 알아볼까요? 파슬리는 중세 때 주로 수도원에서 재배되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파슬리는 악마의 풀이라는 소문이 난 것입니다. 파슬리는 다른 식물에 비해 발아 기간이 엄청 길다고 하네요. 그 단순한 특징하나에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었지요. 파슬리가 한번 발아하기 위해서는 악마에게 7번을 갔다 와야만 된다는 요상한 이야기를 만들었지요. 그 소문 때문에 파슬리는 졸지에 악마의 풀이 되어버렸지요. 사람들이란 게 참으로 이야기 만들기 좋아하네요. 게다가 영국사람들의 이야기 욕망이라니...그 다음 sage를 볼까요? 세이지는 허브의 대표 풀입지요. 켈트족 사제들은 세이지를 죽은 사람 돌아오게 하는 영험한 식물이라고 소문을 내었다고 하네요. 아마도 강한 향 때문이었지 싶네요. Thyme은 우리나라의 백리향쯤 되는 식물일 거예요. 엄청난 방향제의 식물이라는 뜻이겠지요. 위의 식물들은 모두가 마술과 관련이 있다는 거지요. 풀 하나에 환타지의 세계들을 그려 넣은 거지요. 자아 다시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로 돌아갈까요? 스카보로 페어는 연인에게 버림받은 남자의 이야기예요. 그 슬픈 사연 중간마다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앤 타임을 반복 한다는 건 바로 주술적인 의미 같네요. 중얼중얼 주술로서 떠난 연인 되돌려 달라는 뜻이겠지요. 이 노랫말은 사이먼과 가펑클의 창작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스카보로에서 전해져 오는 환타지의 세계를 노래한 것이지요. 자아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21세기 되었습니다. 스카보로의 마을에 한 사나이가 등장합니다. 교인 80여명 되는 세인트 메리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입니다. 이 목사님도 호기심 천국의 꿈돌이 였나봅니다. 오토바이 타고 동네를 슬슬 돌아다녀 보다가 앗~! 하고 깜짝 놀라버렸지 뭡니까. 성이면 성, 집이면 집, 골목이면 골목, 오래된 카페면 카페, 마을 곳곳이 이야기 천국이었다는 걸 발견한 거죠. 온통 이야기로 범벅된 이곳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입이 건질거렸겠지요. 건질거리는 입을 참지 못하여,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 억누를 길 없어서 그는 드디어 들은 것들을 윤색하여 이야기를 만들었지요. 책 한 권 분량으로 만들긴 했지만, 출판사에선 시큰둥했나 봅니다. 내친김에 가보자 심정으로 애지중지 아끼던 오토바이를 팔아치웠습니다. 그 돈으로 몇백 권의 책을 자비 출판하여 교인들에게 나눠주었지요. 이게 입소문을 타고 대형출판사에서 출판했는데요, 이게 왠일이랍니까? 당시 전 세계적으로 입에 거품 물고 달리던 책인 해리포터를 꺾었다지 뭡니까. 무려 15주 동안 해리포터를 앞서는 전설의 대박 소설의 탄생이었던 거지요. 당시 그의 목사월급은 한화로 150만원이었지요. 그런데 그가 한 권의 책으로 벌어들인 돈이 무려 500억원 이었다고 하네요. 그의 이름은 그레이엄 테일러입니다. 이제는 해리포터와 어깨를 겨루는 환타지 소설 Shadowmancer의 탄생인 거지요. 즉, 우리말로 옮기자면 죽은 자의 대변인이라는 뜻이지요. 

 이게 바로 영국인들입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였고 또한 듣기를 좋아했으니 당연히 만들기도 좋아하였겠지요. 그 증거가 있습니다. 영국에는 수만 개의 스토리텔링 클럽이 흩어져 있습니다. 모여서 이야기 들려주고, 이야기를 듣는 모임이 골목 골목에 촘촘하게 박혀있지요. 이야기의 향연이 밤낮으로 이어진다는 거겠지요. 또한, 그들은 단순히 골목 모임에서 벗어나 FATE라 하여 스토리텔링을 축제를 열기도 하지요. 또한, 스토리텔링 클럽과 프로패셔날 스토리텔러와 연결하여 확대 재생산에도 힘쓰고 있지요. 그러한 활동의 전면에는 스토리텔링 협회가 있기도 하고요. 스토리텔링 협회는 스토리텔링 공연 극장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까지 발전되어 가고 있지요. 또한, 영국의 대학에서는 창의적 글쓰기 관련 강좌가 600여개 정도가 개설되어있다고 하네요. 이야기 만들기의 강좌가 600개라니 이쯤 되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다 끌어모아 보겠다는 욕망이 보이네요. 세상에 이야기 싫어하는 민족이나 국가가 어디 있겠습니까만, 이쯤 되면 영국인들의 이야기 집착은 아주 집요하고 구체적이지요. 그러니 해리포터의 탄생이 우연한 결과물이 아닌 것이겠지요. 이러한 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겠지요. 영국은 바로 세익스피어 나라이지 않습니까. 또한, 환타지 이야기의 원조 격인 아서왕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흔히 해리포터를 소개할 때 그 이야기 하나가 300조의 부가가치를 생산했다느니, 언급할때는 우리는 그 부가가치를 마치 우연히 하늘에서 떨어진 로또 당첨된 것 같은 느낌으로 언급될 때가 있지요. 해리포터의 대성공은 우연이 아닌 것이지요. 영국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곳입니다. 그들은 지금 제2의 산업혁명을 스토리텔링에서 찾지 않나 싶네요. 왜냐하면, 영국의 문화산업은 GDP의 8%를 차지하고 있다 하네요. 문화산업이 국민총생산의 8%라는 것은 저절로 이뤄진 일이 아니겠지요.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영국정부 문화부 내에 해리포터만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다는 것이 좋은 증거이겠지요.
 


김전한
1991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당선
2008.03~ 동아방송예술대학 영화예술과 겸임교수
2005년 영화 녹색의자 (각본)
2007년 영화 69년, 달의 궁전 (각본 및 연출)
2011년 영화 다슬이 (기획)
김전한(시나리오 작가) kjh6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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