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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4년05월30일 16시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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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옥의 일상을 사는 17명이 환하게 웃고 있다.
[밀양을 살다] (3) 소박한 사람들의 진리,『밀양을 살다』

백창욱(청도345kv 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 baek0808@hanmail.net

여기 17명의 얼굴이 있다. 다행히도 또 고맙게도 모두 웃는 얼굴이다. 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알면, 웃는 게 왜 다행이고 고마운지 안다.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 아니 지옥의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환하게 웃고 있으니 말이다.

필자는 『밀양을 살다』앞에 실린, 밀양지도에 나온 마을과 등장인물을 하나하나 대조해가며 읽었다. 동화전마을, 용회마을, 보라마을, 골안마을, 도곡마을, 여수마을, 위양마을, 평밭마을. 시골 어디에나 있음직한, 정감넘치는 마을들이 지금은 국가폭력에 맞서서 하루하루 사투를 벌이는 고난의 현장이 돼 버렸다. 그리고 각 마을의 상징이 된 할매, 할배들은 이 고난의 현장을 지키는 전사로 우뚝 서 있다. 이분들은 특별한 사람들인가? 아니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거나, 시집왔거나, 도심지에서 공기 좋은 곳을 안식처로 삼아 온 분들이다. 송전탑이 말년 자기들 인생을 이렇게 소용돌이에 빠뜨리게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분들이다. 그러나 이분들은 평범한 인생 속에 진가를 발휘한다. 평범에 진리가 있다고 했던가. 자기에게 닥친 운명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타협하거나 굴복하지도 않았다. 어찌 됐든 간에 이 산하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자신들을 던졌다. 그러니 사람들은 밀양송전탑 반대 싸움을 넘어서 이분들 자체가 경외로운 거다. 당연히 이분들 인생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다.

또 주목할 게 있다. 어찌하여 우리는 밀양에 관심을 기울이고, 희망버스다, 연대다 하면서 기회만 나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 밀양으로 달려가는가, 지금도 밀양과 아무 연관없는 사람들이 산꼭대기 움막으로 자기들 먹을 양식을 짊어지고 올라가고, 거기서 죽치고 지내는가 말이다. (밀양단체 카톡방에는 할매할배들과 연대자들이 현장에서 알콩달콩 지내는 소식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그건 그분들 삶이, 살아오신 이야기가 우리 부모님과 한치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동병상련이다.

밀양의 전사들도, 우리 부모님들도 일제 강점기를 견뎠다. 전쟁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지리도 가난했던 시절에도 자식들을 건사하고 키워냈다. 그렇게 죽도록 고생해서 오늘날 겨우 이만큼이라도 살게 된 할매 할배들, "이제 일제도 가난도 다 지나갔는데, 국가가 다시 한 번 벼랑으로 밀어내다니 이럴 수는 없다"고 탄식하는 분들이, 그곳에서 운명을 건 한판 싸움을 하는 것을 알고 난 이상, 우리가 사람이라면 우리 부모님들과 똑같이 고단한 삶을 살아오신 이분들의 인생도, 행복도 지켜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제아무리 상대가 거대기업 한전일지라도, 공권력을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 하는" 정부일지라도 말이다.
 
무엇 때문에 할매들은 송전탑을 막는다고 생고생인가?

▲[출처=뉴스민 자료사진]

할매들은, 일제강점기 때, 위안부를 피하고자 서둘러 결혼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시댁살림 속에서 가족들을 생존시킨 고생이라니! "내 손톱 발톱 뭉개지도록 오만 일 다하고", "참말로 일 많이 했습더" 정말, 『밀양을 살다』는 할매할배들의 생존기이다. 그렇게 고생하면 잘 풀려야 할 텐데, 어찌하여 대개는 고단하기만 한 지!

구술 글쓴이들이 인터뷰를 위해 현장에 가면 이들은 하나같이 농사일 중이다. 그렇게 농사밖에 모르고 살아온 이들이 자식보다 아낀다는 나락이 죽어가는 걸 외면했다면 이는 예삿일이 아니다. 그 싸움에 운명을 걸었다는 뜻이다.

어떤 이유가 있을까?
 
요는 자식들이다. 그들이 고향에 왔을 때, 편히 발 뻗고 살 수 있는 터를 남기기 위해서다. 또 있다. 평생을 손발이 다 닿도록 일구어 놓은, 자식들에게 물려 줄 땅과 밭이, 송전탑 때문에 재산가치를 잃어버리는데, 어서 옵쇼 하고 환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점에서 할매할배들은 현대문명에 익숙한 한 개인이 아니다. 자신을 씨족공동체와 동일시하여,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바치는 고대인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송전탑 세운다고 했을 때, 송전선로 결정할 때, 당사자들에게 말이라도 했느냐 말이다. 모두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이렇든 저렇든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한 할매는 성당에를 못 간다. 고백성사 전에 영성체를 해야 하는데, 한전직원과 경찰들에게 너무너무 욕을 한 것 때문에 마음에 걸려서이다. 이런 경우, 신부는 욕을 하는 할매보다는 욕을 먹는 한전놈에게 회개를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연대자들이 경찰과 붙을 때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적당한 때에 나서는 할매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밀양을 살다』에 나오는 밀양지도에는 밀양투쟁의 상징적장소도 표시해 놨다.

102번 송전탑,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한 장소이다. 우리 모두 102번 송전탑이 최후의 거점이 될 줄로 알았는데, 교활한 한전이 보라마을을 집요하게 들쑤신 결과, 최근 주민들이 합의에 이르고 말았던 장소이다. 그 까닭에 송전탑을 찬성하는 주민들에게는 눈엣가시였던 이종숙 이장은 60년 동안 함께 살아온 주민들에게 탄핵도 당하고, 밖으로는 차마 낯을 들고 다닐 수도 없도록 한, 사연이 있는 장소이다. 무지하게 서운할 수 있는 결과이지만, 그래도 착하기만 한, 이계삼 밀양대책위 사무국장은 다 이해한다고, 오히려 이종숙 이장님을 걱정하는 것을 신문에도 강연에서도 들었다.

움막도 있다. 127번과 129번. 세상에 이런 지도가 다 있는가. 평화로운 시골풍경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지명이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움막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경찰과 한전의 침탈에 대비하여 밤낮없이 경계를 서야 하는 민중의 참호이다. 그 움막 안에는 가스통, 쇠사슬, 또 민중이 고안해 낸 여러 친자연적인 무기들이 비치돼 있다. 가스통은 뭔가? 침략자가 닥쳤을 때, 물리력으로는 퇴치할 수 없으므로 할매들이 '너 죽고 나 죽자'는 결의를 나타내는 저항무기이다. 쇠사슬은? 가스통과 더불어 '너 죽고'가 안될 때, '나는 반드시 죽는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목줄을 당기는 도구이다.

최근 밀양과 똑같이 송전탑 문제로 몸살을 앓는 청도 삼평리 할매들도 23번 송전탑 건설 진입로에 어느 날 하늘로부터 뚝 떨어진 망루 위에 올라가서 서로서로 쇠사슬을 목에 감고, 경찰과 한전에게 경고를 보낸 바 있다.

이런 게 왜 산꼭대기 움막에 있어야 하지? 왜 할매들은 그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을 몰아가지? 하고 질문하지 마라. 차라리 그 질문은 침략자들에게 하라.

송전탑은 화악산 줄기를 타고 관통한다. 화악산은 밀양의 터줏대감인 할매, 할배들이 나고 자라면서, 또 자식들 낳고 키우면서, 그들이 자연의 품 안에 있다는 슬기를 날마다 일깨워 준 산이다. 밀양의 정기를 뿜어내는 신령한 산이다. 그런데 이 산에 송전탑이 들어선다니! 그것도 52개나! 그것은 사람의 심성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영남루는 또 어떤가. 역시 사무치는 장소이다. 유한숙 어르신이 자결하고, 그 분향소를 밀양 시내에 설치하는 일로, 밀양시청과 경찰과 전쟁을 치르고서 확보한 장소가 영남루 다리난간이다. 할매들은, 주민들은 분향소를 사수하다가 저녁이 되면 영남루에서 촛불을 켰다. 영남루 분향소를 비닐 한 조각에 의지해서 지키던 다음날, 비가 억수같이 오자, 빗물을 피하는 파레뜨를 깔고자 하는 소박한 요구를 경찰들은 병력을 동원해서 파레뜨를 탈취해가는 것으로 대답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는 경찰은 천연덕스럽게 절도범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날 나도 비를 쫄딱 맞으며 경찰을 향해 얼마나 악을 썼는지.

1945년 해방 직전, 딘 러스크와 찰스 본스틸이 위의 지시를 받아서 한반도 지도 위에 자를 가지고 쭉 그은 38선이 분단의 선으로 지금까지 이 땅의 민중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 주었듯이, 한전 마름들은 윗선의 지시를 받아서 화악산 유려하고 그득한 줄기 위에 자를 그어서 송전선로를 결정했다. 그 송전선 밑에는 자본의 효율성, 유력자의 힘 등 불순한 이해관계도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최우선당사자인 한반도 민중들을 배제하고 자기들 멋대로 그은 38선이 한반도를 분단체제로 밀어 넣고, 끝없는 증오와 대결을 양산하듯이, 밀양에서 나고 자란 최우선 당사자인 주민들을 배제하고 자기들 멋대로 그은 송전탑 노선은 그 이후, 밀양주민들을 분열의 수렁에 몰아넣었고, 또 『밀양을 살다』에 나온 전사들을 완전히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해야 하는 극단의 길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9년이다.
 
그 사이에 알곡과 쭉정이는 진즉 판가름났다. 말 그대로 돈 몇 푼에 쭉정이가 돼 버린 마을 이웃들. 평범한 시골사람에서 투사가 된 주인공들은 이 사실이 못내 서운하다. 그깟 돈 몇 푼에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돈 한 번 받으면 끝'인 걸 정녕 모르나!
 
이 와중에 한전이 결코 용서가 안 되는 것은, 울력으로 서로 기대고 사는 마을공동체, 고요한 마을을 송두리째 깨버린 일이다. 송전탑이 뭐라고? 사람살이가 우선이지!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마가 2:27)라고. 안식일 대신에 송전탑을 넣어봐라. 그래도 한 치 어김없는 진리 말씀이다.

필자는 청도 삼평리 송전탑 반대 싸움에 가담하면서, 늘 의문을 가진 게 있다. 왜 할매들인가? 젊고 똑똑한 것들은 다 어디 가고? 그러다가 깨달았다. 싸움의 선봉에 할매들이 선 이유를. 땅과 자연을 지키는 일에는 이해관계에서 가장 순수한 할매들이 제격인 것을. 젊고 똑똑한 것들은 뭐하냐고 힐난했지만, 실제 젊고 똑똑한 것들이 선봉에 섰던 적이 있다. 청도 삼평리도, 밀양도. 밀양은 대책위가 몇 번이나 바뀌었다고 하지 않는가. 왜 바뀌었겠는가? 그들이 젊고 똑똑하기는 한데, 그만큼 세상 물리에서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돈뭉치를 흔들면서, 이익을 따져 보라고 회유하는 저 사악한 세력들을 상대하기에는 그들 역시 이익에 밝았다. 그러니 최종적으로 할매들이 선봉에 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연대자들도 초록은 동색이다. 자기 시간과 돈 써 가며, 까닥 잘못하면 경찰에 체포되고 형살이도 할 수 있는 일을, 기꺼이 마주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이 모습을 보니 이스라엘의 원조가 떠오른다. 출애굽에서 탈출한 히브리노예들이 팔레스타인땅의 농노들과 연대하여 그들만의 새 세상을 만든 것 말이다. 이렇듯 권력과 자본의 지배질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길은 우선 거부하고 저항하고 싸우는 길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 걱정 투로 묻는다. 이 싸움 이길 수 있을까요? 결과가 어찌 될까요?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악한 저들도 우리도.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이기고 있다는 것, 그 결과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 알곡들만의 진실한 공동체를 만끽하고 있다는 것이다.

『밀양을 살다』의 주인공들은 비록 송전탑 반대 싸움으로 평범한 일상을 잠시 잃었지만, 얻은 것도 있다. 세상을 새로 깨우친 것이다. 소박하게 땅만 일구던 사람들은 이 세상이 자연 질서 말고도 권력과 자본이 지배하는 응성시러운 또 다른 세상이 바로 자기 코앞에도 있다는 것을 새로 알았다. 이것만해도 이분들은 모든 고생을 상쇄하는 보람을 얻었다. 이런 세상물리를 모르고 살다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허다한가? 그리고 덕분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전국 각지에 자기들 같이 억울하고 열통 터지는 일을 당한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데 위안을 얻는다. 그러면서 새로운 각성이 솟는다. 약자들이 연대해서 우리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음을. 『밀양을 살다』』는 바로 이 평범한 진리를 평생 소박하게 살아온 민중전사들을 통해 풀어낸다. 그리고 우리 가슴을 적신다.
 

백창욱(청도345kv 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 baek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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