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는 주민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밀양을 살다>가 출간되었다. 밀양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또 다른 시대의 고유명사가 되어 버린 용산, 강정, 쌍용차를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2012년 겨울,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모진 소식을 ‘함께살자 농성촌’에서 함께 들었던 사람들. 2014년의 차디찬 소식들을 마주하며 여전히 함께 살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시대를 살아내는 공감과 연대의 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처음 서평을 부탁받았을 때 망설이는 내 마음과 달리 흔쾌히 ‘ok’ 라는 답을 주었다. 그건 함께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 그리고 더 열심히 하지 못한 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에 ‘이거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 서평을 너무나 쓰기 싫다. 글 꽤나 쓴다는 사람들이 이미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뭘 더 써내려 갈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고, 이 책이 출간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겠나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밀양이 나에게 남겨준 ‘몫’을 함께 나누고자 함일 것이다.
택배로 도착한 책의 포장지를 뜯으니 흑백으로 처리된 17인의 온화한 미소가 눈에 들어온다. 밀양 송전탑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밀양에서 농사짓는, 귀농해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정도다. 세상의 모든 아픔을 끌어안을 것 같은 17인의 웃음이 표지에 꽉 차 있다. 표지를 보는 순간 너무 슬펐다. 그들의 웃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웃어도 웃는 게 아닐 것 같아서 그리고 이 웃음을 잃은 것 같아서 슬펐다.
이 책은 밀양에 사는 17인의 삶을 조곤조곤 이야기해준다.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저마다 삶의 무게들이 존재하듯 표지를 가득 메운 17인도 마찬가지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낸 아픔, 화악산과 사랑에 빠진 기쁨, 미술 공부를 더 하지 못한 아쉬움 등 저마다의 가볍고 무거운 무게들이 이 책에 담겨있다. 기쁨의 무게를 더 화려하게, 아름답게 표현하려 하지 않고 슬픔과 서러움의 무게를 더 극적이게 더 눈물나게 하려고 하지 않은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이 책을 읽으며 은은한 반짝임을 느낀다. 존재의 반짝임이 이런건가 싶다.
저마다의 이야기와 무게가 있는 17인의 이야기는 76만 5천 볼트 초고압 송전탑이라는 하나의 매개로 귀결된다. 그렇다. 이 책은 밀양에 사는 그리고 밀양땅에 들어서는 76만 5천 볼트 초고압 송전탑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해가 뜨기도 전 산을 오르고, 무섭게 돌아가는 포크레인 밑에 들어가고, 무지막지한 경찰병력과 맞서고, 한전의 야비한 술책에 분노하고, 언론의 거짓 보도를 보며 억장이 무너졌던 이들의 이야기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그 세월 동안 초고압 송전탑이 건설되는 걸 막기 위해 삶의 많은 부분을 버려가며 제 뜻을 이어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이 출간된 게 싫다. 그리고 밀양 송전탑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투사’ 혹은 ‘영웅’처럼 보이는 게 너무 힘들다. 나는 책을 읽으며 따뜻함, 때로는 가슴 쓰라린 슬픔, 벅차오르는 감동의 순간들을 만났다. 아마 많은 이들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앞서 말한 순간들을 느껴서 슬프다. 송전탑 때문에 밀양을 사는 사람들이 힘들지 않았더라면, 그저 그들의 삶의 방식대로 살아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이 책이 안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느 유명 작가의 책 제목처럼, 많은 사람이 밀양 송전탑 반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주민들에게 ‘지금이 참 꽃 같은 순간이에요’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단순 위로의 말이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든 간에 그 말은 이제 그만하자. 이들은 원래 꽃이다. 화악산에 피어난, 식물도감에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꽃들이다. 그저 햇빛이 비치면 내리쬐고, 비가 오면 그대로 맞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며 살아온 꽃들이다.
이 꽃 같은 사람들과 함께하려는 많은 이들이 있다. 당번을 서고, 후원금을 보내고, SNS를 통해 알려주고, 희망버스와 함께 달려갔던 바로 당신들이다. 꽃의 옆에서 햇볕을 같이 쬐고, 비도 맞고, 바람에 함께 흔들렸던 바로 당신들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화악산에 아무리 찾아간들 꽃들이 뽑혀나가는 걸 막을 수 있을까? 아니. 나와 당신들에게 남겨진 ‘몫’은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는 이 꽃들이 어떻게 피어났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바람에 흔들리는지, 얼마나 힘겹게 버텼는지 그리고 이 꽃의 끝이 어찌 되는지 우리는 옆에 서서 똑바로 지켜보아야 한다. 밀양의 76만 5천 볼트 초고압 송전탑 반대 싸움을 아름답게 포장하려 하지 마시라. 그리고 더 이상 꽃들을 투사나 영웅으로 만들지 마시라. 그러기 위해선 밀양에 피어난 꽃들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가슴에 새겨달라. 그게 나와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이다. ‘기억함’으로 인해 이 꽃들을 만개시키자. 그게 이 책이 출간된 단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를 위해 마음을 모은, 그리고 지금도 모으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뜨겁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