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장르 선택의 헛발질
저의 경우를 말씀 드려야겠네요. 저는 시나리오 작가입니다. 시나리오를 한편 썼습니다. 주변 영화인에게 읽혔습니다. 나쁘진 않다고 하네요. 여기저기 영화사로 시나리오가 굴러다닙니다. 나쁘진 않아서 어느 영화사에서 덥석 물긴 했네요. 그런데 삼키진 않네요. 물면 뭐 합니까. 삼켜야 일이 성사되는건데, 영화사는 자꾸 망설이네요.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그러다 돌아오는 소리가, 이걸 차라리 소설로 쓰지 그랬나 라고 하네요. 이런 젠장할, 제가이 이야기를 시나리오 문법에 맞춰서 쓴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전혀 다른 문법인 소설로 다시 쓰라고요?
또 이런 경우도 있겠지요? 누군가가 TV 드라마 미니시리즈를 누군가가 썼습니다. 그 원고를 읽은 사람들은, 오호...좋은데? 그러나 이건 방송 불가~! 지나치게 비 윤리적이며 폭력과 섹스 난무로 인해 드라마로서는 불가능함 이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칩시다. 그 작가는 다시 장르를 옮기기 위해서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작가는 드라마 문법만을 익혀왔기 때문에, 다른 장르로 옮겨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로 헛발질인거지요.
장르 선택의 헛발질인거지요. 그런데 스토리텔링이라는 장르가 체계화가 된다면 이런 헛발질을 상당부분 줄여줄 수가 있겠지요. 왜냐하면 스토리텔링은 그 모든 장르로 이전할 수 있는 원석을 만드는 과정이니까요. 흥미로운 이야기를 일단 만듭니다. 그리고 판정을 받습니다. 이것은 소설에 어울릴까? 영화로 가야하나? 에니메이션으로 가야하나? 드라마로? 뮤지컬로? 연극으로? 즉 스토리텔링은 모든 서사 장르의 원석인 셈이지요. 일차 가공품이라 할 수 있지요. 일차 가공품은 특정장르로 쓴 원고보다는 갈 길이 몇 배는 더 열려있지요. 장르의 헛발질 개연성이 그만큼 줄일 수 있다는 거지요. 또한 일차 가공품을 수용하는 쪽에서도 유리한 점들이 많겠지요. 이야기로서의 가치성만을 보고 원석을 가져오면, 수용하는 쪽에서도 그것을 자신들의 장르로 변환시키기에도 훨씬 용이할 것 입니다.
원석을 서로 주고 받는 경우는 많지요. 지금까지 영화는 주로 소설에서 이야기를 많이 받아왔지요. 최근 들어서는 만화에서도 가져오는 경우도 많고요. 영화화 된 것을 영상 소설이라 하여 책으로 다시 세상에 나오기도 하고요(이런 경우는 대부분 큰 재미는 보지 못 하더군요). 맘마미아의 경우엔 어떤가요? 전설의 그룹 ABBA의 노래로 뮤지컬이 먼저 만들어졌고 그 다음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지요. 이렇게 각 장르들은 상호작용을 활발하게 해 왔었지요. 누가 먼저 랄 것이 없겠지요.
스토리텔링 이라는 장르가 자리를 잡게 된다면 그것은 좀 더 조직적이고 구체화가 되겠지요. 즉 모든 이야기 장르로 나갈 수 있는 기본 텍스트를 만들어 두는 것이죠. 기본 스토리를 먼저 확고하게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의 원작으로 혹은 만화로 뮤지컬로 방송 드라마로 나갈 수가 있겠지요. 어떤 경우엔 원석의 이야기가 만화로 넘어갔다가, 내친김에 영화로 옮겨지더니 뮤지컬로도 공연되더니 마침내 게임으로 까지 가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요. 개별 장르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개별 장르 문법에 쏟아내는 에너지 대신에 자유로운 이야기 구사에 집중을 한 결과, 모든 장르로 날개 달고 날아가는 경우도 생기겠지요. 이럴 경우, 저작권의 법률적인 장치만 잘 해 둔다면 하나의 원석 이야기가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겠지요. 상상을 해 봅니다. 하나의 원석이 날개 달고 날더니 마침내 모든 장르로 옮겨 간다. 그리고 그 원석을 만든 작가는 이야기 하나로 대 부호가 된다. 이야기꾼 부자의 탄생시대 말입니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실현 가능한 현실의 시대가 온것입니다. 잘 만든 스토리텔링 하나가, 열 소설 안 부럽다겠죠. 네 그렇습니다. 스토리텔링은 장르 헛발질의 극복뿐만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용어 OSMU(one source multi use)의 완전한 구현이겠지요. 이쯤 되면 이야기 꾼으로 살아간다는거 해 볼만한 직업 아닌가요?
그렇다면 이 스토리텔링의 원고작성은 어떤 형식으로 해야 될까요. 그나마의 가이드 라인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네요. 콘텐츠 진흥원의 스토리텔링 공모양식과 영화진흥위원회의 기획개발 공모를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스토리 원고로서는 현재로서는 가장 공신력있는 기관의 응모요강이니까요. 관심있는 분들은 그곳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들어가는 순간, 스토리텔링은 국가적 산업이라는 사실을 확인 될 것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상황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는 지금 스토리텔링을 중요한 미래산업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무한대로 펼쳐진 주인없는 땅, 이야기의 들판에 전 세계인들은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황금광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김전한
1991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당선
2008.03~ 동아방송예술대학 영화예술과 겸임교수
2005년 영화 녹색의자 (각본)
2007년 영화 69년, 달의 궁전 (각본 및 연출)
2011년 영화 다슬이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