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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4년05월13일 20시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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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만화산책] (12) 일본 만화로 알아보는 르네상스의 비결
만화의 신생 품종, 게키가

강기린 giraffe_kang@hotmail.com

르네상스, 예술의 황금기를 일컫는 말이지요. 요 르네상스가 있었던 이탈리아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비주류 두더지들이 땅 위로 마악 치고 올라온다는 겁니다. 막강하던 천동설 밀어내고 지동설 올라왔지요. 교황 절대 문화에서 맹랑하게도 우신예찬이 탄생했지요. 어떻게 보면 예술 황금기의 비결은 새로운 종의 번식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만화계의 황금지대는 어디라고 할 수 있을까요? 머릿속을 스치는 나라가 있습니다. 일본! 아시다시피 그곳은 만화의 곡창지대입니다. 그중에서도 최고 황금기가 있었지요. 만화의 신생 품종, 게키가(げきが,劇画)가 번지던 시기입니다. 게키가는 극화를 뜻합니다. 미국의 그래픽 노블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게키가는 그래픽 노블만큼 친숙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에 만화 금맥이 터진 건 2차 세계대전 이후입니다. 원자폭탄 맞고 종전이 되고 전 국민은 황망해 있을 때였지요. 일본은 유사 이래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겪은 아이들에겐 정신적 이완이 필요했어요. 그러나 일본은 전쟁 때문에 선전적인 내용만 허용해왔지요. 그런데 전후에 이 규제가 풀린 겁니다. 출판사들이 하나둘 몸풀기에 나서고, 때맞춰 일본 만화계의 대부님인 데즈카 오사무 라는 예술가가 등장합니다.

데즈카 오사무는 우리도 잘 아는 아톰, 밀림의 왕자 레오를 만든 분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아이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면서, 평화의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인기 폭발이었지요. 이후로 줄줄이 아기자기한 캐릭터가 나오는 만화들이 주류로 정착했습니다. 이 시기의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를 망가세대라고 부릅니다.

 망가세대가 어른이 되었습니다. 사회현실에 눈뜨는 시점이었죠. 현실은 잔인했습니다. 일본 사회엔 여전히 전쟁 후유증이 있었습니다. 신음하는 사람들을 외면한 채 일상을 사는 것은 고통이었습니다. 망가 세대 사이에 반미, 학생운동 붐이 일었습니다. 망가세대의 갈증이 심화하였습니다. 진통제가 아닌, 자기표현의 장으로서 만화를 원하고 있었던 거지요.

▲요시히로 타츠미 [출처: http://eastasia.fr]
바로 그때 혜성처럼 게키가가 등장했습니다. 그것을 만든 이는 요시히로 타츠미였습니다. 문제의식을 가진 만화가였지요. 그는 전쟁 후유증을 가진 캐릭터가 사회에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려냈습니다. 그래서 우울하고 폭력적이며, 야하지요.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유해매체로 치부하기에 십상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아는 망가세대는 이를 환영했습니다. 모두가 사회에 있음직한 상처였지요.

 게키가 붐은 대단했습니다. 거장 오사무 데즈카도 이 대열에 합류할 정도였지요. 그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마니아 중심의 작품인 <아돌프에게 고한다>를 만들었습니다. 게키가의 등장은 만화의 역할범위를 보다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정신적 이완에서 대중의 표현 욕구 충족으로 나아갔지요. 이 시절은 일본만화의 정점이자, 르네상스였습니다. 대중문화에서 대중의 힘이 극대화된 시절이었죠. 

▲요시히로 타츠미의 <극화 표류>의 한 장면.

 안타깝게도 게키가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일본이 버블경제로 반짝 윤택함을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은 사회보다 소비문화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대중문화에서 대중이 발휘할 힘은 점점 약해졌습니다. 자본은 문화를 선점했습니다. 그 틈을 타고 자연스레, 사람들이 흔히 하는 생각! 대중문화는 상업성이 있어야 한다는 공식이 확립되었습니다. 게키가의 퇴화 원인도 ‘상업성 결여’라고 알려지게 되었지요. 그러나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대중 참여의 부재겠지요.

싱가폴 영화 감독 에릭 쿠가 만든 <타츠미> 트레일러, 시대속에 맞물린 예술가 이야기이며, 요시히로 타츠미의 일생이다.

 대중문화에서 상업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대중문화는 대중의 수요에 따라 팔리고, 안 팔리면 사라지니까요. 그러나 그보다 앞서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대중문화를 만드는 것은 대중이라는 것입니다. 상업구조 안에서도 르네상스는 가능합니다. 게키가의 시절이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실제로 르네상스의 나라, 이탈리아 역시 상업이 발달했었습니다. 그런데 우신예찬과 지동설이 꼭 상업성이 있어서 발달했던 것일까? 그건 아닙니다. 비결은 시민문화 발달이지요. 오늘날 많은 사람이 르네상스를 동경합니다. 알고 보면 르네상스란, 언제든 불러올 수 있는 것입니다. 단, 시민이 자신 있게 사회에 참여하고, 다양한 의견이 수용되고, 언더그라운드가 더 이상 언더그라운드로 천대받지 않는 사회라야 가능하겠지요?  


강기린
만화도 문화다, 오락 그 이상의 만화,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강기린은 척척팩토리의 서브라이터이자 만화평론가입니다.
척척팩토리는 만화 창작집단으로 네이버에 <7번국도아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강기린 giraffe_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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