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와 부활 시기 복음에 대한 책을 읽었다. 그 가운데 한 권이 ‘유배지에서 예수 읽기’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저자는 그리스도인이다. 저자인 백창욱 목사는 대구에서 사회운동과 목회를 함께하고 있어서 평화와 통일, 정의를 실천하는 대구시민사회에 잘 알려졌다. 현재는 경북 청도345KV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12년부터 ‘백목사의 예수읽기’란 이름으로 ‘뉴스민’에 연재를 한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지식과 현장
현장과 지식을 함께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한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는 인터넷 방송에서 남미와 유럽을 예로 들며 현장과 학문이 불균형한 신학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데 백창욱 목사의 글은 현장과 학문이 함께 살아있다. 그의 글을 읽어보면 놀라우리만치 현장과 성경구절이 잘 어울린다.
저자는 제목에서 ‘유배지’를 쓴 까닭을 “성경과 유배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히브리 성경은 유배지에서 나온 책이다. 유배지로 끌려간 야웨(야훼) 백성들의 처절한 삶의 기록이다”(10쪽)라고 서문에서 말했다. 유배의 이유가 “이스라엘이 바빌론에게 망한 것은 야웨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이방민족과 똑같이 사람 차별 세상을 만들고 약자를 학대한 죄 때문임을 인식시켰다”(11쪽)라고 말한다.
구약의 이스라엘과 유다는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하느님을 무시하고 이방민족들의 지배문화를 닮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계속되는 유배시절과 로마 식민지 치하에서 “예수는 바로 이때 등장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기억하는 평등 세상에 대한 그리움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예수는 그 평등사회를 다시 복구하고자 했다. 그리고 민중들을 유배지에서 해방시켰다. 그 이야기가 바로 복음서 말씀이다”(12쪽)라고 한다. 유배지란 멀리 강제로 떠남 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식민지 내부에서도 독립적이지 않은 상태도 포함한다.
첫 번째 주제는 마귀를 쫓아내는 예수로 시작한다. 예수가 살았던 로마 식민지 치하의 팔레스타인(가톨릭 새번역은 필리스티나) 땅은 마귀들렸다는 의미가 강할 정도로 폭력적이었다. 이런 폭압적인 상태에서 복음서 저자들은 우회적 표현을 썼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러고는 우리 안의 마귀를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오늘날은 독점·양극화를 유발하는 경제구조의 핵심에 있는 자본과 그 동업자인 권력들이 귀신들림의 유포자이다”(31쪽)라고 한다. 예수가 이 제국이 불러온 마귀를 쫓아내는 첫 이적을 행한다. 저자는 손을 주목한다. “지배세력은 결코 손을 잡지 않는다”(32쪽) 예수는 반대로 손을 잡고 치유이적을 행한다.
저자는 당시 억압적이고 사람을 차별하는 정결법과 안식일법 등 사회규범을 통해 오늘을 본다. “나병 치유 이야기는 정결례로 민중을 억압하고 지배세력과 땅의 백성들을 구분하는 체제에 대한 비판이 담긴 이중 언어이다”(34쪽)라는 이 정결례는 작년, 지금여기 인터뷰 기사에서 구약의 정결법에 대해 대구대학교 재활연구소 정중규 박사가 지적한 내용이 생각난다. 이 내용은 아직 한국 가톨릭에서 장애인들이 수도자와 사제가 되지 못하고, 장애인들의 전례참여를 막아버리는 현실에 여전히 남아있다. 저자는 이 정결법과 같은 “지배세력이 유포하는 질서에 순응해서는 결코 좋은 세상을 경험할 수 없다”(36쪽)고 지적한다.
지배세력의 질서에 반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유이다.
“구원의 또 다른 측면은 자유이다. 나병환자 치유 이야기는 예수처럼, 우리를 구속하는 지배세력의 터부 사항을 깨라는 말이다. 그래서 자유하라는 말씀이다”(36쪽)
환영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예수의 모습에서 대구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도 흥미롭다. 빌라도가 어느 회당에서 유다인을 학살한 사건이 있었다.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고난과 죽임을 당한 대구도 있었다. 그 화가 자신들에게까지 미치지 않을까 해서 권력과 동질화되어 의병의 지역, 야당도시, 동방의 모스크바로 불린 대구가 극우의 고향이라고 인식하게 된 이유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권력 동질화는 결국 대구 사람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경북으로 퍼지게 되고 대구경북은 한 정당에 많은 표가 몰리는 현상이 벌어지게 됐다.
“권력자가 시민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펴는 대표적인 지역이 대구이다”(150쪽)
저자는 교회도 비판한다. 그의 비판 대상은 당연히 개신교이다. 한국 개신교의 권력화는 돈과 세습의 문제로 얼룩져 있다. 재물과 하느님은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예수의 말씀을 단번에 저버리는 한국 극우 개신교회의 병폐를 무척 안타까워한다. 작년, 극우 개신교회의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십자가 대신 박정희 영정사진을 모신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헌금으로 신자를 따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개신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톨릭 역시 최근 들어 경제논리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부 가톨릭대학교의 인문학과 폐과, 수감 중인 비리자본 회장에게 성당부지를 기부받은 교구, 일부 성직자와 수도자의 비리문제도 그렇다. 심지어 부정한 권력과 야합하고 정의와 평화를 위한 미사를 방해하는 교회 내 극우단체와 신자들, 이들을 지원하는 성직자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부활 소식을 접하는 여자들과 남자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서, 민중을 갉아먹는다고 예수께서 비판한 이스라엘 기득권 세력들, 사람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부류들—장로들, 대제사장들, 율법학자들처럼 되어가고 있는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다”(166쪽)
가톨릭교회도 로마 식민지 시대 이스라엘 기득권 세력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교회는 누구보다도 순리를 따라야 하고, 교회의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318쪽)
기도에 대하여
기도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즉 기도는 자기를 제물로 바치거나, 자기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다”(258~259쪽) “기도는 순수한 우리말은 ‘비나리’이다. 간절히 빈다는 뜻과 비운다는 두 가지 뜻이다. 하나님께는 간절히 비는 수밖에 없고 하나님 앞에서는 나 자신을 비우는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빈 그릇의 자세이다”(259쪽) “하나님은 자동판매기가 아니다. 하나님을 자기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삼지 않는지 냉철히 돌아볼 일이다. 그냥 하나님을 신뢰하자”
기도에 대한 잘못된 배움으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원하는 것이 되지 않아 하느님을 떠났고 교회를 떠났었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를 보면서도 신앙이 위기에 처했었다. 나 말고도 많은 신자의 신앙이 흔들렸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신비란 것임을 알았고, 기도는 바라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저자는 현재 청도에서, 대구에서 평화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특히, 평화에 대한 그의 관심이 남다르다. 평화를 이루는 일 때문에 국가권력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걸었고, 송전탑 공사방해로 업무상 방해죄를 적용하려 하고 있다. 그는 평화가 단지 전쟁과 갈등이 없는 상태만을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딪힘 없는 조용한 상태보다는 시끄럽지만 균형과 정의를 세우는 일이 평화라고 재정의된다. 모든 이해 당사자 사이에 견해가 달라서 생기는 갈등 속에서 이익을 일방독점하지 않도록 타협·조절하는 행위가 평화이다. 무엇보다도 평화는 약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306~307쪽)
“평화는 약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해야한다”는 구절은 해방신학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관심”과 닮았다. 이는 “가장 약한 자들의 소리는 곧 하늘의 소리이다.”(254쪽)
이번 사순과 부활 사이에 세월호 침몰이라는 재앙으로 국가권력의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게다가 신앙의 위기도 내게 찾아왔다. 저자는 대구지하철 참사를 언급하면서 “거짓안전”이라는 말을 했다. 국가권력과 자본권력, 종교권력, 언론권력이 만든 거짓안전이 문제였다. 거짓안전과 돈을 내세운 악의 권력들은 하늘의 소리인 약자들이 소리를 듣지 않고 있다. 거짓 안전을 깨닫고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이제는 그들이 만든 거짓안전을 깨닫고 “죽은 자를 양산하는 거짓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도 승리의 소식이 절실하다. 관습과 지배 이념에 굴복하지 말고 뚫고 나가자”(201쪽) 그리고 “내 몸 가지고 내 맘대로 살 수 있어야”한다. “그것을 억압하는 세력이 누구든, 귀신이든, 독재 파쇼든 우리는 뚫고 나가야 한다”(205쪽) 그러기 위해선 살아야 한다. 하느님께 머무는 기도를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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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키. 대구 옆 하양에 살고 있는 가톨릭 개인주의 아나키스트이며, 책 읽으며 글을 쓰는 사람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