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장르의 울타리
우리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장르에 입문하기 위해선 지망생들의 뼈를 깎는 과정의 고통이야 여기서 새삼 얘기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런데 그 힘든 과정에서 쏟아내는 에너지는 이야기 만들기에 있지 않습니다. 작가 지망생이 이야기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니요? 이상하지요? 그러나 사실이 그렇습니다. 소설가 지망생은 소설 문법을 익히는데 온 힘을 바칩니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은 구성의 문법에 노심초사 합니다. 이야기 자체보다도 그 장르의 문법을 어떻게 잘 운용하냐가 관건일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각종 작법서가 있지요. 소설작법서. 시나리오 작법서. 드라마 작법서 말입니다. 그런 책들을 펼쳐보면,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가 초점이 아니라 문장운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기승전결의 원칙은 무엇인가? 대사는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 각 장르마다의 특성에 작가 지망생을 훈련시키는 과정이지요. 그 장르의 문법을 익히고 그 문법대로 이야기를 만들어야만 작가로서의 면허증이 비로소 나오는 거지요. 그러다보니 작가 지망생은 이야기를 무한대로 펼쳐내는 것이 아니라 개별 장르의 문법에 갇히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우리의 논의 지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스토리텔링이 고유한 장르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면 이 장르의 문법이란 무엇일까요? 스토리텔링의 문법은 아직 규범화된 것이 없습니다. 즉 스토리텔링의 문법이란게 아직 없다는 거지요. 그 이유는 첫 번째, 스토리텔링의 개념이 너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장르가 개념화 된 것이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장르에 대한 체계화가 시급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장르의 문법을 우리 시대가 요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 장르의 문예공모는 많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 장르중에서 가장 후발 주자인 스토리텔링 관련 공모가 가장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공모에 응모하려는 작가 지망생은 참으로 막연합니다. 스토리텔링의 형식은 어디에 맞추어야 될까가 고민이지요. 스토리텔링 공모는 양적으로는 가장 많습니다. 너무나 광범위한 분야에서 스토리텔링을 필요로 하니까요. 그런데 양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가장 규모가 높습니다. 지금 문예 공모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모 또한 스토리텔링 공모입니다. 바로 콘텐츠 진흥원의 스토리텔링 공모입니다.
콘텐츠 진흥원의 스토리텔링 공모를 살펴볼까요? 상금이 무려 1억원 입니다. 그리고 단 한편만 선택 하는게 아닙니다. 일등 한편에 일 억원이고, 이등은 오천만원, 그리고 나머지 작품 15편에 이천만원입니다. 입상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보너스가 따라옵니다. 스토리텔링은 원석이므로 타 장르로 옮겨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도 해 줍니다. 입상자는 최첨단의 작업실도 제공됩니다. 게다가 거금의 상금을 받고도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전대미문의 공모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있어왔던 그 어떤 문예공모보다도 파격적입니다. 콘텐츠 진흥원 뿐만 아닙니다. 잘 찾아보면 스토리 공모 라는게 꽤 있습니다. 콘텐츠진흥원만큼의 파격적인 상금은 아니지만 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 알리기의 스토리공모도 꽤 있습니다.
이 시대 흐름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이라는 문법체계는 아직 자리를 잡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스토리텔링 공모를 통해서 세상은 그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존의 문예공모는 주최 측이 제한적이었습니다. 출판사나 신문사가 주로 하였지요. 그러나 스토리텔링 공모의 주최 측은 그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기업체에서부터 공공기관까지입니다. 최근 동대문 시장에서도 스토리 공모를 하더군요. 향후는 어떻게 될까요?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곳에서 스토리공모를 내어놓을 것입니다.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드라마 작가 라는 고유 직업처럼, 스토리텔러 라는 직업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겠지요.
자아, 그렇다면 다시 한번 정리를 해 봅시다. 스토리텔링과 다른 이야기 장르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모든 것은 이야기 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나 스토리텔링은 소설처럼 문장의 엄격한 억압구조를 요구하진 않겠지요. 시나리오처럼 꽉 짜여진 구성을 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드라마처럼 엄격한 윤리성을 잣대로 제지 않을 것 입니다. 스토리텔링의 기본 덕목은 바로 자유로운 이야기입니다. 탁월한 언어감각이나 잘 짜여진 공학적 구성의 영역이 아니라 바로 이야기 그 자체입니다. 특정 장르의 문법으로부터 이야기는 날개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이라는 자유로운 이야기의 세계가 지금 이 시대에 막 시작을 하고 있네요.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착각하면 안됩니다. 소설이 아닌, 드라마가 아닌, 영화가 아닌, 그냥 이야기라고 해서 아무 대책 없는 주저리 주저리 지껄인다고 모든게 이야기로서의 가치성을 가지는 건 아니겠지요.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각종 이야기 장르가 가진 문법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흥미로운 가치 있는 이야기 생산에 집중하면 된다는 것이겠지요. 물론 스토리 원고도 문장으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에는 구성이 전제해야만 이야기의 힘을 가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스토리가 산업화가 되기 위해선 기본적인 윤리관의 범주 안 이여야 되겠지요. 그러나 그 모든 문법적 특성 이전에 원석으로서의 이야기란 무엇인가를 집중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스토리텔링의 기본 문법이겠지요.
김전한
1991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당선
2008.03~ 동아방송예술대학 영화예술과 겸임교수
2005년 영화 녹색의자 (각본)
2007년 영화 69년, 달의 궁전 (각본 및 연출)
2011년 영화 다슬이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