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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47)
요한복음 11:1-45 "나사로야, 나오너라"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오늘 성경말씀은 요한복음이다. 본문말씀 이해를 위해, 우선 요한복음이 나온 배경을 잠시 설명하겠다. 요한복음은 왜 쓰였는가? 요한복음의 연대는 빠르게는 100년경, 어떤 주장은 140년경까지 본다. 어느 연대든 이미 나와 있는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보다는 훨씬 후대이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나서 또 하나의 복음서가 나온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그동안 묻혀 있어서 알려지지 않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새로운 증거나 자료를 발굴한 까닭인가?

그러나 기존의 복음서만 가지고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이미 그분의 삶과 말씀은 신자들 사이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예수가 30년경에 운명하셨으므로, 그 후 예수의 후예들은 그분에 대한 기억, 경험, 전승 등을 열심히 수집했다. 믿음의 주로 모시기에 필요한 신앙정보들과 증거들을 갖추어 놨기 때문에 예수를 증거하는 데에 있어서 변한 것은 없다.

하지만 변한 게 있다. 바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환경은 변한다. 그들이 발붙이고 사는 종교사회문화 환경이 바뀐다. 그 환경은 그들 생존을 좌우하는 큰 변화이고 위기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극심하게 몰아닥치는 탄압 속에서 '과연 예수는 그리스도가 맞는가', '우리는 그분에 대해 목숨을 걸 만한가'에 대해 근본부터 묻고 또 물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직면했다. 이미 있는 복음서는 대답이 충분하지 않다. 바로 이것이 요한복음서가 나온 배경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요한복음에는 예수의 이적기사가 딱 7개만 나온다. 예수의 생애 중에 이적사건이 7개 뿐인가? 그렇지 않다. 공관복음(마가,마태,누가)을 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적행위를 했다. 예수를 만나서 병을 고침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지배질서에서 벗어나서 하나님나라를 경험함으로 인생이 바뀐 무수한 사람 모두가 이적을 경험한 거나 진배없다. 그러나 이 모든 이적기사 중에서 요한복음은 7개의 이적만 소개한다.

1)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꿈 2)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침 3)베데스다 연못에서 중풍병자를 고침 4)오천 명을 먹임 5)물 위를 걸음 6)나면서부터 소경인 자를 고침 7)오늘 성경말씀인 죽은 나사로를 살림 이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를 포함하여 이 이적사건들과 유사한 이적기사들은 다른 세 복음서에도 있다. 요한복음의 이적기사라고 해서 새로운 사건은 없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요한복음은 이 7개의 이적사건을 통해, 자기들 공동체가 처한 환경에 답하고자 한다.

오늘 말씀은 그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이적사건, 죽은 나사로를 살린 이야기이다. 나사로를 살린 이야기는 이적사건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예수가 나사로를 살린 사건을 통해, 공동체가 직면한, 죽음의 현실에 응답하고 타개하고자 한다.

▲나사로를 살린 예수 요한복음 11:38-44

죽음을 극복하는 일은 사람의 한계를 명백히 거스르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 성경말씀에도, 그 과정을 보면 결코 순탄하지 않다. 사건을 접하는 여러 사람들의 시각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죽음이라는 사건을 보는, 극히 대조적인 두 가지 형태를 본다. 하나는 예수가 보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보는 시각이다.

먼저 예수의 말씀과 행위를 보자. 나사로의 누이인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께 사람을 보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앓고 있다"고. 그런데 예수는 나사로가 앓는다는 말을 듣고서도 있던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물렀다. 이것은 분명히 의도한 행위이다. 예수는 나사로가 죽는 것에 대해 크게 애닳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심지어 예수는 나사로가 죽을 것을 예견했다. 그 다음 예수의 말이 그렇다. "우리 친구 나사로는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라고. 즉 예수는 그를 깨우기(살리기) 위해 일부러 그가 잠들기(죽기)를 기다렸다는 말이다. 이런 예수의 행보는 죽음 앞에서 절절 매며 인생의 한계를 절감하는 보통사람의 면모와는 확실히 다르다.

이제 사람들의 태도를 보자. 예수께서 "다시 유대지방으로 가자"했더니 제자들은 식겁한다. 이유는 이곳에 있기 바로 직전에, 유대사람들이 예수를 돌로 치려고 하는 죽음의 위험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간신히 목숨을 건져서 요단 강 건너로 피했는데, 다시 그곳으로 가지고 하니, 제자들은 공포에 쌓인다. 그러나 예수는 담담히 말씀한다.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사람이 낮에 걸어다니면, 햇빛이 있으므로 걸려서 넘어지지 않는다"라고. 예수의 말씀은 지금은 낮이므로 회피하지 말고, 일해야 한다는 말이다. 4월 4일 청도송전탑반대대책위가 전략토론회를 했다. 경찰과 한전이 공사침탈을 할 때, 어떻게 막을 것이냐를 의논했다. 우리는 국가공권력이 폭력으로 나오지만, 두려워하지 말자고, 우리의 권세와 우리가 가진 진실의 힘은 정부공권력보다 우위에 있으니 당당하게 싸우자고 했다.

▲청도삼평리송전탑반대대책위의 대책회의 [출처=청도345kv송전탑반대대책위 페이스북]

다음 나사로의 누이인 마르다의 태도를 보자. 예수는 베다니에 도착해서, 마르다를 만났다. 그리고 말씀한다.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그러자 마르다는 말하기를 "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내가 압니다"라고 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종말부활사상이 있어서 같은 유대인인 마르다도 그 종교지식을 빌어서 말했다. 그러나 예수는 즉시 답하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했다. 예수 말씀은 나를 종말에 죽은 자를 살리는 사람으로 믿지 말고, 지금 여기서 구원을 주는 사람으로 믿으라는 뜻이다.

우리가 살아갈 때, 종교지식이 중요하다. 종교지식이라는 건, 교리나 교회역사, 또 소요리문답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등, 교회의 중요한 문서들이다. 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도 전부 기독교지식에 관한 것들이다. 사람들은 종교지식을 통해 믿음을 확인하고 유지확장한다. 그런데 종교지식 자체에 어떤 생명이 있는 건 아니다. 죽어 있는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깨우치고 거듭날 때이다. 사람끼리 우애하고 존중하고 평화하는 건, 종교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야 한다. 종교지식이 우리를 살리고 구원하지는 않는다. 오늘 나사로소생 사건의 핵심은 바로 예수의 자기계시 말씀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을 증언하는 데 있다. 다행히 마르다는 즉시 올바른 신앙고백을 했다. "예,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마르다(여성)의 고백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베드로(남성)의 신앙고백과 더불어 수평을 이루는, 길이 빛나는 고백이 됐다.

그 다음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오늘 본문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 예수의 감정표현이 무려 세 번이나 나온다. "비통하여 괴로워하셨다"(33절),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35절),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하게 여기시면서"(38절)

어째서 예수는 비통하여 괴로워하고 게다가 울기까지 하는가? 그들의 적나라한 믿음없음 때문이다. 예수가 눈물을 흘리자 사람들은 얼토당토않은 말을 한다. "보시오, 그가 얼마나 나사로를 사랑하였는가!"라고. 또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하실 수 없었던 말이오?"하며 나사로 죽음에 대해 되레 예수 탓을 한다.

독자들이여, 사람들의 판단과 말에 너무 좌우당하지 말자, 정말 사람들 말 중에는 쓸데없는 말도 많다. 무가치한 말로 인한 분열과 관계깨짐이 얼마나 많던가! 때로는 뚜벅뚜벅 근성도 필요하다.

예수가 비통하게 여긴 것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죽음의 어두운 운명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 생명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억압 앞에서 사람을 비겁하게 만든다. 두려움은 억압자의 권력을 강화해 준다. 그리고 생명을 막는다. 죽음이라는 큰 현실 앞에서 옴싹달싹 못하는 사람들,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그 밑에서 운신하는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 예수를 덮쳤기에 비통하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예수는 묵묵히 사람을 살리기 위해 무덤으로 향한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나사로야, 나오너라"라고.

감히 누구도 상상하지 않은 말을, 또 아무도 할 수 없는 말을 예수는 질렀다. 이 외침은 우리를 둘러싼 죽음의 운명을 격퇴하는 생명의 소리이다. 이 외침에 따라 죽었던 사람이 나왔다. 그리고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처럼 예수의 도는 죽음을 이기는 도다. 이 도가 죽음의 운명에 직면한 요한공동체를 살렸듯이 우리도 살린다. 우리를 엄습하는 어둠의 세력에 눌리지 말고, 우리도 일어나서 외치자. 생명이 벼락같이 올 것이다.

▲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가운데) 씨. 딸의 죽음을 통해 삼성의 실상을 깨우치고 죽어 있는 사람들을 깨우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출처=뉴스셀]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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