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내전』은 마르크스가 인터내셔널에 파리코뮌(Paris Commune) 사태를 보고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1)
파리코뮌은 프랑스 민중들이 당시 자국 정부와 신흥 대국이었던 프로이센에 맞서 조직한 1871년 3월 18일부터 5월 28일까지의 투쟁이자, 실물로 존재했던 민중자치 권력의 정부형태입니다. 이 사건은 노동자 민중이 권력을 잡으면 얼마나 그것이 민주적이고 정연할 수 있는지,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나갈 수 있는지를 가늠케 해주는 최초의 사례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코뮌의 생각이었습니다. 세계, 지역을 막론하고 투쟁하는 모든 민중의 곁에서 파리코뮌이 기억되고, 되살아나는 것은 코뮌이 제기했던 근본적인 물음과 실천적인 대답 때문입니다. 국가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의 대안적인 형태는 어떻게 가능한가?
2008년 촛불 이후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정치 명사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단 한 사람도 민주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총선에서 청산될 법했지만 결국 과반의 승리를 거둔 새누리당 국회의원도, 박정희가 살아서 낳고 죽어서 만든 박근혜 대통령도, ‘새 정치’를 운운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의 통합이라는 계급적 선택을 주저하지 않은 세력들도 모두 민주주의자들입니다. 모두가 민주주의자인 가운데 울리는 ‘민주주의 수호’는 갈수록 적을 잃고 힘마저 잃어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민주주의자인 사회, 그래서 민주주의가 무력해져버린 사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지만, ‘국민’이 되기엔 너무 바쁘고 고단했던 노부부, 장애인부모, 저임금 노동자들이 끝 모를 죽음의 행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세 모녀’에게 밥조차 되지 못했습니다(오히려 국가는 그들에게 ‘죄송하다’는 마지막 반성문을 받아내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주체는 누구인지, 민주주의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민주주의를 통해 결국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순된 민주주의, 국가를 어떻게 변혁할 것인가? 이것은 143년 전 파리코뮌의 민중들이 피로써 물었던 질문이기도, 동시에 대답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내전』은 파리코뮌이 잔혹하게 진압되고 난 2일 뒤에 발표됩니다. 『프랑스 내전』이 전하는 코뮌 민중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와 국가권력이 어떠해야 하는지, 새로운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것이 실존했던 시공간이자 역사라는 점에서, 우리는 현재를 조망할 수 있는 차분하지만 뜨거운 힘도 함께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1848년의 좌절
자유를 향한 프랑스 민중의 투쟁은 꽤 오랜 시간 동안 혁명과 반혁명을 반복합니다. 1789년 대혁명을 통해 정치적 평등의 시대가 열리는가 했지만, 이윽고 혁명은 보수화되었고, 결국 나폴레옹 1세가 쿠데타로 황제에 오르면서, 그 후에는 왕정복고의 시대로 회귀하면서 민중들의 꿈은 좌절됩니다.
그러나 부르주아 자유주의세력이 주도한 7월 혁명(1830년)과 2월 혁명(1848년)은 그 좌절이 정확하게 노동자민중들만의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특히, 2월 혁명은 소규모 상공인, 장인, 노동자 대중이 보수적인 내각의 사임을 요구하며 피를 흘린 봉기였지만, 그들을 쫓아내자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결국 유산계급이었습니다. 그들은 1840년대 프랑스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성장한 자본가계급이었습니다.
노동자 민중들의 입장에서는 지배계급의 이름만 바뀌게 된 꼴이었습니다. 민중들이 바란 사회는 자본가계급이 말하는 (그들만의 잔치가 될 것이 자명한) 보통선거권 중심의 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이 아니었습니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확대가 결국 반혁명으로 귀결되는 것을 목격해왔던 민중들은 민주주의의 경제 사회적 내용, 실제의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공화국(Social Republic)을 요구하며 다시 봉기했습니다. 하지만 혁명을 도둑질했던 자유주의 세력은 처참하게 그들을 짓밟아 버립니다.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는 1848년 민중들의 6월 봉기를 두고 이것이야말로 ‘전 유럽에서 가장 다행스러운 사건’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혁명의 불꽃이었던 노동자 민중을 물리친 유산계급은 자신들을 보호해 줄 세력이 전혀 남아있지 않게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결국, 미약해진 부르주아지와 왕정주의자들 사이를 비집고 나타난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인기몰이를 하며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그리고는 곧 쿠데타를 일으켜 또다시 황제에 오릅니다.
1871년 파리코뮌의 노동자 민중들은 이 뼈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리코뮌을 둘러싼 혁명의 기운들에는 이 좌절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한편, 마르크스는 6월 봉기에서 노동자 계급이 제기했던 문제의식은 비단 계급 지배의 군주제적 형태만이 아니라, ‘계급 지배 자체의 제거’를 의미했다고 평가합니다. 이 때문에 1848년 ‘사회공화국’이라는 민중들의 구호가 가장 명료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코뮌’이라는 것이지요.
파리코뮌의 성립
파리코뮌은 산업혁명이 정치혁명을 ‘삼켜버린’ 자본의 시대에 조직됩니다. 당시 유럽은 영국을 선두로, 프랑스, 프로이센과 같은 신흥 자본주의 국가들이 주름잡고 있었습니다. 국가가 주도하는 대규모의 산업정책으로 발전하는 초기 자본주의의 경향 때문에 국가 간의 긴장도는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프로이센의 교묘한 책동에 걸려 프랑스는 먼저 전쟁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긴장만큼 전쟁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나폴레옹 3세는 금세 항복하고 스스로 포로가 되어버립니다.
이 소식을 접한 프랑스 민중들은 제정의 무능함에 반발, 봉기를 일으켜 공화국을 선포합니다. 당시 프로이센으로 포위된 파리는 끔찍했습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반복되는 실업과 물가 폭등, 식량과 물자의 부족……. 거리는 여기저기 주검들로 넘쳐났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쥐나 개라도 잡아먹어야 했습니다. 전쟁은 문밖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노동자 민중들은 일찌감치 부르주아들이 내팽개치고 떠난 파리를 지키기 위해 국민방위대에 입대합니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무장한 빠리, 그것은 무장한 혁명’이었습니다.
공화국 선포와 함께 ‘국민방위’를 명분으로 내건 티에르 정부는 본능적으로 프로이센 군대보다 무장한 자국의 노동자 민중이 더 위협적이라 느꼈습니다. 결사항전을 부르짖던 국민방위정부는 결국 1871년 1월 재빠르게 프로이센에 투항하였고,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된 민중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더 열을 올립니다. 가장 먼저 정부는 국민방위대가 자체 분담금으로 마련한 대포를 국가에 양도하라고 명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상 파리의 무장해제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국민방위정부가 ‘국민배신정부’가 되어 자신들을 또다시 버렸음을 알아챈 민중들은 3월 18일 대포 양도요구를 거부하고 파리를 장악합니다. 그리고는 베르사유로 도피한 정부를 향해 전쟁을 선포합니다.
(국민방위대) 중앙위원회는 3월 18일 선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배 계급의 패배와 반역의 한 가운데에 있는 빠리의 프롤레타리아는 공무의 지휘를 자기의 수중에 장악하여 상황을 수습할 시간이 다가왔음을 파악하였다……그들은, 스스로 자기 자신들의 운명의 주인이 되고 정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자신들의 최상의 의무이며 절대적 권리라는 것을 파악하였다.
파리코뮌의 작업들
파리는 이제 새로운 권력, 새로운 민주주의, 새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파리코뮌은 1871년 4월 19일 선언에서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노동자로서 자신의 소질과 능력을 완전히 행사할 수 있게 보장하는 코뮌의 절대적인 자치’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제국과 군주제, 의회제도가 요구했었던 통일성은 단지 어리석고 임의적인, 또는 의무만 부과하는 중앙집권화에 불과하다며 ‘파리가 원하는 정치적 통일성은 만인의 복지와 자유와 안전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도모하는 모든 지역적 창의성의 자발적인 결합이며, 모든 개인적 힘의 자연발생적이고 자유로운 총합’이라고 규정합니다.
베르사유 정부군과 프로이센은 안팎으로 코뮌을 옥죄어 오고 있었습니다. 체계적이기 힘들었을 상황 속에서도 코뮌의 실천들은 진행됩니다. 코뮌의 첫 포고령은 부르주아 정부의 수단이었던 상비군을 폐지하고, 그것을 무장인민으로 대체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입법부와 행정부를 통합시킨 정치형태를 만듭니다. 인민들은 자신들의 권리가 입법권에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입법권자이면서 동시에 행정권자로서 실질적인 권력이 될 수 있게 합니다. 코뮌의 이러한 노력은 모든 인민의 정치권력이 완전하게 행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파리코뮌의 이러한 조치는 국가권력을 장악함과 동시에 바로 기존의 억압적이었던 국가기구를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목도한 마르크스는 『프랑스 내전』 3부에서 ‘노동자 계급은 기존의 국가 기구를 단순히 접수하여 이것을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게 할 수는 없다’고 깨닫습니다.
꼬뮌은 빠리의 다양한 구에서 보통선거권을 통해 선출된 시 의원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책임이 있었고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었다. 그들의 대다수는 당연히 노동자들이거나 노동자 계급의 공인된 대표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꼬뮌 의원들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공직은 노동자의 임금으로 수행되어야 했다. 국가 고위 관직의 권리 주장과 판공비는 이 고위 관리들 자체와 함께 사라졌다. … 시 행정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국가에 의해 행사된 발의권 전체가 꼬뮌의 수중에 놓였다.
파리코뮌은 인민 스스로의 정치권력 행사 속에서 과감한 사회적 조처들을 취해 갑니다. 제빵 노동자들의 야간작업을 금지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강탈식 벌금부과를 중단시키며, 자본가들이 파리에서 도망가며 버린 작업장들을 접수하여 노동자 직접경영을 최초로 시도합니다. 연이은 조처들로 거대 교회는 해산되었고, 교회의 사유재산은 몰수되었으며, 무상으로 개방된 모든 교육기관은 국가와 교회의 간섭에서 벗어났습니다. 사법 공무원들 역시 모든 공직과 마찬가지로 선거를 선출되었으며, 언제든 소환될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정부군 인질의 인도적 처분, 여성노동자를 위한 조처, 집세 지불 정지령 등이 제정되었습니다. 이 모든 행정이 공개되고, 철저하게 민주적이었으며, 인민(특히, 여성)들의 참여가 활발하였고, 전시 상황임에도 질서가 유지되었다는 것은 지금 보더라도 코뮌의 놀라운 성과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동자계급은 꼬뮌으로부터 기적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해방을 달성하고 그와 함께 현재의 사회가 자기 자신의 경제적 발전을 통해 불가항력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더욱 고차적인 삶의 형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계급이 오랜 투쟁, 즉 환경과 함께 인간을 완전히 변모시키는 일련의 역사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실현할 이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붕괴하고 있는 부르주아 사회의 태내에 이미 발전해 있는 새로운 사회의 요소들을 자유롭게 해주기만 하면 된다.
사실 꼬뮌은, 낡은 모든 정부들이 예외 없이 하듯이 무오류성을 자처하지는 않았다. 꼬뮌은 자신의 모든 말과 행동을 공개하였고, 자신의 모든 불완전함을 공중에게 털어놓았다.
혼란스럽고 촌각을 다투었을 안팎의 상황, 진압되기까지 70여 일이라는 짧은 기간들을 떠올려보면 파리코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스스로 가졌었던 가치와 실천적으로 이뤄진 일련의 조치들을 근거로 운동의 경향 속에서 바라봐져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꼬뮌의 위대한 사회적 조처는 활동하는 꼬뮌 자신의 존재였다’고 언급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국가와 민주주의에 대한 오래된 구상
모든 운동은 매번 질문과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투쟁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우리가 배제되었었는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묻게 합니다. 그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렇다면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불온한 물음을 품게 됩니다.
국가와 민주주의가 강조되지만, 오히려 그 폭력 속에서 민중들이 압살당하는 시대. 파리코뮌의 기념비적인 투쟁은 우리에게 새로운 권력과 질서를 만드는 것이 ‘매우 현실적인 일’이며 ‘가능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내전』은 묻습니다. 파리코뮌의 민중들이 품었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오래된 구상, 코뮌의 가능성이 어떻게 현재적으로 전화될 수 있는지를.
코뮌, 그 격렬했던 투쟁의 공백과 빈틈을 메꾸어가며 ‘짓다 만 집’의 초석을 다듬질할 숙제가 놓여 있습니다. ‘결말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는 파리코뮌의 선언처럼, 그것은 과거의 투쟁이고 역사이지만, 핍박받는 모두가 한 번쯤 꿈꿔보았을 세상이며 지금도 어렵게 싸워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라는 점에서, 동시에 미래이기도 합니다.
사회변혁을 단지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구상하고자 갈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1) 『프랑스 내전』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와 2부에서는 파리코뮌이 성립되기 전까지의 역사적 배경과 경과를 쓰고 있습니다. 3부에서는 파리코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코뮌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4부에서는 파리코뮌의 ‘피의 일주일’, 잔혹한 진압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레프트 대구> 8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구해 <뉴스민>에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