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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 (45)
마태복음 4:1-11 "다 살아가기 마련이다"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2013년 2월, 예수읽기 (18)에서 누가복음 4장 1-13절 을 본문으로, "그 말이 맞는가?"라는 제목으로 예수가 악마의 유혹을 당하는 이야기를 했었다. 오늘은 같은 내용을 마태복음 말씀으로 하겠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복음서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다르다. 또한, 성경은 깊은 샘 같아서 같은 성경말씀이라도 무수한 해석과 적용을 가능하게 한다.

동네에 월요일마다 서는 재래시장이 있는데, 입구에 들어서면, 신문모집하는 사람이 다짜고짜 돈봉투를 들이민다. 신문 보라고. 그렇게 해서 과연 구독자가 생기는지 매우 의문이고,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는 딱한 마음도 들고, 먹고 사는 일에 대해 뭐라 말하기도 어렵고, 복합적인 안타까움이 든다. 한편 어느 집안의 한 가장이 생활의 최전선에서 저열한 방법으로 자기 신문을 팔게 하면서, 신문사 사주놈들은 세상을 주무르며 배를 불리는 꼴이 한층 더 괘씸하다.

▲지난 3월 1일 청도 삼평리에서 벌어진 장승제(왼쪽)와 삼평리 송전탑 시공사의 주민을 채증하는 장면(오른쪽) [출처=뉴스민 자료사진, 청도송전탑대책위]

345KV 송전탑건설을 막고 있는 청도 삼평리에서는 한전놈들이 소위 발전기금으로 주민을 찬반으로 갈라놓아 마을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것도 모자라, 부모자식 간에도 돈으로 이간질하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의 추진 방식을 보면, 정말 한전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되겠다는 공분이 더 생긴다. 할매들의 투쟁을 계기로, 이 나라 전기정책을 바꿔야 한다.

시국사건이나 노동쟁의 사건에도 손배가압류, 벌금폭탄을 매겨서, 돈으로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악습은 여전하다. 청도 삼평리의 경우도, 그전에는 얼씬도 못 하던 한전의 시공사 인부들이 공사방해금지 가처분결정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나오자, 지난주에는 연속 사흘을 삼평리 현장에 나타나서, 할매들을 도발했다. 평화공원 주위에 말뚝을 박는 시늉을 연출해서 할매들이 막아서자, 공사를 방해한다는 증거로 삼으려고, 집중적으로 채증을 해 간 것이다. 실로 비겁하고 야비한 놈들이다.  

40일 금식한 예수에게 가장 절실한 게 빵이었다면, 오늘날 현대인들을 사로잡는 건 돈귀신이 틀림없다. 옳음, 정당성, 품격 같은 것은 걷어차고, 모든 문제를 오직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오늘 복음이야기는 일하는 방식에서 예수와 악마가 어떻게 다른가를 말한다. 일하는 방식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가, 아니면 비인간화시키는가를 구분하고자 한다.

악마의 유혹을 보자. 첫 번째 유혹에서 악마는 예수께 이렇게 말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태 4:3 개역개정판)라고.

어째서 악마는 가정법으로 말할까. 오늘 복음말씀 바로 앞에서, 세례받고 나오는 예수께 하나님이 만천하에 선언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3:17)라고. 그런데 이를 모를 리 없는 악마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에 대해 가정법으로 묻는 연유는 무엇일까? 그동안은 이유가 시원하게 풀리지 않았다. 다만 사람 성품 중, 연약한 속성인 허영심, 공명심을 자극, 도발하는 것이라고 나름 이해했었다.

그런데 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 3월 10일(월) 대구고등법원에서, 2012년 대선 기간 '현대대중문화의 이해'강좌에서, 박근혜를 비판하는 신문기사를 스크랩해서 학생들에게 수업자료로 사용한 일이 공직선거법위반이라는 혐의로 기소돼서 재판을 받는 유00 교수의 항소심에서다. 변호사는 일심판사의 판결서, 또는 여러 증거자료, 증인으로 나온 사람들의 의견서 등 있는 자료에서 사실에 근거하여 피고인 심문을 하지만, 검사는 할 말이 없는지 계속 가정법으로 묻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만일 다른 교수들도 선거운동 기간에, 수업시간에 피고인처럼 특정후보에 대해 비난, 모욕, 매도하면 되겠느냐는 투이다. 있는 사실로 말해야지, 왜 가정법으로 물을까. 그때 알았다. (관련기사: 유소희 교수, 박근혜 비판 기사 수업자료로 썼다가 선거법 위반 기소 2013년 9월 4일 자)

▲ 지난해 9월 발족한 유소희 교수 수업 사찰 규탄 및 학문과 사상의 자유 대책위원회 [출처=자료사진]

가정법이란 언어가 악마들의 고유어투라는 것을. 또한, 악마와 한통속인 불의한 권력이 상투적으로 던지는 어법인 것을. 악마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거다. 하여 그들은 진실이 현실이 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권력의도를 관철하기 위하여 가정법 언사를 즐겨 사용한다. 진리 앞에서는 할 말이 없기에 그렇게 옹색하게 논리를 펴는 것이다.

한번 묻자. 하나님의 아들을 입증하려면 악마의 유혹대로 돌을 떡덩이로 만들어 내야 하는가? 자신을 과시하는 기적을 연출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가? 그러나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려고 또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기적을 행한 적이 결코 단 한 번도 없다. 적대자들이 줄기차게 하늘로부터 오는 표징을 요구할 때도, 악당들에게 체포당할 때도,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 무리들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너나 구원하여라.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하고 조롱할 때도, 절대 반응하지 않았다. 예수는 당신의 능력을 사유화하지 않았다. 자신의 재능, 기적, 권세를 통하여 사람들 믿음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께 사심 없이 순종할 뿐이다.

사심없는 순종은 악마의 유혹에 대한 대응에서도 나타난다. 예수정도면 얼마든지 자신의 재량으로 대답할 수 있을 텐데, 예수는 오직 하나님말씀으로 응대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고 신명기 8:3 말씀으로 답했다. 이 말씀의 요지는 "먹는 게 다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낮추시고, 굶기시고, 또 먹이시고 하는 모든 과정, 전체적인 인도하심(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 훨씬 귀하다" 이다.

누구보다 먹는 게 가장 절실한 예수가 가장 먼저 이 말씀 앞에 섰다. 지금 교회는 할 수만 있으면 돌로도 빵을 만들려고 무진 애를 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를 사유화하는 데 자신의 모든 재주를 발휘한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일이라는 명목으로 하는 일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교회는 누구보다도 순리를 따라야 하고, 교회의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를 거룩한 도성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성전꼭대기에 세운다. 밑에는 천 길 낭떠러지이다. 여기서 악마는 또 가정법을 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라고. 그런데 악마는 여기에 한 말을 더 보탠다. 악마는 놀랍게도 시편 91:11,12을 인용한다. 인용한 시편의 골자는 네가 뛰어내려도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너를 떠받쳐서 죽지 않고 멀쩡할 것이라는 말이다. 예수는 역시 제멋대로 답하지 않고 성경말씀으로 물리친다. "또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신명기 6:1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여기는가에 대해 자문해야 한다. 무엇이 갈급해서, 또는 필요할 때, 그때그때 소원을 채워주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모시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동판매기가 아니다. 하나님을 자기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삼지 않는지 냉철히 돌아볼 일이다. 그냥 조건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자. 누구를 대상화하는 것은 사람 사이에서도 경계할 일이지 않은가. 

▲3월 6일 열린 국가조찬기도회 [출처=뉴스앤조이 영상 갈무리]

또 하나. 악마가 예수를 유혹하면서 하나님말씀을 써먹었다는 점을 유념하라. 거듭거듭 강조하지만, 하나님말씀을 맥락을 무시하면서 자기 편한 대로만 써먹는 풍토는 대단히 위험하고, 하나님을 기만하는 일이다. 하나님말씀을 사용하고, 기독교의식을 한다고 해서 전부 예수파는 아니다. 외양만 그렇게 꾸미는 족속이 사실은 더 위험하다.

그러자 악마는 마지막 유혹을 던진다. 매우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보여주고 말한다. "네가 나에게 엎드려서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라고. 가정법을 쓰던 악마가 이제 단도직입적으로 본색을 드러낸다. 내 밑으로 들어오라고.

악마가 나에게 엎드려 절을 하면 이 모든 나라와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고 하는데, 과연 악마의 말은 진실인가? 악마 말대로 이 모든 것은 내 것이 될까? 악마는 끝까지 거짓말을 한다. 악마에게 절을 하면, 그 순간 나는 악마 수하가 되는 것이고, 따라서 나의 모든 것도 결국은 악마의 것이다. 나는 독립적이지도, 주체적이지도 못하게 된다. 악마의 종이 될 뿐이다.

서두에 자본이나 권력의 청부업자들이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 든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 돈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그 순간 돈에 종속돼버린다. 그 결과 받은 돈의 노예로 전락한다. 그렇게 되면 시쳇말로 빼도 박도 못한다. 명심하시라.

예수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들었다고 해도, 예수는 민중 앞에 구세주로 서기보다는 악마의 시다바리가 될 뿐이다. 

악마의 말은 그럴 듯할 뿐, 진실이나 진정은 한 개도 없다. 속지 마라. 그래서 예수는 답한다. 역시 자의가 아닌, 하나님 말씀으로.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10)라고.

악마가 떠난 뒤에 예수는 어떻게 됐나? 40일을 금식한 후유증으로 굶어 죽었나? 아니다. 천사들의 음식봉양으로 원기를 회복한다. 돌로 떡을 만들지 않아도 다 살아간다.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면서까지 성공에 목매지 마라.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영원한 노예살이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다 살아가기 마련이다.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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