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은 어느덧 보수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유명 보수정치인 양성소다. 박정희로부터 시작해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까지. 정치만이랴. 개그프로그램 단골소재로 등장하는 ‘경상도 남자’로 대표되는 남성 중심 문화도 있다. 통계치로 분석하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경상도 남자’는 무뚝뚝하고, 남성 주도적 성격을 가진 전형적 인물로 소비·유통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 대구에서 그것도 약 100년 전 일제 강점기에 급진적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콜론타이의 상대에 대한 소유의식 없는 ‘자유로운 결합’을 옹호한 여성운동가가 있었다면 믿을까. 기녀 생활을 하다 3.1운동을 기점으로 사회주의 여성운동을 벌인 정칠성(丁七星, 1897년 ~ 1958년?)이 그 주인공이다.
정칠성은 1897년 대구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기녀가 되어 기녀가 되어 금죽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한 그는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사회운동에 눈을 뜬 이후 사회주의, 여성운동에 참여한다.
그는 주세죽, 허정숙 등과 1924년 조선여성동우회 창립에 참여한다. 이후 일본 유학과 신간회, 근우회 창립에 참여해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이어간다. 해방 이후에는 조선부녀총동맹을 결성하고, 조선공산당과 민족주의민주전선에서 활동하다 1948년 8월 월북했다.
정칠성은 1920년대 들어 허정숙 등과 교류하며 콜론타이의 여성해방이론을 접한다. 당시 세계 사회주의 진영 내에서 여성해방과 혁명을 분리시키지 않은 이는 콜론타이가 거의 유일했다. 그렇게 콜론타이를 만난 정칠성은 남존여비사상이 뿌리 내린 조선의 현실을 고민한다. 1931년 정월호 <조선지광>에 기고한 짧은 글 ‘연애의 고민상과 그 대책’을 보자.
“연애로 인한 고민상은 혹은 각 나라의 특수한 사정과 각 시대의 변천을 따라서 그 정도와 건수의 차이점은 있다 할망정 영원히 없지 못할 난제라고 나는 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남녀가 대등한 지위에서 그들이 자유로 결합할 수 있는 시대라 할지라도 원시난혼제를 실시하지 않는 한에는 이성과 이성이 접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따라서 연애의 고민은 의연히 있을 것이란 말이외다.
그러나 연애고민을 대량생산하여 인간에게 적지 않은 불행을 초래케 하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사회라 할 것이외다. 그렇다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들 수 있으니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순결하고 진실하여야 할 애정 그것까지도 물질적 이해로 타산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외다. 따라서 그런 연애는 불미한 결과를 맺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속담에 연애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지요마는 현대와 같은 계급사회에 있어서는 연애에 있어서도 그것을 초월하게 되지 못합니다. 하기야 연애 자체의 원리원칙으로만 하면 동일한 인간인 이상 누구나 연애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현대와 여(如)한 과도기에 있어서는 피차간 진실한 연애는 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더욱이 남존여비의 봉건사상과 경제적으로 남자에게 모든 권한이 있는 이상 연애에 있어서도 여자는 자연히 불평등한 지위에 서게 됩니다. 위선 정조관부터 남자가 다르게 되어서 남자는 제맘대로 성적 방종을 하면서도 여자에게는 편무적으로 정조를 강제하려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혹은 남녀는 원래 생리적으로 다른 까닭에 모성을 가진 여자 편은 그 여자의 혈통을 밝힐 필요상 정조를 지켜야 하겠다 하지마는 그것은 전혀 남성의 성적 방종을 옹호하려는 한갓 구실에 불과한 줄 압니다. 만일 그들의 연애가 진실하다 할 것 같으면 결코 그럴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성의 관계란 복잡하니만큼 남녀가 절대 평등한 지위에 서 있다 할지라도 연애의 고민은 언제나 다소간 있을 줄 압니다. 예를 들면 삼각관계라든지 경제적 관계라든지 사상적으로나 감정적인 허다한 원인에서 - 그러나 그중 큰 원인은 사회제도에 있다고 볼 것이니 연애의 고민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남녀간 사회적 지위가 균등되고 또한 전 인류가 보다 행복한 지상낙원 시대가 돌아오지 않으면 안될 줄 압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진화의 구원한 장래에서나 바랄 것인즉 현하 정세 밑에서는 동지연애로서나 만족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복잡한 고민 속에서도 정칠성은 계급사회의 연애는 결코 평등할 수 없다고 봤다. 더불어 여성의 정조관 강요는 남성의 성적 방종을 옹호하려는 구실뿐이라고 봤다. 앞서 정칠성은 콜론타이의 <붉은 사랑>에 대한 의견도 피력한다.
1929년 9월『삼천리』에 실린 「콜론타이의 성도덕에 대하여-적연 비판」은 <붉은 사랑>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편집부 기자의 질문에 정칠성이 답변하는 인터뷰 글이다.
기자 만약 집안일을 아니 본다고 남편이 이혼이나 덜커덕 하여 버린다면? 즉 쫓아내버린다면?
J(정칠성) 그렇더라도 사회의 의무를 더 중하게 여겨야 옳을 터이나 조선의 형편에 그렇게 되면 여성들이 당장 의식주할 곳이 없게 될 터이니까 되도록은 남편에게 배반을 아니 받을 정도로 사회 일을 하여 나가야 할 것인 줄로 압니다. 또 평소의 수양 여하로 반드시 가정적 의무와 사회적 의무가 충돌이 아니되고라도 조화되어 나갈 수 있을 줄로 압니다.
정칠성은 <붉은 사랑>의 주인공 바실리사처럼 거리로 뛰어나가는 선택을 하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조선의 형편’을 고려해야 한다는 정칠성의 의견은 가부장제의 완강한 현실경험 속에서 나온 사회주의자의 현실적 선택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르주아 여성운동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며 계급의식을 바탕으로 한 성적, 경제적 여성해방 이론을 전개했다.
월북한 사회주의 운동가임에도 북한에서 처형된 탓에 정칠성은 남한에도 꽤나 알려졌다. 정칠성의 독립운동, 사회주의 운동은 소개됐음에도, 연애-사랑에 대한 그의 견해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연애-사랑의 문제를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단지 사적으로 치부하기 위함은 아니었을는지. 106주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았다. 우리는 첫 여성대통령 박근혜와 더불어 대구의 여성운동가 정칠성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상처의 기억으로 은폐된, 혹은 묻힌 대구 현대사를 끄집어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