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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4년03월08일 11시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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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노태맹의 마지막 이정표 (1)
죽음, 천 개의 바람

노태맹(의사) arche83@naver.co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내 영혼 바람 되어> 라는 노래에 빠져든다. 강을 따라 커브 길을 돌아가던 차가 잠시 물살을 타듯 흔들린다.

<그곳에서 울지마오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들지 않았다오 / 그곳에서 슬퍼마오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든 게 아니라오 /나는 천의 바람이 되어 /찬란히 빛나는 눈빛 되어 곡식 영그는 햇빛 되어 /하늘한 가을비 되어 /그대 아침 고요히 깨나면 /새가 되어 날아올라 /밤이 되면 저 하늘 별빛 되어 /부드럽게 빛난다오.....>

과거 인디언들의 구전 시가이거나 1900년 초반의 영미시라고 알려진 <천 개의 바람(A Thousand Winds)>이라는 내용을 한국의 김효근이라는 분이 번역하고 작곡한 노래이다. 배우 존 웨인이 낭독했다거나 마릴린 먼로의 장례식 때 읽혔다거나 미국 911 참사 때 한 소녀에 의해 읽혔다거나 하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아니더라도 아름답고 의미 있는 감동을 주는 가사이다.

내가 묻혀 있는 묘지에 나를 사랑하던 누군가가 엎드려 울고 있다.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아쉬움과 막막함으로 꺼질 것 같은 그의 어깨를 바람이 붙들고 속삭인다. “그는 이제 여기에 없소. 그는 이제 천 개의 바람, 눈 위의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빛, 가을 들판의 곡식 위로 쏟아지는 햇빛, 하늘하늘한 가을비, 상쾌한 아침의 날아오르는 새,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빛, 그 모든 것이라오.” 죽은 그는 이제 나를 감싸고 있는 온 우주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슬픔도 덧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관점은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나를 떠난 내 사랑들이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이라는 자기 위로일 뿐이다. 죽음 이후의 그 어떤 상태에 대해 그와 비슷한 대상을 가져오는 은유나, 죽음 이후의 그 어떤 상태를 다른 것의 몸을 빌려 사용하는 환유를 사용하기에 우리는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해 알지 못한다. 전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은유나 환유는 불가능하므로 그것은 차라리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 마음에 대한 은유나 환유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날 문득, 길을 가다가 문득, 누군가가 더 이상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란다. 문득 사라지고 없는 동생,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엄마, 고개 돌리면 서 있을 것 같은 회진 돌 때마다 언제나 아프다고 손을 내밀던 할머니들. 그들은 이제 어디에 있을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을까? 물론 우리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우리의 사고는 그저 딱딱한 두려움을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미학적 수사일 따름이다. 죽음에 관한 한 우리는 모두 속류 유물론자들이다. 죽음이 끝이라거나 새로운 시작이라고 믿는 한에 서 우리는 살아있는 이 육체를 절대화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좀 먼 곳으로 돌려보자. 2001년 6월 30일 WMAP (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 위성을 싣고 델타Ⅱ 로켓이 미국 플로리다의 케이프 케너베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되었다. WMAP는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를 측정하여 우주의 지도를 그려줄 참이었다. WMAP가 보여준 배경복사의 모습은 우주가 생겨난 후 약 38만 년 후의 빛의 지도였다. 그리고 WMAP가 표준 우주론에 따라 계산한 우주의 역사는 137억 년이었다. (이것도 지난 이야기가 됐다. 2009년 유럽우주국과 NASA가 쏘아 올린 프랭크는 우주의 역사가 이것보다 8000만 년 더 오래된 138억 년이라고 계산했다.)

▲프랑크의 우주지도 [출처: http://www.esa.int/ESA]

138억 년 전 한 점이 폭발(이른바 빅뱅)하면서 3초 만에 우주가 만들어졌다. 상상이 되는가? 우리 지구가 속한 태양계가 있고, 태양과 같은 항성 수천만에서 수천억 개가 모여 우리 은하를 이루고, 그 수많은 은하가 모여 은하단을 이루고 (가령 코마 은하단은 천 개가 넘는 은하로 이뤄졌다 한다.) 그러한 은하단들이 수없이 모여 우주를 형성한다. 그런데 WMAP는 이런 밤하늘의 별들로 우리가 보고 있는 물질은 우주의 0.5%에 불과하다고 한다. 아무리 성능 좋은 천체 망원경이 만들어져도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는 아주 작다는 것이다. 우리 우주의 약 28%가 물질로 되어 있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원자로 이루어진 보통의 물질은 우주의 4.6%, 나머지 23.3%는 원자가 아닌 물질 즉 무언지 모르지만, 아무튼 중력이 작용하는 물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별로서의 0.5%를 제외한 나머지 27%는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72.1%는? 그것은 에너지 형태로 존재하는 이른바 암흑 에너지라고 한다.

밤하늘의 별을 쳐다본다. 우리는 누구인가? 문득 파스칼(1623-1662)의 <팡세>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인간은 자연에서, 그것도 가장 약한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 우주(자연)는 팔을 뻗어 인간을 때려눕힐 필요가 없다. 한 개의 물방울이나 수증기로 인간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우주(자연)가 인간을 공격한다면 인간은 그를 죽인 살인자보다 더 고귀하게 변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우주(자연)가 준 장점(교훈)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자연)는 이러한 것을 전혀 모른다.”

영악한 파스칼의, 한때는 아름다웠던 이러한 인간의 인식과 의지에 관한 인문주의적 낙관에 대해 나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이제는 동의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약한 갈대이고 138억 년은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만 우주는 ‘전혀 모르는’ 벙어리가 아닐 것이다. 인식의 측면이 아니고 존재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나’는 혹은 ‘우리’는 138억 년의 극축소된 증거이고 흔적이지 않을까? 우리가 우리의 부처인 것처럼, 내가 아는 것을 우주(자연)가 알고 우주(자연)가 아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 <천 개의 바람>을 은유나 환유가 아니라 사실로서, 미학적으로가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앞서 사라져간 수십억의 호모 사피엔스들과 함께, 138억 년의 우주의 역사와 함께 우리는 지금 숨 쉬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죽어서 우리는 바람으로, 눈으로, 햇빛으로, 가을비로, 새로, 별빛으로 다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죽은 그들이 우리가 되고 우리는 그들로 하여 다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자기 위로로서가 아니라 자기 확신으로서 <천 개의 바람>을 다시 들어 본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심장이 멈추고, 사흘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갈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한 할머니를 내려다본다. ‘곧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놀랍게 한다. 병실에서 내려와 밤하늘 별을 올려다본다. 봄바람에 묻어 꽃향기가 나를 감싼다. 죽어서 어디를 가냐고?  아마 우리는 죽는 순간 저 넓은 온 우주로 빅뱅처럼 가득 퍼지지 않을까?
 

노태맹(의사) arche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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