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시청이 명절 전통인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스웨덴입니다. 그 전통의 명칭은 칼레 앙카입니다. 칼레 앙카의 뜻은 도날드 덕입니다. 아시다시피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추석만큼 중요한 가족 명절이지요. 이 무렵 사람들은 손님 초대 준비로 분주해집니다. 스웨덴에선 크리스마스이브가 특히 그렇습니다. 스웨덴인들은 모든 명절 행사를 이브에 치르기 때문입니다. 이브의 오후 세시가 되면, 동작 그마~안! 그리고 집 안의 모든 사람은 티브이 앞에 착석! 입니다. 칼레 앙카, 즉 도날드 덕을 보기 위해서지요. 어쩌다 이런 전통이 생긴 걸까요?
이 전통의 시작은 1959년입니다. 스웨덴에 티브이가 등장한 때지요. 그때 스웨덴의 방송 채널은 TV 1, 이름에 걸맞게 딱 하나뿐이었답니다. 그러니 재미있는 거 할 때면 요즘 말로 본방사수 필수인 거죠. 그 재미있다는 것 중에서도 특히 보기 힘든 게 있었습니다. 바로, 만화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만화를 끊임없이 틀어주는 때가 있었죠. 크리스마스 시즌이었습니다. 티브이는 다른 사람들이랑 보면 더 즐겁죠. 그러니 가족 친지가 총출동하는 스웨덴의 크리스마스이브 날이면, 어김없이 오후 세시의 도날드 덕을 보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도날드덕이 중심인 디즈니 만화 모음) 새로운 채널 등장까지 10년이나 걸렸답니다. 그러니 전통이 될 법도 했죠.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1950년대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폭력성으로 재미를 추구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도날드덕입니다. 칼레 앙카 도날드 덕은 오리가 정글로 조류 탐사를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도날드 덕은 거기서 만난 야생 딱따구리를 만나죠. 딱따구리는 끊임없이 조류 탐사를 방해합니다. 도저히 못 견딘 도날드 덕이 화를 낼라치면, 권총 자살, 목매기, 음독을 시도하지요. 그뿐만아니라 물을 뿌리고, 때리고, 불을 붙이는 등, 도날드 덕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이것이 이 만화의 웃음 포인트였습니다. 유익성보다 소비 지향적인 내용 추구였지요.
시간이 지나고 디즈니 외에도 재미있는 만화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반전주의적 이거나, 평화주의적인 내용으로요.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이러한 논의를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의 이상행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방송국엔 협박 편지와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심지어는 방송국을 비난하는 인쇄물이 거리에 뿌려졌습니다. 칼레 앙카의 문제점은 명백했습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설명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칼레 앙카에 대한 집착은 강박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칼레 앙카 논쟁은 오랫동안 해결점을 찾지 못했고, 칼레 앙카 전통은 50년이나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칼레 앙카를 의심하는 스웨덴인들이 생겨났습니다. 시간이 지난다는 건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의미하죠. 그렇다면 칼레 앙카를 지키려는 세대에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는 걸까? 급기야 전문가들이 나섰습니다. 그렇게 나온 결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칼레 앙카는 전후 세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은 불안정한 상태였죠. 또한,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등장했으니 사람들은 많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죠. 다양한 기술이 등장하고, 세상은 빠르게 변하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불안했을 겁니다. 그 와중에 잠시 웃게 만들어 주는 것이 칼레 앙카 였던 겁니다. 불안, 그것이 바로 이유였습니다. 만약 방송국 관계자들이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헤아려 접근했다면, 칼레 앙카의 진화는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말이 생각납니다. 강박은 불안에서 비롯된다. 불안이 극심해지면 집착으로 변질된다는 거지요. 집착의 단점 중 하나는 분별력을 잃는다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의 많은 논쟁은 바로 이 집착 때문에 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일 한다는데도 죽자사자 반대하는 사람들, 참 답답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집착을 무시하지는 마세요. 프로이트의 말 한 자락만 더 인용하자면 사람의 마음은 빙산의 일각이랍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극히 일부라는 겁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강박도 수면 위 빙산 꼭대기와 같지요. 우리가 그 꼭대기를 톡 잘라버리는 순간, 우린 그들의 강박 속에 숨겨진 불안과 소통할 기회를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주변에 말 안 통하는 분들이 있나요? 그분들의 마음을 돌아봐 주세요. 미워도 다시 한 번.
강기린
만화도 문화다, 오락 그 이상의 만화,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강기린은 척척팩토리의 서브라이터이자 만화평론가입니다.
척척팩토리는 만화 창작집단으로 네이버에 <7번국도아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