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차 밀양 희망버스에 참가한 장애인활동가들이 어린아이를 전동휠체어에 태우고 행진하는 모습. | | |
밀양으로 떠난 희망‘리프트카’
주황색 손수건, 색색의 엽서, 소책자를 개수에 맞게 챙긴다. 기차팀은 벌써 출발했을 터,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차로 이동하는 장애인활동가가 휠체어를 탄 채로 리프트에 오른다. 걱정과는 달리 비는 조금 내려 다행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우비도 몇 벌 챙기고 휠체어 컨트롤러도 비닐로 싼다. 떠날 채비는 끝났다. 센터 장애인활동가들과 함께 떠나는 밀양 희망버스, 아니 밀양 희망‘리프트카’에 시동이 걸린다.
지난해 12월 2일, 송전탑 공사 강행을 비관하며 음독자살하신 유한숙 어르신이 돌아가신지 50여 일이 넘은 즈음 2차 희망버스가 다시 밀양을 찾았다. 나는 뒤늦은 유난을 떨며 주위 사람들과 밀양 상황을 나누었지만, 사실 밀양의 외롭고 지난한 싸움은 9년째 이어지고 있던 터였다.
죄책감의 무게는 더없이 무거웠다. 내가 외면해온 수년의 시간을 지나 두 분의 밀양 어르신이 세상을 등졌고, 나는 이 죽음들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죄송한 마음을 가슴 한가득 지고, 더 이상 밀양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센터활동가들과 2차 밀양행 희망버스를 결정했다. 전국 곳곳에서 모일 희망을 얼굴들을 기다리며, 마음 한구석 쓰라린 죄책감으로 남아 있는 그곳 ‘밀양’으로 우리는 향했다.
병균버스와 외부세력들
밀양역에 도착한 기차팀을 밀양시청까지 태워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집결시간보다 이른 낮 12시쯤 밀양시청 앞에 도착했다. 마주 보이는 길가에 일렬종대로 늘어선 현수막들이 2차 희망버스에 참가한 우리를 격하게 맞아 주었다. “병균버스 물러가라” “너희 때문에 밀양 다 죽는다” 따위의 문구들이 구질구질하게 펄럭였고, 그보다 더 구질구질한 경찰차벽이 이 안으로는 한 발짝도 들어올 수 없다는 듯 시청 정문을 원천봉쇄하고 있었다. 경찰차벽 너머 우뚝 서 있는 밀양시청 어디쯤에서 엄용수 밀양시장도 창밖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저들에게는 우리가 떼거리로 병균을 몰고 오는 병균 덩어리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전염성 강한 선동을 일삼는 ‘외부’ ‘병균세력’들. 밀양의 할머니들이 70~80년 평생 일궈온 땅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빼앗고, 어르신들이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을힘을 다해 맞서 싸우는 할머니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밀양을 지켜내겠다는 ‘외부세력’들의 연대일 테니까.
그러니 AI(조류인플루엔자)에 빗대어 희망버스를 ‘병균버스’로 조롱하는 것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에 대한 두려움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연 저들이 겁먹은 대로, 희망과 진실의 힘에 전염된 이들은 (심지어) 방역까지 꼼꼼히 마치고 시청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낯익은 얼굴들도 보였고, 저 멀리 제주에서 날아온 분들도 보였다. 밀양의 아픔을 함께 껴안자고 한걸음에 달려온 사람들. 뜨겁게 반갑고, 또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
| ▲'밀양 송전탑 건설 중단이 곧 희망입니다!'라는 피켓을 든 활동가. | | |
밀양으로 흘러온 사람들
낮 2시 밀양시청 앞 집회와 함께, 2차 밀양 희망버스 일정이 시작되었다, 주최 측 추산 4000여 명에 달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모였고, 시청 앞은 금세 참가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희망버스의 시작을 힘차게 선포한 후, 뒤이어 밀양 시내를 활보하는 가두행진이 진행되었다. 차선 하나를 완전히 점령한 대오는 밀양시청을 시작으로 영남루 분향소와 한전 밀양지사를 거쳐 밀양역으로 이어지는 5.5km의 행진코스를 지나며, 밀양시민에게 ‘희망버스’가 왔음을 알렸다.
경산장애인자립센터 장애인활동가들도 대오와 함께 행진을 이어갔다. 그 중 휠체어를 사용하는 몇몇 활동가들이 어린아이들을 휠체어로 태워주는 무료 셔틀을 운행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저마다 다른 삶의 공간에서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은 1km에 달하는 긴 대오를 이루었고, 우리는 함께 구호를 외치고 난장을 펼치며 밀양 시내 곳곳을 누볐다. 그런 우리를 향해 어떤 할아버지는 다짜고짜 욕을 퍼붓기도 했고, 누군가는 송전탑 반대 손피켓을 들어 보이며 끈끈한 응원의 마음을 보내기도 했다, 9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싸움이 밀양시민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 것일까? 밀양 시내에서 만난 시민들의 지지와 욕설들이 마구 뒤엉켜 마음속으로 묵직하게 날아들었다.
행진이 끝나고, 종착지인 밀양역에 도착해 함께 저녁을 먹었다. 2500인분의 식사를 준비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참가해 추가로 김밥과 떡이 전달됐다. 우리도 대오 가장 끝에 자리를 잡고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준비하고, 모자란 음식을 나누어주고, 배식당번을 마다치 않은 수많은 이들의 수고로움 덕분에 쌀쌀해지기 시작한 저녁 날씨를 따뜻한 국밥으로 견뎌낼 수 있었다.
뒤이어 시작한 문화제는 밀양행 희망버스에 동행한 참가자들의 연대를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였다. 다양한 사람들의 공연과 발언, 토크쇼 등의 프로그램들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단연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것은 밀양할머니들의 합창 공연이었다. 1차 때 공개된 “내 나이가 어때서”에 이어, 신곡으로 컴백한 밀양합창단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투쟁하는 할매들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기개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마을회관과 공사 현장으로의 접근이 어려운 장애인활동가들은 문화제 일정을 끝으로 다시 본래의 삶의 공간으로 되돌아갔다. 이동도, 건물 접근도, 화장실 이용도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장애인활동가들과 함께한 희망버스는 지금, 이곳 밀양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모인 탓이었다. ‘경제성장’과 ‘국책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농촌 주민의 희생을 그저 알량한 ‘지역이기주의’로 몰아세우는 국가와 한전의 논리가 결코 진실이 아니라는 것, 도시에서 사용하는 전기가 소수의 희생과 눈물로 탄생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 현재의 에너지생산 방식을 지속하면서 전기를 소비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밀양의 싸움을 통해서 배운 것이다.
 |
| |
“단 하루만이라도 공사 현장에 가고 싶다.”
문화제가 끝난 이후, 지역마다 흩어져 송전탑 공사 현장으로 결합했다. 내가 간 곳은 96번 공사현장이 있는 동화전 마을. 최근 열성적으로 투쟁을 함께해왔던 소중한 동지가 등을 돌리고, 마을공동체가 또다시 분열의 아픔을 겪고 있는 동화전 마을은 송전탑 반대 주민이 매우 적은 곳이기도 하다.
희망버스참가자들과 함께 마을회관에서 짧은 잠을 청하고, 새벽 5시 30분, 96번 공사현장으로 향했다. 매일같이 비탈진 산을 기어오르다시피 하면서도, 한전 직원과 경찰들에 가로막혀 공사현장으로 갈 수 없었던 마을 어르신들의 절절한 부탁이 우리를 공사현장으로 오르게 했다. “단 하루만이라도 공사현장에 가고 싶다.” 이것이 동화전 마을 어르신들의 부탁이었다. 공사장으로 진입하려는 우리를 경찰들은 산 길목마다, 언덕마다 가로막았다.
거대한 공권력의 하수인에 다름 아닌 경찰들은 권력자의 명령에 그저 복종할 따름이었다. 아무리 끌어내려도 끝이 없는 경찰과의 대치와 충돌이 소모적으로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지휘하는 우두머리들은 언제나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주민들의 삶 터를 빼앗는 것도 모자라 죽음으로 내모는 저 송전탑, 그저 내 땅에서 지금처럼 농사짓고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원을 철저히 짓밟는 국가폭력. 이 답답하고 분통 터지는 시간들을 매일매일 지나왔을 밀양의 할머니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싸워왔을지…
우리는 공사현장을 불과 100여 미터 앞두고, 산에서 내려와야 했다. 결국 넘어서지 못한 저 공권력의 벽. 어르신들의 간곡한 부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단 하루만이라도 공사현장에 가고 싶다…”
2차 밀양 희망버스, 그 후
밀양희망버스가 다녀간 직후, 유한숙 어르신의 유족들과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를 밀양 시청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밀양시청 공무원과 경찰들에 의해 폭력적인 진압을 당했다. 24시간의 감금 고착과 폭행, 충돌. 27일 밀양은 그야말로 무법지대, 아비규환의 장이었다. 폭력과 비명, 울부짖음만이 난무하는 9분짜리 영상을 결국 끝까지 보지 못하고 정지와 재생을 반복했다.
희망버스가 끝나고 다시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온 우리,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갑갑한 절망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듯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또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게 남아 있다. 센터 활동가들과 함께 2차 밀양희망버스를 결정했듯이, 지금 이곳 밀양의 싸움에 함께하는 것, 밀양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
밀양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우리는 또다시 밀양으로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