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도래하고야 말았다. 이 지긋지긋한 명절이. 산업화를 완성(?)하고 정보화의 최선두에 서 있다는 대한민국은 급속한 변화 속에서도 농업공동체의 봉건적 풍속을 여전히 국가적 차원에서 기념하고 있다. 그것도 1년에 두 번씩이나! 물론 비합리적 의례행위가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E. 뒤르켐의 명제를 반박할 내공은 되지 않으니 인정한다 치더라도 세속화된 우리에게는 직면하기 힘든 것이 바로 설과 추석이라는 강대한 명절이다.
그래서 명절의 여러 행사와 잔소리를 피해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잉여들을 위한 영화들을 추천하고자 한다.
외로움은 고수를 향한 필수품 <동사서독_리덕스>
언제나 그렇듯 명절이면 만나는 집안의 어르신들은 왜 그리도 연애사에 대한 관심들이 많으신지 늘 솔로인 잉여들을 괴롭힌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솔로 잉여들. 당신이 솔로인 이유는 바로 왕가위 감독의 초기작인 <동사서독>에서 설명해주고 있다. 취생몽사라는 정체불병의 대륙의 술을 등장시킨 이 영화는 김용의 소설 <사조영웅전>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요한 테마는 결국 고수는 솔로일 수밖에 없으며, 무림의 고수가 되려면 외로움은 필수조건임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구양봉은 결국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황약사는 사랑을 잊어버림으로써 강호를 호령하는 천하오절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인간에게 번뇌가 있는 이유는 기억력 때문이듯이 우리가 고수가 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사랑과 연애 때문이다. 그러니 모두 고수가 되기 위해 솔로가 되자!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 <가족의 탄생>
‘만들어진 전통’이란 책에서 말하듯 대개 전통이라는 것들은 날조되고 우연적으로 확산된 하나의 집단적 행동 혹은 의례 이상은 아니다. 늘 그렇듯 우리의 머릿속에 강제로 상상된 가족이라는 것도 그렇다. 가족은 왜 가족이고,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답은 늘 뻔하다. 식상하다. 우리 잉여들은 이제 가족의 조작된 가족의 계보학을 뒤집어야 할 시기임을 늘 알지만, 너무나 소심하여 움츠러든다. 그러니 이 말도 안 되는 가부장적 가족애를 벗어난 가족들을 만나러 가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인바 추천드리는 영화는 바로 2006년작 <가족의 탄생>이다. 가족이라는 하나의 사회적 공동체에 대해서 현실에서는 왜 자꾸 말도 안 되는 정형화를 요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이라는 의미와 그 다양함에 대해서 만나고 싶다면 이 영화 너무나 좋다.
어차피 봄날은 오지 않으니 기대하지 말자. <봄날은 간다>
평년에 비해 따듯하다고는 하지만 겨울은 겨울. 솔로들은 자신들의 계급(?)을 배반하는 의식을 가져서 늘 솔로탈출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으니 겨울에 사랑을 만나 곧 봄이 오더라도 여름이면 다 헤어지게 되어 있다라는 것을 보여준 영화가 있다. 2001년 작 <봄날은 간다>. 워낙 유명한 영화이고 인구에 회자가 많이 된 영화라 덧붙일 말은 없다. 다만 라면이 먹고 싶다.
덕후의 역습. <스타워즈>
취업도 못하고, 연애도 못하고, 돈도 못버는 참혹한 현실에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는 늘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하지만 그 새로운 세계의 도래는 늘 늦어지게 되니 우리는 가상의 현실로 돌진할 수밖에 없다. 요번 설에 추천드리는 돌진 장소는 바로 스타워즈이다. 물론 국가의 건설과 “내가 니 애비다”라는 가부장적요소가 있기는 하나 엄청나고 꼼꼼한 세계관과 물량으로 은하라는 우주로 우리를 데려다 준다. 낯설다고? 걱정하지 마시라 엄청난 막장국가와 기업, 공화제의 붕괴, 불륜 등등 너무나 익숙한 주제들이 펼쳐지니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음... 그러니깐 <제4공화국>과 <사랑과 전쟁>을 짬뽕하여 우주를 배경으로 하되 임성한 작가님이 집필한 것으로 이해하고 보면 아무런 무리 없이 이 광활한 세계에 진입할 수 있다. 다행히도 포스가 넘치시는 EBS에서 공짜로 틀어준다니 본방을 사수하자!
우리만 그런 게 아닙니다 <프라미스드 랜드>
얼마 전 주말 밀양희망버스가 끝나고, 분향소를 침탈당해서 분노하고 가슴 아파한 독자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도대체 백주대낮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 보면 이 나라에 사는 게 무슨 죄인가 하고 자책하게 된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거대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땅을 매수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은 여기 이땅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최선진국(?)인 천조국도 마찬가지이다. 2013년작 <프라미스드 랜대>는 천연가스 기업이 어떻게 미국의 농촌(?)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똑같다. 형식적인 주민공청회와 의견수렴, 보상으로 회유하면서 공동체를 분리시키기, 개발로 인한 오염과 피해를 은폐하는 것까지 매우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나는 늘 산업화 이전 농촌공동체의 의례가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있다. 특히나 농촌공동체의 경험이 있는 앞선 세대가 서서히 물러가고 도시나 도시공동체에서 성장한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될 때,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명절은 지속해서 유지될 수 있을까? 오늘날 명절의 의미가 퇴색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싸가지가 없어서라기는 보다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의례양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E. 뒤르케임은 전통적인 공동체가 사라져 가고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의례로 형성된 공동체 형성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우리가 눈 뜨고 보고 있듯이 민주주의는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가족적인 차원에서도 늘 거리가 멀다. 그러니 괜히 어르신들만 탓하지 말고 남아도는 시간, 닥치고 영화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