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은 10월 1일 송전탑 공사가 재개된 이래 공사가 다시 진행되고 있다. 질병처럼 퍼져가는 송전탑 공사와 사력을 다해 이를 막는 이들. 경찰의 비호를 받으며 송전탑 건설을 밀어붙이는 한전을 과연 주민들이 이겨낼 수 있을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주민과 크고 작은 상처로 얼룩진 주민들에게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공사가 재개 이후 송전탑 건설 현장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누피 씨. 누피 씨는 대구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밀양에서 낮을 보내는 생활을 반복 중이다. 최근 공무집행방해와 경찰 모욕 등의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다 구속영장이 기각돼 석방됐다. 주민들이 공사를 방해한다며 곤경에 빠진 레미콘 기사를 부각한 일부 종편의 보도에서 ‘레미콘에 뛰어드는 여학생’으로 소개된 누피 씨. 하지만 직접 만난 그는 겁이 많았고, 부끄러움도 많이 탔다. 길을 걷던 중 지나가는 차량에도 놀라 움츠러들었고, 사진기 앞에서는 쑥스러워 표정 연출도 못했다.
소개 먼저 해 달라. 왜 밀양에 갔나
2010년부터 청소년운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활동하며 주로 밀양에 가고 있다. 올해 10월 1일부터 밀양을 찾았다. 밀양에서는 왜 밀양에 왔는지 서로 인사를 나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10월 초부터 공사가 재개되며 금곡헬기장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연행도 발생했다. 열 한 명 연행됐는데, 왜 그럴까 싶어 가다보니 계속 있게 됐다.
처음에는 금곡헬기장에 갔다가 대치 상황이 종료된 후 주로 바드리 마을로 갔다. 그 마을은 합의가 끝났지만, 동화전 마을과 인접한 곳이라 동화전 주민들이 바드리 마을에서 공사를 저지하고 있었다. 바드리 현장이 공사하기 쉬운 지형이라 한전이 제일 먼저 공사를 시작했다. 산길 입구에서 (동화전 주민들과 함께 한전 공사팀을) 막고 검문 비슷한 걸 했었는데 바드리 마을 주민과 갈등이 다소 있었다.
밀양에서 느끼는 사태의 심각성은 어떤가
처음에는 아는 것도 별로 없었고, 그저 궁금하기만 했다. 12월에 유한숙 어르신이 돌아가신 후 어르신들을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는구나 싶었다. 헬기가 뜨면 소리가 '두두두' 나는데, 할머니들은 헬기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못 쉬겠다고 한다. 연대하러 온 입장에서 공사현장은 내 집이 아니지만, 할머니들은 '매일매일 송전탑 공사가 만드는 소음과 헬기 소리 들으며 지내시겠구나'하는 스트레스가 느껴진다.
마을 공동체도 무너지고 있다. 송전탑 건설로 인한 피해 정도가 마을마다 조금씩 다른데, 그 때문인지 마을 간의 온도 차도 조금 있어 갈등이 있다. 바드리 마을과 동화전 마을 주민 간의 갈등도 그 중 한 가지다. 한전은 이를 집요하게 노린다. 개별 보상을 통해서 주민간의 갈등을 유발한다. 상동면 도곡 저수지 쪽에 송전탑 4개가 마을을 감싸고 돌아간다. 송전탑이 바로 눈앞에 보여서 주민들도 일심단결하고 있다.
밀양 주민과 주민에 연대하러 온 사람들과는 미묘한 차이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송전탑이 들어서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점은 모두 마찬가지인데, 싸우는 방법에서 차이가 조금 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분들도 있고, 그보다 덜 한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일부 주민들이 당사자면서 왜 적극적으로 안 나서는지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희망버스 때 한 이장이 땅 빼앗기고 쫓겨나게 생겼다고 말했는데, 일부 희망버스 참가자는 (단순한 님비현상처럼 들리는) 그 말에 실망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렇게만 생각할 수 없다. 할머니들이 탈핵 전문가가 다 됐다. 자기 마을에 송전탑이 안 서고 대신 다른 동네에 서게 되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신다. ‘과학적’으로 핵과 송전탑이 얼마나 나쁘다는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할머니들은 다른 동네에도 “괴물 같은 탑을 생기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연대하러 온 사람들과 주민들의 마음이 통한다.
송전탑이 위협하는 것은 주로 주거권과 건강권인 것 같다. 송전탑의 유해성 논란은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과학적’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인데,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한전과 한수원은 핵발전소도 송전탑도 무해하고 깨끗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임상적으로 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결과가 있다. 한전이 무해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다르게 나온 결과를 가지고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설령 논쟁지점이라고 아무리 양보해도, 송전탑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말 그대로 ‘모른다’고 해야 한다. 마루타 실험도 아니고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걸 강요할 수 없다. 건강은 한전이 보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고 주민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수십 년을 함께 살던 사람들이 견해차로 서로 욕하고 미워하게 하고. 지쳐서 돌아서게 하고. 그런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해도 되지만, 끝까지 싸우는 사람들에게는 배신자가 되는 것이다. 주민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무게가 다르다. 쉽게 '기운 내세요'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한 아저씨는 소주를 세 병씩 드셔야 겨우 잠이 든다고 한다. 그 아저씨는 유서를 항상 품에 넣고 다닌다. 송전탑이 저지된다고 하더라도 돌아가신 분들과 지금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주민들을 한전이 어떻게 책임질 수 있나? 돌이킬 수 없다.
송전탑 공사에 공권력이 총동원되고 있다. 밖에서 보기에 실질적으로 공사를 막는다는 것이 불가능 해 보일 정도다
최근 115번 송전탑 공사가 진행되는 상동면에도 주민들이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거다. 마을에서 철탑이 눈에 보이는데 싸운다는 것은 무모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딱 하나 남은 송전탑이라도 막아낸다는 심정인 것 같다.
주민들 심정이야 내가 모두 알 수는 없지만, 40년, 50년을 한 곳에서 산 사람들이 거기서 쫓겨나면 어떻게 살겠나. 밭도, 집도 거기에 다 있는데. 일생이 거기에 있는데. 상황이 막막하지만 도저히 물러설 곳이 없으니 이토록 처절한 거다.
연대하는 입장에서 어려운 점이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가를 가늠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주민들이 먼저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경찰도 나더러 “아가씨는 뭔데 여기 있나, 내가 주민을 더 잘 안다. 여기 사람이다”고 한다. 실제로 그렇다. 어떤 마을에서는 일부 주민과 경찰이 친인척 관계인 경우도 있다, 농성장에서 대화하며 커피 한 잔 먹다가 다시 싸우는 상황도 벌어진다.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주민들은 한전보다도 경찰이 더 화난다고 한다. 주민 안전을 보호한다는 경찰이 주민을 밀어서 척추 골절시키고. 수많은 부상자를 만들어 내고. 10월초 보다 지금 경찰이 더 나빠졌다. 훨씬 더 폭력적이다. 할머니가 정신을 잃었는데 구급차도 안 부르고 그대로 둔다.
내가 연행될 당시 경찰이 하는 대화를 들었다. 자기 아이 이야기하며 유치원이 어떠니, 선생님이 어떠니 하는 일상적 대화를 나누더라. 그렇게 우리를 괴롭히던 경찰도 각자 일상이 있고,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순간 당황스러웠다. 너무 어색했다. 괴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주민들은 경찰이 왜 여기 있는지 묻는다. 어떤 경찰은 우리도 이거 안 하면 밥줄 끊긴다는데, 화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좋아서 하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좋아서 한다면 끔찍한 거고 그게 아니라도 너무 심하게 폭력을 행사한다.
할머니들은 평생 경찰 근처도 못 가봤는데 이제 경찰한테 욕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말 한마디 못하던 할머니들이 한전과 경찰 때문에 욕쟁이가 됐다. 아이러니하게 전통적으로 평생 억압받던 할머니들이 스스로 저항하는 과정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도 있다고 한다. 슬픈 이야기다.
마지막,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가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도 계획대로 산 게 아니다. 삶에 중요한 순간에서 어쩌다 보니, 살다 보니 결정되는 게 많다. 어쩌다가 오게 된 밀양에서 함께한 것에 조금도 후회가 남지 않는다. 언제나 같은 생각이지만 어렵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고 더 많은 사람이 밀양에 와 줬으면 좋겠다. 공사 재개할 때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기자도 없다. 잊힌다는 게 무서운 거다. 내가 연행돼서 많은 사람이 탄원도 보내줬는데, 그렇게라도 관심이 다시 생기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지금은 밀양에서 지내는 것이 너무 좋다. 서로 의지하며 추위를 버티고, 같이 군고구마도 먹고 많은 사람도 새로 사귀게 됐다. 사건이 종결되어도 계속 연락하고 만나고 싶다. 별도 예쁘고 귀여운 강아지 동동이도 좋다. 송전탑은 동동이 집 위에 세워질 거고 밤의 별을 가릴 거다. 좋은 것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함께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