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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4년01월17일 14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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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현의 그 노래를 들어라] (42) 소주
슬픔과 절망과 좌절의 자리에서 소주를 만나고 싶지는 않다

신경현(노동자, 시인) jinbo73@hanmail.net

소주

그는,
사내와 함께 걸어왔다
아직 휘발되지 않은 채
그는,
사내의 몸 구석 구석을 헤매고 있는 듯
사내의 몸이 자주 흔들렸다
입을 열진 않았지만
붉게 충혈된 사내의 눈동자는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이
즐겁지만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분명 작업복이 들어있었을
낡고 검은 가방을
사내는 힘겹게 쥐고 있었고
부르튼 손등 위로
파랑치던 주름들이 보였다
항상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내의 흔적들을
그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깊숙이 내려앉은 사내의 어둠이
사내가 아무리 손을 휘휘 저어도
사라지지 않았음을
그는, 쭈욱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자주 흔들리던 사내와 함께
자주 울컥거리던 사내와 함께
그는,
벌써 몇 번쯤은 시큼한 눈물을
울고 울었을 것이다

*맑고 맑은 처음과 달리 오래 마시다 보면 소주는 사람들을 결국 흐리게 만들 때가 많다.
그리고 오래 마시다 보면 소주는 사람들을 때때로 밀려오는 슬픔과 분노에 젖어들게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도 소주를, 아니 세상의 모든 술들을 마시면서 하루의 피곤과 슬픔과 절망과 희망을 안주 삼아 밤을 보낸다.
나 또한 많이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고 싶다. 그래도 올 해는 제발 슬픔과 절망과 좌절의 자리에서 소주를 만나고 싶지는 않다. 조금은 웃어가면서 조금은 서로에게 힘을 줘가면서 나는 소주를 만나고 싶다.


신경현(시인, 노동자) 그는 '해방글터' 동인으로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2008)', '따뜻한 밥(2010)'을 출간했다. 그는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용접일을 해왔다. 2011년까지 성서공단노조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지리산 실상사 산자락으로 들어갔다. 도시를 떠나 산골에서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하고자 한다.
신경현(노동자, 시인) jinbo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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