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금) 동대구역에서 "공약파기 규탄, 민영화 저지, 노동기본권 쟁취"를 주장하는 노동자집회를 했다. 주최 측은 나에게 복지공약을 파기하여 민중생존을 더욱 힘들게 하는 박근혜 정부를 규탄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러나 별로 규탄하고 싶지 않았다. 하나마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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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22일 동대구역 앞 광장에서 열린 '공약파기 규탄 민영화 저지, 노동기본권 쟁취' 집회가 열렸다. | | |
사기꾼에게 당한 경험이 있는가? 사기꾼은 엄청나게 달콤한 말을 마구 던져서 사람을 낚는다. 어차피 거짓말이어서 지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기당한 사람이 사기꾼에게 돈 돌려받은 경우가 있는가? 어림없는 소리다. 사기정권은 애초부터 공약준수 의지가 없었다. 공약은 대중을 낚기만 하면 되고 그래서 선거에 이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기정권에 공약을 지키라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더 근본적인 주장을 했다. '공약을 지키라'고 하는 것보다 '당장 물러나라'고 하는 게 맞지 않는가? 라고.
진실한 말을 하는 권력이 너무도 간절한 시대이다.
11월 24일은 교회력으로 성령강림절 마지막 주일이다. 그다음 주인 12월 1일부터는 대림절이 시작한다. 성령강림절 마지막 주일 복음서말씀은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대림절부터는 죽으신 그분을 다시 기다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교회력의 흐름이 매우 정교하다.
앞에서 권력이 오직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거짓공약을 남발한다고 했다.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을 어느 정도 실천할까? 실천율이 높은가? 아니면 공중으로 날린 비율이 높은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교회에 나오겠다는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으면, 우리 교회는 엄청 커졌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 말에 잔뜩 기대하고 기다렸는데, 몇 번 물거품을 겪은 후에는, 듣기 좋으라고 인사치레로 말하는 것임을 나중에 알았다.
사람관계가 깨지는 경우는 대부분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이다. 어떤 사람은 너무 쉽게 약속하고 너무 쉽게 깨거나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 않은, 신중한 사람도 자신이 한 말을 다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원만히 사람관계를 하기 위해서는 이해와 사랑이 필수적이다.
기독인들의 구세주이며 구주이신 예수는 말의 실천도에서 어떠할까? 예수도 1세기에 팔레스타인 땅을 딛고 살아간 사람으로서 많은 말을 했기에, 예수의 언행일치는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확인해볼 만하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살펴보자. 오늘 말씀은 예수가 무리에게 끌려서 십자가에 달리고 온갖 모욕을 당하고 운명하기 직전까지 이야기이다.
그런데 오늘 성경말씀에서 국어문법적으로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바로 예수가 목적어로 나온다.
33절-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달았다. 34절-그들은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35절-지도자들은 (예수를) 비웃으며 말하였다. 36절-병정들도 예수를 조롱하였다. 39절-죄수 가운데 하나도 그(예수)를 모독하며 말하였다.
어째서 이게 눈에 띄는 대목인가? 예수께서 잡히기 직전까지, 복음서 전체에서 예수는 오직 주어로 나온다. 복음서 아무 데고 펼쳐보라. 예수는 선포와 행위의 주체로 나온다. 선포할 때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또는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행위에서도 예수는 능동자, 사람들은 피동자로 나온다. 그런데 잡힌 후부터 예수는 주체에서 객체로 바뀐다. 예수를 죽이려는 무리가 주어가 되고, 예수는 목적어가 된다.
십자가에 달려서도 예수는 철저히 피동적 존재로 농락당한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앞에서 군사들은 제비뽑으며 장난치며 희희낙락했다. 지도자들은 비웃었다. 병정들은 조롱했다. 심지어 예수와 함께 달린 죄수 가운데 하나도 예수를 모독하였다.
가장 흔한 모욕은 말로 하는 모욕이다. "이 자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자기나 구원하라지", "네가 유대인의 왕이라면, 너나 구원하여 보아라",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구원자에게 신성모독적인 말을 마구 날린다.
예수는 자신이 행한 하나님나라 운동, 사람들을 죄와 악습에서 자유롭게 한 모든 행위를 송두리째 부정당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는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그냥 당하기만 한다. 이분이 구세주가 맞나? 어째서 이렇게 무력하지? 열두 군단 이상의 천사들을 호령할 수 있다는 사람 아닌가?
그런데 예수가 전혀 아무 말씀도 안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린치와 조롱을 당하는 와중에서도 꼭 필요한 때는 말씀했다.
하나는 34절 말씀이다. "그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34절)
자기를 죽이는 무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대신 비는 청원기도이다. 오늘 성경말씀에서 계속 목적어로만 나오는 예수가 다시 주어로 돌아온다. 당신 본연의 일을 할 때이다. 본연의 일이 뭔가? 구세주의 일이다. 구세주의 일 중 큰일은 사람을 용서하는 일이다.
예수운동할 때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했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누가 6:27-28)
예수는 죽음에 직면해서도,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향해, 당신이 선언한 말씀을 실천했다.
원수에게 복수보다는 용서가 더욱 우월하다는 진리를 당신의 몸으로 보여주었고,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마땅히 실천함으로 구세주됨을 나타냈다.
또 하나는 43절 말씀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가 이생에서 죽기 전 마지막 말씀이다. 십자가에 같이 매달린 한 죄수가 구원을 청하자 그에 대한 응답이다. 여기서 예수는 다시 주어자리에 있다. 구세주 예수는 죽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자신을 바쳤다.
그리고 이 행위는 예수운동 때 하신 말씀의 실천이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누가 5:32)라는. 무리에게 끌려가서 십자가에 달리고, 온갖 모욕과 조롱을 당할 때는 철저히 피동적이었던 분이, 사람을 용서하고 구원하는 일에서는 원래대로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나타난다. 바로 여기에 예수가 구세주됨이 여실히 담겨 있다.
그럼, 죽는 순간에서도 예수를 움직이게 한 죄수의 태도를 통해, 사람이 어떻게 해야 예수께 구원을 얻는지를 보자.
죄수는 예수를 모독하는 다른 죄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똑같은 처형을 받고 있는 주제에,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라고.
이 말에서 보듯이, 예수께 받아들여지는 태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마땅한 형벌을 달게 받는 자세이다. 이어서 죄수는 예수께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예수께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예수를 참된 메시아로 믿고 깊은 신뢰심으로 그분을 의지해야 한다.
죄수는 자신도 죽는 순간이기 때문에 일평생 중, 가장 정직한 말을 했다. 바로 이 진실한 태도가 예수를 움직였다. 하여 예수는 기력이 다해가는 마지막 순간에서도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해 자신을 바쳤다. 구세주는 물리력으로 사람을 억압하는 분이 아니라, 바로 이런 모습으로 사람에게 다가서는 분이다. 참으로 감탄스럽다.
이렇게 구세주는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면 어떤 죄인도 용납한다. 바로 당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권력뿐만 아니라 평범한 독자들에게 구세주의 용납이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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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시국 미사 후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국내외의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저와 정부는 국민들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이런 일들은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각 수석들께서는 국민을 대신해서 일하고 계신 분들인 만큼 국민을 위해서 잘못된 그 어떤 것들에도 결코 굴복하거나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일해 주시기를 바라고..."라고 밝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