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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11월23일 01시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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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정만진의 경주여행 (2) 단석산 ― 상인암 마애불상군, 김유신 단석 유적
내 칼에 이 바위가 쪼개지면 통일이 된다!

정만진(소설가) daeguedu@daum.net

<삼국지연의>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많다. 유비와 손권이 동오에서 만나 바위를 앞에 두고 차례로 칼솜씨를 뽐내는 대목도 그중 하나다. 유비가 먼저 ‘내가 무사히 형주로 돌아가 대업을 성취할 수 있으면 이 칼에 바위가 갈라지게 해주십시오’하고 기도하며 칼을 휘두른다. 손권이 ‘무엇을 빌었느냐’고 묻자 유비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조조를 물리쳐 한의 정통을 이을 수 있게 해주십사 기원하였소.’

이어서 손권도 칼을 휘두른다. ‘내가 형주를 차지하여 대업을 이룰 수 있다면 바위가 갈라지게 해주십시오.’ 유비가 ‘무엇을 빌었느냐’고 묻자 손권도 유비와 대동소이한 대답을 한다. <삼국지연의>의 이 장면과 유사한 전설을 품고 있는 역사유적이 경주에 있다. 바로 단석산이다.

건천IC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단석산으로 간다. 왼쪽으로 가면 건천의 금척고분군을 거쳐 법흥왕릉, 김춘추 묘와 서악고분군에 닿는다. 만약 등산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경주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단석산부터 오르는 게 옳다.

단석산은 신라의 상징 인물인 김유신이 청소년 시절 입산하여 무예를 닦으며 통일을 염원한 곳이다. ‘나라를 대표하는 보물’인 국보(國寶) 마애불도 있다.

‘단석산(斷石山)’이라면 ‘돌[石]을 자른[斷] 산’이라는 뜻이다. 단석산이라는 이름은 김유신이 화랑 시절 이곳에 있는 큰 바위를 칼로 내리쳐 두 동강이 낸 데서 유래했다. 유신은, “저의 칼에 이 바위가 둘로 갈라지면 삼한일통이 이루어지고, 아니 갈라지면 통일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겠나이다.”하고 천지신명께 기원했는데, 바위가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졌다. 그 바위가 지금 단석산 정상에 있다. 

단석산 상인암, 신라 최초의 석굴 사원

▲단석산 정상석

신라 화랑들은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심신을 수련하고 호연지기를 길렀다. 따라서 김유신도 단석산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영남 알프스’라 부르는 가지산 일대에서도 수련을 했고, 팔공산 동굴에서도 무예를 연마하고 하늘에 기원을 올렸다. 하지만 그의 자취가 가장 분명하게 남은 곳은 단석산이다.

단석산은 신라의 군사들이 오가는 길의 남쪽에 있는 산이다. 북쪽은 선도산이다. 두 산줄기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신라의 장수와 군사들은 적과 싸우러 다녔다.

그래서 단석산은 화랑들의 수련장소로 애용되었을 것이다. 전쟁터로 나아가고 또 돌아오는 장졸들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보면서 신라의 청소년들은 저절로 몸과 마음이 가다듬어지고 단단해졌으리라.

▲단석산 정상에 있는 김유신이 칼로 쪼갠 바위

특히 단석산 827m 정상은 김유신의 단칼에 반 토막으로 난 바위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재미가 있는 역사 체험장이다. 청소년 자녀와 함께 경주를 찾는다면 이곳은 꼭 답사해야 할 필수 유적이라 하겠다.

신선사와 국보 마애불상은 단석산 정상 가는 길의 중간쯤에 있다. 국보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 거대한 바위 상인암에 새겨져 있는 명문(銘文)에 신라 때 이곳에 신선사라는 절이 있었고, 미륵불을 모셨다는 내용이 있어 지금도 이곳의 암자를 ‘신선사’, 국보 마애불을 ‘신선사 마애불’이라 부른다. 명문은 쇠, 돌, 그릇 등에 새겨진 글씨를 말한다.

▲마애불상군 아래의 암자

신선사는 ‘신라 천년 고찰’이라 하지만 당시 건물도 아니고, 현재 면모 또한 옹색하다. 그러나 암자 바로 옆에 버티고 있는 절벽 같은 바위 상인암에 새겨진 마애불상은 보는 이의 숨을 가로막을 만큼 장엄하다. 말 그대로 장륙상(丈六像)이다. ‘장’은 약 3m, ‘척’은 약 30cm를 가리키는 단위이므로 대략 5m를 넘으면 장륙상이라 하는데, 높이가 8m나 되는 상인암을 가득 채워 새겨져 있는 마애불은 응당 장륙상이 되고도 남으리라.

높이 8m, 입구 폭 3m, 깊이 10m의 거대한 ㄷ자형 암벽 틈으로 들어선다. 불상은 삼면에 새겨져 있다. 어마어마한 암벽 사이로 들어가는 느낌도 대단하려니와, 김유신이 입산수도를 한 7세기 전반의 불상으로 추정되는 장륙불상 1구와 보살상 8구를 눈앞에서 대하노라니 불신자가 아니면서도 저절로 엄숙해진다.

전문가들은 국보 199호 마애불상군이 새겨진 상인암(上人巖)을 신라 최초의 석굴(石窟) 사원(寺院)으로 인정한다. 토함산 석굴과, ‘제2 석굴암’으로 널리 알려진 군위의 삼존불보다도 200~300년 앞선 시대의 석굴 사원으로 보는 것이다.

▲ 마애불상군이 새겨져 있는 단석산의 바위굴

지금은 하늘이 뻥 뚫려 있고, 그 터진 곳으로 들어오는 비바람 때문에 석불이 손상될까 봐 보호막을 씌워 두었지만, 옛날에는 기와로 지붕을 덮었다고 한다. 주위에서 발견된 신라 시대의 기와 조각이 당시에 이곳이 석굴 법당이었음을 증거한다.

허리 굽혀 참배하고 석굴 밖으로 나와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김유신 장군이 화랑이던 10대 때 수련 도중 난승(難勝)이라는 도사를 만나 도를 깨친 후 산 정상으로 뛰어올라 커다란 바위를 단칼에 베었다는 전설이 있는, 바로 그 단석(斷石)을 찾아가는 길이다.
 
단석산에는 가운데가 칼날에 맞은 듯 갈라진 바위들이 이곳저곳 많다. 김유신이 가른 단 하나의 바위 때문에 그런 산 이름이 생긴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많아서 단석산이 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단석산에는 김유신이 칼로 중앙을 가른 바윗덩어리들이 많다. 어찌 김유신이 달랑 바위 하나만 칼로 베었을 것인가.

산 정상의 것은 김유신이 가른 바윗덩어리 중 대표다. 정확하게 산꼭대기에 있고, 좌우로 분명하게 한복판이 갈라져 있으니 날카로운 검법의 소유자가 단칼에 두 동강이를 내었다는 ‘전설’은 저절로 ‘사실’이 된다.

단석산, 뜻을 품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홀로 깊은 산중에 들어와 몸과 마음을 단련했던 김유신의 자세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위에서 아래로 칼날같이 갈라진 바위를 매만져보며 어린 나이에도 그토록 철저하게 시간을 영위했던 김유신을 생각해본다.

정상에 서면 동북쪽 아래로 경주 시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시 고개를 북쪽으로 조금 돌리면 무열왕릉이 지키고 선 선도산 아래를 한 줄로 지나가는 길이 보인다. 아(!) 신라의 군사들이 줄을 지어 힘차게 행진하는 모습이 환상처럼 뚜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정만진(소설가) daegued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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