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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11월23일 01시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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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둔산동 옻골 최씨종가
새벽 호수에 은은히 스며드는 울림

임종식(그림 그리는 의사) ljss802@daum.net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소재한 경주최씨 칠계파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동성촌락으로 현재 20여 호의 고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옻골마을입구에는 350년 된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있었다. 고단한 세월을 견뎌온 노거수의 굽은 가지도 아름답다.

에어컨을 켠 차에 있다가 후끈한 바깥기온으로 나오니 카메라 렌즈에 김이 서려 안개가 낀 듯이 자욱하다. 과수원에는 알알이 복숭아가 익어가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니 안개가 낀 듯한 묘한 분위기이지만, 렌즈의 영향이고 실상은 깨끗한 풍경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모든 것이 아닌 착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그러나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에는 렌즈에 김이 서리든, 깨끗한 렌즈이든 그 본질에는 상관은 없을 터이다.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고, 그 곁에 특이한 돌담이 보였다. 개울가로 봉숭아꽃 나란히 심어져 있었다. 나는 시골의 작아서 좋은 비포장 길을 걸어서 들어간다. 흙 돌담 위에 소나무가지를 얹어서 엮은 처음 보는 형태의 담이다. 더위에 지친 배롱나무가 담에 기대어 서 있다. 흙담 아래에는 겹삼잎국화가 예쁘게 피어나 있었다. 그 집 앞 담벼락 아래에 봉숭아꽃 도란도란 속삭이는 곳 매미소리 쩌렁쩌렁하다.

마음으로 보고 있으면 평화롭고 안온하다. 여행은 늘 이렇듯 호젓하고 고적하다. 왼쪽은 솔가지를 이고 있는 담. 오른쪽은 기와담. 나는 그 사이 오래된 골목길로 걸어 들어간다. 이 길을 따라가면 또 오래된 집과 그 골목은 내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듯하다.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집은 골목길 저편에 있을 것이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러 간다. 그 골목길 조금 들어오다

보니 허름한 돌담이 보인다. 골목 안에 오래된 집이 보인다. 건물은 한 채이고 앞마당과 너른 후원의 중심에 가옥이 있다. 그곳에서 나와서 다시 골목길에 나와서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니 다시 커다란 가옥 하나가 보인다. 백불고택의 ‘보본당’이라는 곳이다. 양반댁이나 오래된 사찰에 주로 심는 배롱나무가 보인다. '떠나간 벗을 그리워한다'는 꽃말을 가진 진한 분홍의 유혹. 꽃이 100일간 피어난다고 해서 나무 백일홍이라고도 하고 배롱나무라고도 한다.

'보본당'이라고 하는 곳. 나는 여기에 걸터앉았다. 잠시 쉬어 가련다. 그 옆에 최씨 종가(백불고택)가 있었다. 마루에 걸터앉아서 앞마당을 보니 배롱나무 2그루 서 있었다. 뒷집에는 후손들이 살고 있었고, 한옥의 차경(借景)은 늘 놀랍다. 그대로의 그림이 된다. 뒤편에서 다시 앞마당을 조망해본다. 여름날 진한 분홍 꽃이 아름답다.

고가에서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던? 아니. 아무런 이야기가 들리지는 않지만, 분명히 내게 들려오는 영혼의 울림은 있다. 첫 잔을 마시면 짜릿하게 전해오는 알코올의 톡 쏘는 전율은 아니더라도, 아니면 어느 골목길 짜릿한 첫 키스의 달콤한 기억은 아닐지라도 새벽 호수에 은은히 스며드는 그런 안개의 움직임처럼 내 마음은 젖어든다.

나는 이런 한적한 툇마루에 앉아서 노는 것을 꽤 즐기는 편이다. 다음에 분명히 또 찾을 것 같다. 기억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거창하게 나를 찾아가는 여행, 뭐 그런 테마는 주제가 무거워서 싫고, 내가 누구인지 나도 잘 모르며, 늘 변해가는 세상에 맞추어서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일 뿐이다. 나를 굳이 찾고 싶지는 않다.

내가 보는 내 모습으로든 남이 보든 내 모습이든 나는 나대로 그냥 살아간다.

임종식(그림 그리는 의사) ljss80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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