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말씀의 쟁점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예수와 부활논쟁을 벌인 사두개파는 어떤 집단인가? 둘째는 사두개가 예수께 물은 '수혼규정(일명 시형제결혼법)'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셋째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에서 말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란 무슨 뜻인가? 이다.
이 세 가지 쟁점이 나온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오늘 복음말씀 줄거리를 소개한다.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께 물었다. 그들이 늘 주장하는 '부활이 없다'를 입증하기 위해 시형제결혼법을 연관 지었다.
"형제들이 함께 살다가,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아들이 없이 죽었을 때에, 그 죽은 사람의 아내는 딴 집안의 남자와 결혼하지 못합니다. 남편의 형제 한 사람이 그 여자에게 가서,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 그의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여자가 낳은 첫 아들은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받게 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신명기 25:5-6) 라는 규정이다.
사두개는 이 시형제결혼법을 살짝 비틀어서 예수께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남겨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형수를 맞아들여서 뒤를 이을 아들을 자기 형에게 세워주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율법이 명시한 시형제결혼법은 형이든 동생이든 형수든 제수든 다 해당하는데, 사두개는 형과 형수에게만 국한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이 말하기 좋은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만든 시나리오는 이렇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얻어서 살다가 자식이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고, 그다음에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일곱 형제가 다 그렇게 하였는데,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나중에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그러니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서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20:29-33)
정말이지 사두개의 주장대로라면 난감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솔로몬의 지혜로도 풀기 어려울 것이다. 사두개는 이 질문을 던지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말하기를,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지만, 저 세상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사람은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는다. 그들은 천사와 같아서, 더 이상 죽지도 않는다"라고.(20:34-35)
즉, 사두개가 제기한 복잡한 인과관계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간단히 일축한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부연했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보여 주었다. 거기서 그는 주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20:37,38)라고. 사실 예수가 말한 이 부분에 야웨신앙의 진수가 담겨 있다. 필자는 이것을 소개하고 싶은 거다.
먼저 사두개. 사두개는 유력한 제사장 가문들과 세속 귀족 대표자들이 속한 종교적인 당파이다. 이들의 출신성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 지배세력이다. 이들은 모세 율법에 나오는 문자적인 가르침만 인정했다. 죽은 자들의 부활이나 천사들의 존재는 믿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오경은 유다사회를 지배하는 법체계이고, 그 법의 운영자가 자신들이므로 신줏단지 모시듯 할 것이지만, 부활이나 천사는 그 단어 속뜻에 현실세계를 초월하는 의미가 담겨 있으므로 현실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자신들로서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다.
그래서 사두개가 예수께 '일곱 형제 시나리오'를 던진 이유도, 부활은 이처럼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는 자신들의 주장을 강변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정말 시형제결혼법은 사두개가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하찮은 소재에 불과한가? 결코, 아니다. 한번 보자.
시형제결혼법은 지파동맹으로 구성된 이스라엘이 평등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고 상위법이다. 가나안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열두지파가 공평하게 땅을 나눠 가진다. 그리고 땅이 다른 지파로 넘어가지 못하게 지파 간 경계를 분명히 했다. 평등사회를 유지하는 데는 땅 문제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가령, 남편이 죽고 시집 온 부인에게 재산을 상속할 경우, 근친혼을 피하고자 다른 지파에서 온 부인을 따라 재산이 지파의 경계를 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토지의 평등을 근간으로 하는 이스라엘 평등제도가 무너져 버린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과부에게 재산을 상속하지 않았다. 그 대신 과부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남편이 사망할 경우, 시형제와 결혼하게 해서 자식을 낳아 재산을 상속시켰다.
시형제결혼법과 관련한 극적인 일화가 있다. 야곱의 아들 유다가 큰아들이 죽어서 홀로 된 다말이라는 며느리에게 시형제결혼법을 지키지 않자, 며느리가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인 유다와 관계를 갖고 자식을 가진다. 과부가 임신한 것이 알려져서 시아버지에게 화형당하기 직전, 다말은 항변하기를, "아이의 아버지는 당신이라고, 내가 이렇게 한 까닭은 당신이 시형제결혼법을 실천하지 않아서"라고 한다.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다말은 용서받는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모든 법에 앞서 토지의 평등제도를 우선으로 했고, 그 시행령이 시형제결혼법이었다. (김경호, 『새역사를 향한 순례』'이스라엘 평등사회의 구조' 59-63쪽)
 |
| WCC 총회 개막하는 날, 총신대 신대원 학생과 교직원 900여명이 부산 벡스코 근처에 있는 수영로교회 입구 계단에 모여 WCC 총회 반대 기도회를 열었다. 이들의 신앙은 살아있는 믿음인가? 죽은 믿음인가? | | |
이렇게 시형제결혼법은 평등사회 유지를 위한 탁월한 제도라는 것을 사두개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러므로 사두개가 진정 시형제결혼법의 취지를 살린다면 '일곱 형제 시나리오'같은 이야기로 본질을 흐릴 게 아니라 그 당시 악폐인 소작인 착취구조를 개선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이 부재지주였기에 토지제도개혁에는 전혀 의지가 없었다. 사두개가 부활을 불인정하는 태도, 그래서 자신들의 의무인 시형제결혼법의 실천을 방기하고, 저질 질문으로 희화화하는 것은 기득권세력이 현실이 바뀌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세 번째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해서이다. 이 말씀의 출처는 출애굽기 3:6이다. 모세가 처음으로 야웨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다. 그때 모세의 호기심을 강하게 유발한 장면이 불 속에 있는 가시나무 떨기가 타지 않는 모습이었다. 모세가 매우 신기해서 다가갔더니 불에 휩싸인 덤불 속에서 야웨 음성이 나왔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부활의 의미와 불타지 않는 가시나무 떨기는 모두 같은 상징이다. 가시나무 떨기는 이스라엘의 기원인 히브리백성을 상징하고, 불은 애굽제국이 히브리백성을 삼킨 현실을 상징한다. 떨기나무가 불 속에 있듯이, 히브리백성이 애굽 제국의 탄압을 받고 있지만, 결코 타서 사그라지지 않듯이, 히브리백성도 애굽에 먹히지 않고 살아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야웨의 음성이 바로 그 불 속에 있는 가시나무 떨기에서 나왔다. 즉 야웨하나님도 지독한 탄압에 신음하는 히브리백성의 고통 속에 함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야웨는 당신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다. 이 말은 '히브리사람의 하나님'과 동의어이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든 살길을 찾아 방랑하며 고군분투하는 히브리사람들이었다. 이런 떠돌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이스라엘 선조들이 겪었던 역사로 남은 거다. 이들은 전형적인 히브리 중의 히브리였다. 그렇기에 이들 선조는 일찌감치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모태인 히브리백성들의 기반으로 생생히 살아있는 존재가 됐다.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이들을 살아있는 자들로 만들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모세에게 처음 나타난 야웨하나님이 자신을 이들 선조의 하나님으로 소개한 이유는 이제부터는 제국의 신 밑에서 신음하는 히브리사람들과 한편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제국 신들과 대척점에 선 히브리의 하나님으로.
이 하나님은 제국의 신에 포섭돼서 권력을 떠받드는 사람들의 죽은 믿음과는 달리, 제국의 신에 저항하여 자유를 찾는,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신앙의 대상이 됐다. 바로 산 자들의 하나님이 된 것이다!
사두개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질문에서 알 수 있듯이, 진리의 말씀도 보는 이의 태도에 따라 천지차이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의 믿음은 살아 있나? 죽어 있나? 자신의 존재를 투신하여 삶의 길을 결단하고 실천하는 믿음인가? 아니면 교리와 규정에 대해 형식적으로 동조하는 믿음인가?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씀이 독자들에게도 침투하여서 생생하기를.
 |
| ▲세계교회와 함께하는 탈핵 촛불기도회 및 문화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