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주] 반갑습니다. 뉴스민 독자 여러분, 저는 대학원에서 북한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뉴스민과 인연을 맺게 되어 부족하지만, 북한에 대한 다양한 글을 써보라는 제안을 받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종북좌파니 내란음모니 하는 와중에 북한에 대한 글을 쓰게 되니 공안기관에 대해 자기검열도 하게 되고, 독자분들이 불편하지 않을 북한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하다 보니 자기검열을 하게 됩니다. 이런저런 자기검열 과정에서 쓴 글이다 보니 어쩌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고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양해 부탁합니다.
공안당국은 통합진보당 강령에 나오는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북한에서 주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 노선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강령 전문에 따르면 “통합진보당은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고, 민중이 정치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진보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겠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강령에 대한 우리 정부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최고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는 과거 김일성이 주장하여 북한의 소위 건국이념이 된 것으로, 우리나라가 미국에 예속된 식민지이고, 소수 특권 계급이 주인 행세를 하는 거꾸로 된 사회라고 하면서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도모하는 이념으로,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이념이고.......
그래서 문제가 되는 김일성의 강연을 찾아보았다. 법무부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청구 보도자료를 보면 1945년 10월의 강연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김일성 저작집을 확인해보았다.
확인결과 법무부가 근거로 삼은 문건은 1945년 10월 3일 평양로농정치학교 학생들 앞에서 한 강의로 제목은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하여”였다. 전문을 다 공개하는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통일부 북한자료센터를 방문해 김일성 저작집 1권을 열람하기 바란다. 아니면 대학 도서관에 있는 특수자료실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2차 세계대전이 반파쇼민주력량(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채택한 반파쇼인민전선 노선의 영향 아래에 당시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미국과 영국을 소위 ‘진보적 민주주의’국가로 규정한다)의 승리로 끝나고 반민주세력은 약화하고 민주주의 역량은 크게 강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투쟁 과정에서 조선민족은 조국광복의 역사적 위업을 쟁취하였으며 일재잔재와 봉건잔재를 철저히 쓸어버리고 자유롭고 독립된 부강한 나라를 건설해야 할 과업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올바른 노선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 올바른 노선은 참다운 민주주의인 진보적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반동세력은 봉건전제제도를 되살리려고 하고 있으며 일부 계층은 “민권”이요 “민주”요 하며 부르주아공화국을 세우려 하고 있다면서 봉건주의를 되살리려는 것은 시대착오적 망상이며 부르주아 공화국건설은 친일 민족반역자와 같은 매판자본가들의 술책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당장 우리나라에 소비에트 정권을 세워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고 지적하며 이는 우리의 구체적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라고 한다. 조선의 자본주의적 발전이 일제의 지배로 인해 억제돼 봉건제 사회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반봉건사회로 남아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여 인민대중이 나라의 주인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길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진보적 민주주의노선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회주의 국가건설노선이 아니었다. 사회주의 노선인 소비에트 건설노선을 비판하고 있다. 당시 북한사회 혹은 한반도는 식민지를 거치면서 농촌의 봉건적 지주-소작관계가 존속하면서 동시에 도시에서는 일제의 2차대전 수행과 식민지수탈을 위한 목적에 맞게 공업이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사회주의국가를 즉각적으로 건설하는 것은 전혀 고려대상이 될 수 없었다. 당시 한반도의 북쪽을 점령했던 소련의 목표 역시 즉각적인 소비에트 건설을 통한 사회주의 국가수립이 아니었다. 식민지잔재와 봉건잔재를 극복하려는 방법으로 제시된 노선이 ‘진보적 민주주의’ 노선이었다.
과연, 이것이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건국이념일까? 북한 스스로 사회주의체제를 완성했다고 주장하는 시점은 1953년 사회주의 건설을 시작한 이후 1958년 농업협동화가 완성된 이후이다. 1945년 해방 이후 북한은 스스로 사회주의적 노선을 표방한 적 없다. 흔히 북한에 대해 가지는 오해 중 하나이다. 물론, 당시 집권당이었던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북조선 로동당 또는 조선로동당은 인민민주주의 노선을 내세웠을 뿐, 사회주의적 전망을 내어놓은 적이 없다. (당명의 변화도 의미심장하다. 공산당에서 노동당으로 변화해 간다. 이는 조선공산당, 조선신민당, 근로인민당 3당 합당을 통해 스스로 공산당이라는 명칭을 노동당을 바꾼 것이다. 즉, 당명에서도 사회주의적 색채를 뺀 것이다)
토지개혁은 당시 사회주의 독립운동세력뿐만 아니라 김구를 비롯한 민족주의 독립운동세력도 주장한 내용이다. 봉건적 토지소유구조 개편과 주요 산업에 대한 국유화 역시 식민지적 공업구조를 개편하기 위해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진영 양 진영이 공유하고 있었다. 하물며 사적소유인 공장은 국유화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국유화 혹은 노동자 자주관리로 운영된 공장들은 일본인 자본가가 버리고 간 공장 혹은 친일자본가의 공장이었다.
진보적 민주주의의 다른 표현은 ‘신민주주의’다. ‘인민공화국’은 자본가들의 독재인 부르주아 국가형태도 아니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인 소비에트 같은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었다. 국가권력은 자본가 계급(물론 소위 민족자본가)을 포함한 계급연합정권 성격이었다. 경제구조는 국가소유, 협동적 소유, 사적소유가 공존하는 형태였다. 주권이 인민에게 있기 때문에 중요 산업이 국유화된 조건에서 “산업가 및 상업가들은 자유롭게 자기의 사업을 발전시킨다 해도 국가경제활동에 있어 방해가 안 될 뿐 아니라 도리어 중소상공업자들의 개인적 창발력을 발휘할 기회를 줌은 국가민족경제발전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들의(산업과 및 상업가) 자유 활동이 국가적으로 옹호 보장되었다.
당시 북한에서 주장하던 ‘진보적 민주주의’는 이런 입장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난 헌법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북한이 주장하던 ‘진보적 민주주의’가 우리 헌법에 어긋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북한의 ‘진보적 민주주의’ 노선이 사회주의의 노선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물론, 이후 사회주의 완성을 선언하기는 하지만 해방 직후 1946년 10월 당시의 북한의 노선은 사회주의 노선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토지와 공장 및 상업에서의 사적소유를 허용하였다는 점에서 절대 사회주의 노선일 수 없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노선이 정부의 주장처럼 북한의 ‘진보적 민주주의’ 노선과 일치한다고 하더라도 ‘북한 사회주의’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계획과 시장 혹은 국가와 시장의 조화를 통해 중소상공업자를 육성하고 사회적 약자(인민 혹은 민중)를 지원하는 것이 ‘진보적 민주주의’이다.
마치며 1948년 북한 국가수립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한 가지 더 추가하겠다. 헌법 초안을 둘러싸고 북한에서 벌어졌던 논쟁이다. 헌법 초안에서 “공민의 기본적 권리 및 의무 부분”과 관련, 제19조의 규정이 문제가 되었다. 통과된 안은 “공민은 중소산업 또는 상업을 자유로 경영 할 수 있다”이다. 이 안에 관한 군중토론의 과정에서 너무 우경적이라고 비판받았다. 하지만 이 헌법 초안이 ‘진보적 민주주의국가’를 건설하려는 법적 기초라는 주장이 우세해 그대로 관철되었다. 이래도 ‘진보적 민주주의’가 사회주의적 주장이라고 할 것인가?
북한 오덕후_ 대학원에서 북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박사논문으로 '북한의 사회주의완성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함께 사라진 협동주의적 생산양식'에 대해 연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