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에 여상을 졸업하고 휴대폰 제조 회사에 첫 직장으로 발을 내디뎠다. 학교 다닐 때는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으나, 이것도 돈이 있어야 꿈을 이룰 수 있을 같아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구미에 있는 전자회사 P테크에 입사했다.
처음 입사하는 날 큰 공장 안을 보니 무섭다는 느낌이 컸다. 모두 낯설고 외국에서 온 노동자까지 많았다. ‘이 사람들과 같이 제시간에 출근하고 밥 먹고 일하고 과연 내가 이렇게 맞출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겁도 났다. 임금은 최저임금, 일은 주야간. 일주일은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8시 30분, 다음 일주일은 저녁에 출근해서 아침까지 12시간 맞교대를 했다. 기숙사는 한 방에 8명이 주야 교대로 사용하였다.
사출해서 제품이 컨베이어를 타고 나오면 씻는 일이 주였는데, 약품냄새가 심했다. 알콜이 가득 들어있는 큰 통 안에 제품들을 넣었다 뺐다를 종일 반복했다. 작업복 가운은 입었으나 마스크는 갑갑해서 옆에 두고, 알콜통에 제품을 내릴 때는 숨을 멈추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당시 휴대폰이 잘 나가서 삼성에 케이스 납품 1위였으니 얼마나 바빴는지.
처음 입사할 때는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일하고 일요일은 쉰다고 했는데, 일요일에 쉴 수가 없었다. 토요일은 저녁 8시 30분에 출근해 밤을 꼬박 새우고 일요일 오후까지 19시간 동안 일했다. 매일 밤낮으로 12시간씩, 주말에도 곱빼기 일을 하니 그냥 피곤이 저승사자처럼 몸에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1년쯤 지나서 법에 있는 월차를 쓰겠다는 일로 실랑이가 벌어졌고 결국, 관리자가 “월차 주는 회사에 가라”해서 나왔다. 내 생애 첫 직장은 1년 만에 금기의 벽에다 소리를 지르고 그만두었다.
대구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성서 3차단지 A테크에 입사했다. 휴대폰 액정에 코팅을 입히는 일이었다. 여기서도 세척은 알콜로 했다. 마스크를 했으나 별 차이가 없었다. 여성이 많은 전자 반도체 회사에 관리자는 주로 남성들이다. 이 회사 관리자는 여성의 외모를 가지고 놀리는데, 일종의 관리방식이자 사실은 차별이다. 그리고 자기 말을 고분고분 잘 들으면 시급을 따로 올려줬다. 그러니 일하는 사람들이 군말할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멀쩡히 일하던 반도체 라인을 정리해고한다고 했다. 같이 일하던 언니들과 함께 우리도 노조를 만들어보려고 애썼으나 결국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도 2년 만에 퇴사했으니 오래 했다. 자의는 아니지만...
다시 성서공단 H전자에 들어갔다. LCD제품을 만드는데 일하는 사람들이 1,500명으로 엄청난 규모의 회사이나 전부 용역업체 소속이다. 임금은 최저임금이지만 상여금이 무려 600%여서 할 만하겠구나 생각했다. 일은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요일에 특근을 자주 해야 했다. 종일 서서 일하고 불량이 나면 얼마나 몰아세우는지, 도저히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러면서 느꼈던 것이 ‘세상에 공짜는 없구나’였다. 월급이 많다는 유혹이 컸던 나의 순진함을 새삼 느꼈다. 원래 이 회사는 초기에 20~30대만 입사하는 연령제한이 있었으나 여성들이 견디다 못해 잦은 퇴사를 하니 이제는 연령제한이 무너졌다고 한다.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내가 일한 회사 중에서는 가장 깨끗했고, 오락과 게임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어 놓으려 했으나 내 마음을 오래 붙들지 못했다. 여기서도 1년 반을 했던가?
다시 회사를 구해야 했다. 회사를 구하기 위해 정보지를 보고 전화 후 찾아간 전자회사는 성서공단 대로변 빌딩 내 사무실이었다. ‘아 용역업체이구나’ 하는 걸 뒤늦게 알았다. 애초에 용역업체인 줄 알았으면 안 갔을 텐데. 돌아서지를 못해 전자회로 기판 만드는 B전자에서 1년을 일했다. 이 회사도 사람 귀한 줄 모르는 건 다를 바가 없었다. 용역은 최저임금에다가 언제든지 들어왔다가 언제 나갈지 모르니까, 회사에 머무를 때 그냥 빡시게 일만 시키려는 것 같았다.
내가 옮긴 회사는 몇 군데 더 있다. 잘 모르지만 그래도 법에 있는 것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얘기하면 찍히고 피곤해진다. 그래서 1년, 2년 이상을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니 경제적으로 참 힘들다. 한 회사에 1년 일해서 퇴직금을 받더라도 다음 일자리 구할 때까지 있다 보면 돈이 다 떨어진다. 직장을 다시 구해서 이제는 저축이라도 해야지 하고서도 1, 2년 있다가 나오니 또 저축을 깨야 한다. 아마 첫 직장이 복지가 좋고 사람다운 대우를 받았다면 그 첫 직장이 평생직장이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첫 직장부터 전자업종에서 시작했으니까, 그래도 전자업종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있어 전자회사를 찾아 돌고 돈다. 그나마 전자업종은 사람을 많이 구한다. 임금은 싸고 일은 힘드니 노동자들이 많이 나가고 해서 일자리 찾기가 쉽다. 그런데 요즘 전자업종은 용역회사를 통하지 않으면 못 들어갈 만큼 죄다 용역이 되어가는 것 같다.
전자업종의 기본급은 죄다 최저임금이지만 상여금이 있는 데는 묘하게 쉽게 못 떠난다. 일하면서 성질이 나 그만두고 싶어도 좀 지나면 추석이니 적지만 상여금이 나올 거고, 좀 더 지나면 1년이 되어 퇴직금이 생기니까 기다리고 이렇게 기대하고 기대하다 보니 떠나지 못하고 십 년씩 이십 년씩 직장에 다니는 언니들을 본다. 옮긴다고 별 다른 곳이 있느냐면서...
일을 해보니 성서공단 임금은 구미보다 낮다. 사실 돈은 사원들이 벌어주는 거고 앉아서 돈 받아먹는 고위직들이 많다. 그러다가 불량나면 현장이 험악해지고 책임전가만 하니 정말 열 받는 게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노조가 한 번씩 생각난다. 휴무도 못 하고 일할 때, 또 이건 당연한 건데 안 받아들여질 때 생각난다. 봄 되어 임금인상 철에도 생각이 난다. 그리고 이익이 나면 성과급 준다는 말을 조회 때마다 입에 달고서는 연말에 언제 그랬냐는 식의 회사 태도를 볼 때 우리도 노조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뭉치고 하면 따낼 수 있는데, 노조가 없으니 어쩔 수 있나?
전자회사의 규모가 작을수록 물량 전쟁이다. 부품 모델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 갑자기 물량 오더가 떨어지면 회사가 계속 오더를 받기 위해서 밤을 새워 맞추라 한다. 그러다가 단종이 되면 일없다고 오후에 집에 가란다. 이런 날은 일당벌이도 못 채우는 날이다. 그런데 그 일감들이 베트남으로 간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오니 그나마 일자리라도 있던 호시절이 지나가면 이젠 일자리 걱정을 해야 하나? 이젠 찍소리도 따지지도 못하는 공장 생활이 기다리는 것 같다.
최근 삼성전자 백혈병 소식은 TV를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 회사에서도 케이스코팅하는 도장반 앞에서 코를 막고 지나간다. 나도 임신하면 기형아를 낳을 수 있겠구나... 그런데도 나는 마스크를 안 쓰고 일한다. 귀찮으니까, 설마 해로울까? 병 걸리겠나? 그래도 아기 가질 때는 전자회사를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내 나이 이제 서른 살이 갓 넘었지만, 전자회사에서는 늙은 축에 든다. 이젠 힘이 들어서 전자회사 그만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데, 내년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또다시 전자회사에 다녀야 하는 것 아닐까? 일은 힘들지만, 신랑 혼자 벌어서 살 수가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