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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10월10일 16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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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술 뜨고 노래 한 자락 듣고 희망의 성서공단으로
[기획연재] (9) 2003년부터 시작한 성서공단 거리 공연

박기홍(성서공대위 집행위원장) sungseo@jinbo.net

기름때 범벅인 장갑도 벗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콘베이어 밸트도 멈추고
공단 거리 곳곳 아로새겨진 그대의 슬픔에
살포시 입 맞추는 따뜻한 봄의 노래를
들어라

-2007년 거리공연에 부쳐 쓴 신경현시인의 시 <그 노래를 들어라> 중에서

성서공단 노동자에게 일과 중 무슨 낙으로 일하느냐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퇴근을 제일 꼽는다. 그다음이 밥 먹는 시간이다. 특히 단순 반복 작업을 요하는 제조업은 더 할 것이다. 일하는 보람, 자기실현 과정으로서 직업과는 거리가 먼 성서공단의 현실이다. 성서공단 노동자 절반은 50인 이하 영세사업장에서 일한다. 영세하다 보니 사내 식당이 없으며 휴게 공간도 제대로 없다. 공단 골목 모퉁이마다 어김없이 식당이 있기 마련이다.

30~40분 주어지는 점심시간에 골목식당까지 뛰어가 줄 서서 기다려 먹는 시간까지 20분 정도 걸린다. 밥 먹는 시간은 20분 중 5분이면 족하다. 거의 흡입 수준이다. 만성적인 소화불량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배를 채우고 나오면 가로수 그늘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박스 종이에 퍼질러 앉아 아픈 다리를 두드리거나, 커피 한잔 하면 점심시간을 끝내는 종이 울린다.

2001년부터 와룡공원에서 시작된 <수요공연>은 더 많은 노동자와 함께하고자 했다. 여름 한 철 매주 수요일 저녁 잔업이 없는 노동자만 받던 수요공연 특혜(?)를 더 많은 노동자가 누리기 위해, 봄, 가을 공단으로 향했다. 수요공연 무대인 와룡공원이 광장이라면 거리공연 무대인 성서공단은 골목인 셈이다. 공단의 어두침침한 공장에서 반나절 일하다 공장 문을 열고 나오면 햇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식사시간이다. 배를 채우기도 하지만 부족한 광합성을 섭취하기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골목의 끄트머리인 공장의 문을 열고 나오면 골목의 광장을 만난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적당량의 광합성이 필요하듯이, 노동자들이 당연히 알고 누려야 할 노동기본권이 배제된 채 자본의 촘촘한 그물망에 갇혀 있다. 이 촘촘한 그물망에 파열을 내며 노동자의 자존감을 되찾고자 했다. 그 짧은 점심시간에 노동자의 즉석 노동상담을 진행하고, 설문과 서명전도 진행한다. 선전물을 받아가는 노동자의 한마디 “밖에서 이렇게라도 떠들어대니까 안에서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공단 곳곳을 떠들썩하게 노래 한 자락과 일장연설까지 하며 돌지만, 여전히 다 돌지 못하고 ‘저곳도 가야 하는데’라는 아쉬움은 있다. 관객이 가수를 해바라기하며 리액션이 있는 것도 아닌, 거의 독백 수준의 거리공연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은밀하게(?) 반응은 온다. 관리자 눈치 피해 가수 앞을 지나가다 팔뚝을 번져 들어 올리거나, 깜빡이는 눈인사로, 얼굴에 핀 맑은 웃음으로, 식당에 후식으로 내주는 설탕맛 나는 식혜 한잔으로, 박카스 한 박스로 노동자의 반응은 각양각색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성서공대위와 연대를 위한 노래모임 <좋은친구들>이 함께 공단 곳곳을 찾아다니며 중식시간 진행한 거리공연은 2003년부터 시작되었다. “밥 한술 뜨고 노래 한 자락 듣고” 짜투리 노래 공연으로 봄, 가을로 진행된 11년째 거리공연은 성서공단에서 희망의 공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13년 성서공단의 가을은 거리공연으로 물들고 있다. 10월 2일(수) 성서공단 1단지 내 스마일푸드 앞에서 와룡배움터 강금영 선생님의 기타 연주와 달콤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이날 맞은편 사장님께서 시끄럽다고 소극적인 항의를 해주셨는데, 마이크로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그 항의가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꼬집으면서 말이다. 달콤한 노래가 시끄러울 리 만무할 터이고, ‘장시간, 저임금의 열악한 성서공단을 노동조합과 함께 바꿉시다’ 정도의 발언이 시끄럽기보다는 불편하다 못해 불안했을 터이다.

깊어가는 가을날 성서공단 구석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에 귀 기울이며, 밥 한술 뜨고 노래 한 자락 듣고 희망의 성서공단으로 만들어가는 길에 동행하자. 늘 함께한 연대를 위한 노래모임 <좋은친구들>의 네 번째 앨범에 들어 있는 노래를 끝으로 남긴다.

밥 한술 뜨고 노래 한 자락 듣고  

노래 좋은친구들 / 글, 곡 박경아

밥 한술 뜨고 노래 한 자락 듣고
우리 모두 희망의 공단거리 만들어가요
밥 한술 뜨고 노래 한 자락 듣고
우리 함께 희망의 공단거리 만들어가요

뭐가 그리 바쁜가요 잠깐만 노래 소리 들어봐요
오늘 만이라도 우리의 희망을 얘기해요
하루 종일 쉴 틈없는 노동자 신세라지만
점심시간이라도 우리의 자유를 느껴봐요

삭막한 공단거리 잠깐만 노래 소리 들어봐요
오늘만이라도 우리의 마음을 열어 봐요
긴 한숨 답답했던 일들도 던져 버리고
점심시간이라도 우리의 자유를 노래해요
 

박기홍(성서공대위 집행위원장) sungseo@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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