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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9월26일 10시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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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활 13년, 그는 여전히 이방인이다
[기획연재] (8) 십년살이 이주노동자를 통해 본 한국사회

임복남(성서공단노조 위원장) sungseo@jinbo.net

[편집자 주] 저임금 장시간노동의 대명사인 성서공단. 성서공단노조, 성서공대위는 10년이 넘게 성서공단 노동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최근 금속노조 대구지부, 민주노총 대구본부 등과 함께 ‘성서공단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이 발족했다. 성서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과 노동, 그리고 애환과 희망을 솔직히 드러내는 ‘성서공단, 노동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격주 수요일마다 <뉴스민>에 약 20회 연재한다.

성서공단에는 약 5천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산업연수제를 시작으로 이주노동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91년. 그 당시에 성서공단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자진출국 하거나 강제추방 되었을 것이다.
여전히 성서공단에는 길게는 13년, 짧게는 한두 달...
이주노동자들이 느끼는 한국에서의 삶, 성서공단의 삶은 어떠할까?
이번에는 두 회에 걸쳐 성서공단 이주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Chapter 1. 한국생활 13년. 그는 여전히 이방인이다.

지난겨울, 나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했다. 쉼의 목적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만났던 이주노동자들...나에게는 동생이고 언니고 오빠 같은 사람들의 삶도 궁금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자카르타 공항.
이주노동자들도 한국에 처음 입국했을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도착하니 드는 건 두려움 반 설렘 반.

21살에 한국에 와서 이제는 33살이 되어버린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발렌티노.
그는 어떻게 해서 한국에 오게 되었을까?

저는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어요.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위로 누나가 한 명 있는데 시집 갔고요, 밑으로 남동생 한 명, 여동생 3명이 있어요. 제가 돈을 벌지 않으면 가족들이 생활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고 싶었던 공부를 포기하고 돈을 벌기로 했죠.

제가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던 회사의 사장이 한국 사람이었어요. 일하다가 사장이 한국에 있는 회사로 초청해서 친구 2명과 같이 왔어요.

주간, 야간 12시간 맞교대로 일해서 첫해에는 30만 원 받았어요. 원래는 40만 원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30만 원만 받고 나머지 10만 원은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던 공장 사장에게 10만 원을 받으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렇게 첫해는 30만 원, 그 다음해 40만 원, 해마다 10만 원씩 인상되었고, 그 공장에서 5년 정도 일을 했어요.

21살이면 이제 막 사회경험을 시작할 시점에서 그는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말도 모르고 아무도 없는 낯선 땅에 온 그. 여행도 유학도 아닌 가족들의 생계에 대한 무거운 짐을 지고 온 그에게 한국의 첫인상은 어떠했을까?

한국 사람들은 높은 사람이고 우리는 밑에서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서 처음 배운 말이 욕이었어요. 집에서 가나다라 배우면서 한국말을 서서히 익혀나갔는데 처음 배운 말이 욕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어요.

단란한 가족사진...한국에서 그는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친구를 통해 우연하게 성서공단노조를 알게 된 후 ‘노동자’ ‘권리의식’이란 말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낯선 사람이 반말로 다가오지 않았던 노동조합에서의 첫 기억은 오히려 신기했다.

한국사람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사람, 외국사람 모두 똑같다고 했어요. 그리고 월급 계산하는 방법도 배웠어요. 한국말도 조금씩 배웠어요. 그러니까 내가 부당하게 당하는 일을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어떤 공장에서 일할 때 이게 갓 20살 된 사람이 40살 된 인도네시아 아저씨한테 반말하고 “야, 야”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한 번은 내 옆에서 일하는데 나한테도 반말했어요. 그래서 기분 나빠서 이야기했어요.

“너 몇 살이야? 나 28살이야? 그런데 너 왜 나한테 반말해. 그리고 저 인도네시아 아저씨 너만 한 아이도 있어. 근데 왜 반말하고 무시해. 저 아저씨는 너한테 말을 높이는데 너는 왜 반말해?”라며 소리쳤어요. 그러니까 그 청년이 저한테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회사에서 밤 10시, 11시까지 잔업을 했는데 월급 100만 원만 줬어요. 그래서 사장에게 이야기했어요. “잔업하면 1.5배 줘야 하는데 왜 월급이 100만 원밖에 안돼요” 그러니까 사장이 “그래? 미안하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월급을 다 줬어요.

외국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말도 잘 못하고 월급 계산도 못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내가 한국말 또박또박하면서 따지니까 회사 사람들이 무시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때 생각했지요. “아~ 가만있지 말고 싸우면 되는구나!!!”

그는 한국에서 13년 동안 여러 회사에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좋은 사장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싸워야지 겨우 대우해 준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이주노동자들도 한국말을 배우고 노동법을 배워서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당하고 있지만 말고 잘못된 것을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조언을 한다.

요즘 인도네시아에 갔다 오는 꿈을 자주 꿔요. 엄마하고 통화를 하고 나면 그 날은 꼭 그런 꿈을 꿔요. 인도네시아에 가고 싶지만, 지금은 갈 수가 없어요. 아직 동생들 공부를 더 시켜야 하고, 결혼도 시켜야 해요.

그리고 이제는 인도네시아에 가면 적응이 안 될 것 같아요. 한국생활이 너무 몸에 익어서 인도네시아에 가서 살 수가 있을까? 사실 두렵기도 해요. 그런데 나는 자유롭지 못하잖아요. 언제 잡혀갈지도 모르고 미래가 불투명해요.

10년을 한국에 살면서 이제는 공장사람들과 농담도 하고 반쯤 한국사람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이 땅에서는 이방인이다.

그의 고향 자카르타에서 만난 가족들은 여행 간 나를 3일 내내 끌고 다니면서 자카르타 곳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한국에서 아들, 형, 오빠 한국친구가 온다는 소식에 모든 일을 멈추고 3일을 그렇게 시간을 내어 준 것이다. 가난하지만, 사람에 대한 정을 한없이 보여준 가족들.

자카르타 공항에서 한국에 오는 비행기를 타던 날, 그의 어머니는 말없이 나를 꼭 안아 주셨다. 그리고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10년 동안 보지 못한 아들이 보고 싶으셨는지 그렇게 한동안 어머니는 나를 안고는 놓아주시지 않으셨다.

자본이 만들어 놓은 가족 간의 생이별. 과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국에서 아들 친구가 왔다고 동네에 자랑하신 어머니. 떠나올 때 동네사람들 모두가 나와 배웅을 해 준다.

임복남(성서공단노조 위원장) sungseo@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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