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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황성동에 위치한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 공장 문 앞. | | |
2009년 사측의 공격적 직장폐쇄를 시작으로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이 개입한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처음 이루어진 경북 경주시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발레오만도). 사측은 징계와 해고를 남발했고, 노동자들은 공장 맞은 편 천막 농성장으로 쫓겨났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고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노조)가 낸 노조사무실 출입 가처분 신청이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졌다. 이에 노조는 지난 7월 9일부터 20일까지 노조 사무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20일, 노조와 사측은 ▲지문인식기 체크 후 조합 사무실 출입 ▲조합원 차량 등록증 제출, 차량출입증 발급, 운전석 유리 부착 후 출입 ▲회사는 조합 업무 수행 가능하도록 조합사무실 비품 협조 8월 5일까지 완료 등에 합의했다.
이 합의는 지켜지고 있을까. 합의 내용 이행일인 8월 5일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9월 13일 기자가 농성장을 찾았을 때 이 합의는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아주 교묘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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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공장 내 노조 사무실 출입 보장을 요구하는 노조와 이를 저지하는 사측 | | |
해고된 29명의 노조원은 애초에 사측이 합의를 제대로 지킬 거라고 확신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측의 인권탄압으로 국가인권위 조사까지 진행됐던 터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발레오 공장의 출입문은 세 군데가 있다. 이 가운데 북문은 사무직, 임원, 기업노조 간부들만 출입을 허용한다. 사측은 금속노조 조합원에 한해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접촉을 할 수 없는 후문 출입만 허용하고 있다.
차량 출입에도 까다로운 절차를 들어 조합원 차량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조합원 명의로 등록된 차량만 출입 허가를 내주기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노조 전용 차량과 가족 명의로 등록된 조합원의 차량은 출입할 수 없다.
또한, 노조 사무실 비품 협조 내용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합의문에는 ‘업무 수행 가능하도록 비품 협조’라고 명시돼 있지만, 현재 사측이 제공한 비품으로는 업무가 불가능하다. 시내 전화만 가능한 전화기 1대, 구형 컴퓨터 1대, 조합원 숫자보다 적은 의자가 제공됐고, 팩스, 냉난방 시설과 정수기는 전무하다.
배재식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사무장은 “애초 노조 사무실에 있던 비품의 원상회복도 안 된 수준이다. 업무 수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기업노조 사무실에 지급된 비품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며 회사의 합의 미이행을 비판했다.
이처럼 사측의 태도는 변화가 없지만, 현장 분위기는 노조 사무실 출입 이후 변하고 있다. 이전에는 얼굴을 마주쳐도 아는 척도 안 하던 이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고, 노조에서 나눠주는 소식지도 받아 읽기 시작했다.
배재식 사무장은 “기업노조로 건너간 조합원들이 만나면 우리(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가 맞는데 식구들 생각에 함께 못해 미안하다고 말한다”며 “노조 사무실 출입 이후 조합원과 만남이 확대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배재식 사무장의 말대로 기업노조가 들어선 후 노동조건이 후퇴한 것과 금속노조의 노조 사무실 출입이 맞물리면서 그동안 억눌려 있던 공장 내 노동자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발레오 사측은 성과급 차등 지급뿐 아니라, 수당성 상여금도 차등 지급하고 있다. 극소수는 이전보다 많은 상여금을 받지만, 다수 노동자들은 상여금이 떨어지고, 더러는 거의 못 받는 경우도 생겨났다. 추석 연휴(14~17일) 가운데 첫날인 14일은 노동자 전체가 연가를 내고 공장을 쉰다. 올해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다음은 토요일기 때문이다. 이전 단협안에 따르면 추석 연휴 앞뒤 가운데 하루를 유급휴가로 적용했지만, 기업노조가 맺은 단협안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이후 하루를 유급휴가로 정하고 있다.
천막을 찾은 날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에서는 부당정직·해고에 대한 선고 판결이 있었다. 모두 승소했다. 4년이 지난 가운데 더디지만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제 노조는 복지시설 출입 가처분 신청도 준비 중이다.
추석 연휴에도 5개 팀은 돌아가며 천막을 지킨다. 해고 이후 4번째 맞는 추석이 지나고 나면 ‘절망의 공장’ 발레오에 복직과 민주노조 회복이란 희망이 찾아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