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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9월18일 11시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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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 (33)
누가복음 15:1-10 "회개할 사람은 누구인가?"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역사를 회고하거나, 우리 시대 경험을 되돌아볼 때, 절실한 아쉬움이 있다. 큰 해악을 끼친 사람들이 자신의 악행에 대해 진실한 반성이 없는 점이다. 한마디로 회개하지 않는 거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빌붙어서 나라를 팔아먹은 놈, 자국민을 악독하게 괴롭힌 친일분자들이 해방 이후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거나, 용서를 빌었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크게 해 먹은 놈이나 저 말단에 있는 놈이나 한결같이 해방 이후에는 미국에 붙어서 되레 더 잘 나갔다.

국정원 선거범죄가 점점 더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도 박근혜는 유체이탈 화법으로 모르쇠한다. 회개하기는커녕, 끊임없이 성동격서식으로 공작정치를 벌이고 있다.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뻔뻔하고 더 교활하고 더 양심불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 크게, 쿨하게 "내가 이런 잘못을 했습니다. 이 일은 크게 잘못한 일입니다. 이 일로 인한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하고 정말 뉘우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그러질 못한다. 그렇게 하면 당장은 죽을지 모르지만, 영원히 살 텐데 말이다.
 
오늘 복음말씀을 짧게 요약하자면,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들자,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이,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투덜거린다. 그러자 예수께서 비유말씀을 했다. 바로 '잃은 양의 비유'와 '되찾은 드라크마의 비유'이다. (드라크마는 데나리온처럼,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한다.)

여기서 잠깐, 누가복음 저자의 약자를 위한 저술방식을 주목하자. 누가 저자는 여자에게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다. 그래서 남자를 등장시킬 때는 꼭 연이어서 여자를 등장시킨다. 그런 예가 매우 많다. 오늘 본문에서도 "어떤 사람(남자)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라고 한 뒤에, "어떤 여자에게 드라크마 열 닢이 있는데"라고 했다. 고대 유대사회에서 여자를 등장시키는 이야기방식은 추문이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를 이야기하는 복음저자에게는 하등 구애받을 것 없는 새로운 가치지향이다. 예수도는 바로 여기에 기반한다. 당대의 관습이나 구부러진 전통에 구애받지 않고 인간평등, 인간해방을 절대기조로 삼는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말씀도 인간평등, 인간해방 기조 위에 이야기를 풀어간다.

▲양 찾은 목자

'양 백 마리 중 한 마리 잃은 양 이야기'는 교회출입을 하지 않은 사람도 익히 들었을, 꽤 알려진 비유말씀이다. 이 두 비유의 교훈은 명백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15:7) 악인이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면 하늘이 기뻐한다는 말씀이다.

문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이 누구냐'이다. 예수는 이 비유말씀을 누구에게 하는 것인가? 표면적으로 보면 세리와 죄인들이 회개의 대상자인 것 같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투덜거리는 바리새와 율법학자들에게 자신과 세리와 죄인을 변호하기 위하여 이 비유말씀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해석이 맞는가? 이 비유말씀은 세리와 죄인이 전에는 죄인이었으나 이제는 회개하여 돌아왔음을 증명하는 알리바이인가?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와 허물이 있고, 인간적으로 흠결 없는 사람은 없으므로, 세리와 죄인들도 회개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렇다면 바리새와 율법학자들은 어떤가? 그들은 회개가 필요없는 의인인가? 그들은 의인 아흔아홉에 해당하는가? 회개해야 한다면 누가 더 회개해야 할까? 세리와 죄인인가? 아니면 바리새와 율법학자들인가?
 
분명 세리는 지탄받는 직업이었다. 같은 동족을 수탈하는 로마제국의 앞잡이였다. 그런 세리 중 확실하게 회개한 사람이 삭개오이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습니다"(누가 19:8)라고 양심고백을 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기뻐했다.

죄인들도 역시 허다한 허물이 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 십일조도 안내고 금식도 안 하고, 안식일도 안(또는 못) 지켰다. 그래서 아예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죗값을 받았다. 동족들이 퍼붓는 모욕과 멸시, 배제와 소외로 충분히 값을 치렀다. 그런 외부의 정죄가 아니라도 스스로 내리는 자책만으로도 죗값은 충분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새로운 윤리를 선언했다. 하나님나라는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이나 동족의 멸시에 괴로워하지 않도록 그들을 구원했다. 예수가 그들과 허물없이 식탁교제를 나누었다는 것은 그들이 이전의 삶과 결별하고 돌이켜서 하나님나라에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런데 바리새와 율법학자들은 어떤가?

마태 23장은 예수께서 바리새와 율법학자들을 사정없이 규탄하는 말씀이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어리석고 눈 먼 자들아!"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하겠느냐?" 같은 문구를 12번이나 반복하면서 혹독한 심판선언을 한다.
 
바리새와 율법학자들은 율법상 하자 없다고 자부하는 부류이다.

누가 18:9-14에 있는, 그 유명한 바리새의 기도를 보자. 9절을 보면,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하고 남을 멸시하는 몇몇 사람에게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하고서는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온 두 사람을 소개한다. 하나는 바리새, 또 한 사람은 세리이다. 거기에서 바리새는 기도하기를,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이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바칩니다." 아무리 자신을 잘 났다고 평가해도 이렇게 기도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자기 의가 대단히 깊다. 정말 치유 불가능한 중증이다.

 
▲범죄를 기획하고 나팔불고 실행하는 집단들

그러나 그들은 마태 23:23 말씀처럼,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인 정의, 자비, 신의는 헌신짝취급하면서 자신들에게 잇속이 되는 제물만 탐했다. 법과 제도 뒤에 숨어서. 그러므로 진정으로 회개해야 할 사람은 바리새와 율법학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회개해야 할 존재라는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이 구원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면 구원의 문이 가까이 온 것이지만, 구원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면 대책이 없다. 너무나 완고하고, 지독한 자기 의에 빠져서 민중들을 심판하기에 바빴지, 자신들은 민중보다 더 죄가 많은 인간이라는 성찰은 전혀 하지 못한다.

예수의 비유말씀은 바로 그들을 향한 말씀이다. 이미 세리와 죄인은 회개하여서 하나님나라 품 안에 들어왔다. 하지만 바리새와 율법학자들은 여전히 회개의 절박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은 이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스스로 회개하지 않는 이들을 하나님이라고 해서 강제로 회개시킬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런 구제불능에 빠진 사람이 회개하였을 때, 하늘의 기쁨이 얼마나 크겠는가! 양 한 마리, 한 드라크마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이다. 진짜 사람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벗과 이웃을 불러 잔치를 열지 않을 수가 없다. "여보게들, 같이 기뻐합시다. 구제불능으로 여긴 아무개가 이제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소. 얼마나 기쁜 일이오. 같이 기뻐합시다." 

오늘날 우리가 매일 목격하듯이 이 사회에서도 진정 뉘우쳐야 할 인간들이, 권력의 철옹성 안에서 호가호위하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권력이 천년만년 갈 줄 알고, 영혼까지 팔아넘기며 범죄를 기획하고, 나팔 불고, 실행하며, 나라를 특히 민주주의를 말아먹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이들도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주지시키며, 그들의 악과 범죄를 깨우치고 바로 잡아야 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아야, 회개할 때 정확하게 잘못을 고백할 수 있지 않은가. 그때를 위하여 목자가 또는 여자가 찾을 때까지 찾는 수고를 다 하고, 마침내 찾아서 기뻐하듯이 우리도 민주시민의 몫을 열심히 감당하자. 그래서 모두가 기뻐하는, 민주주의가 활짝 꽃피는 나라를 만들자.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시국대회에 참석한 대구시민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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