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활동보조서비스노동자(보조인)다. 곧 있을 추석을 기대하며 들뜬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휴일에도 일 할 수밖에 없는 보조인들에게 추석은 묘한 압박과 박탈감을 준다.
나는 사무직부터 공사판 막노동까지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해봤지만, 활동보조서비스(활보)만큼 까다로운 일은 없었다. 활보에는 내가 해봤던 여느 일과는 다른 독특한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감정노동이었다. 보조인의 감정노동이란 단순히 활동보조서비스이용자(이용자)와 감정을 주고받으며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넘어, 넓게는 이용자를 사회적 관계망과 연결하는 역할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다.
보조인의 노동이 이용자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필수적일 경우가 많을뿐더러, 이용자는 보조인과의 인간관계를 통해 인간관계에의 갈증을 해소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관계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용자는(특히 중증장애인일 경우) 충분한 인간관계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보조인의 역할은 이용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앞서 말한 넓은 범위의 감정노동이 모두 보조인의 당연한 의무로 강제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종종 보조인은 감정노동을 초과의무로 생각한다. ‘여느 아르바이트처럼 일만 하면 됐지 왜 감정노동까지 해야 하고 남의 인간관계까지 신경 써야 하냐?’는 식이다. 실제 이용자의 욕구와 무관하게 스스로 초과의무라고 생각하는 일을 칼같이 거절하거나 모른 체 넘기는 보조인도 있다.
그렇다고 감정노동에 충실하지 않은 보조인을 닦달할 수는 없다. 보조인이 열성을 다해 이용자의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이유는, 보조인이 선뜻 초과의무를 짊어질 만큼 활보노동의 대가가 충분치 못하다는 점이 크다. 법정 정규근로시간인 월 208시간(하루 8시간×5(일)×4(주)+연장근로 12시간×4(주))을 초과해 근무하는 경우 활보 중계기관에서 초과근무수당(통상임금의 1/2 이상이 가산된 금액)을 부담해야 하기에, 사실상 보조인은 매월 208시간 이상 일하지 못해 최대한 일 해도 급여는 월 120만 원을 넘지 못한다. 부족한 급여는 보조인의 동기를 자극하지 못하고 소극적이게 만든다. 감정노동을 충실히 하느냐 마느냐는 보조인 개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기에, 이용자는 이용자대로 충분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보조인은 보조인대로 고충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활보가 절실한 이용자 또는 이용자의 가족이 보조인을 옥죄는 방식으로 욕구를 충족시키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인격성을 배제한 채 보조인을 ‘서비스 상품’으로 취급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 내가 활보를 제공했던 한 이용자도 이와 비슷했다. 그 이용자는 보조인인 나를 단 10분도 앉아서 쉬도록 하지 않았으며, 버스로 3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전동휠체어로 이동하며 따라오도록 지시하는 바람에 반나절가량 걷다 뛰길 반복했던 적도 있다. 그런 날이면 나도 활보를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용자나 보조인 중 누군가는 희생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실제로 누군가 희생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용자와 보조인의 권리는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노동조건의 개선 없이는 보조인 개인의 감정노동은 착취당하는 수밖에 없으며, 착취당하는 보조인은 이용자의 온전한 권리를 담보할 수 없다.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보조인의 급여 인상과 활보 시간 확충, 활보 이용자 본인부담금 해소에 정부가 나서는 것이다. ‘취지는 공감하는데 예산이 가능하냐?’라고 물을 수 있다. 활보 운영에 연간 3,099억(2012년 기준)원이 들어가는데, 민주당에 의하면 국정원에 들어가는 ‘예비비’만 매년 4,000억 원이라고 한다. 낭비분을 줄여서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는 현실적 답변은 하고싶지 않다. 그전에, 활보처럼 장애인의 인권과 보조인의 노동권이 걸린 문제에 예산이 없다는 말로 눈감을 수 있는지 묻고싶다. 정말 예산의 문제인가? 아니면 인식의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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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9일 대구시청 앞에서 '활동보조서비스보장'과 '장애인차별 철폐'를 외치는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