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뉴스민>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연히 접하는 이들, 주변 사람 이야기를 통해 찾는 사람 등 뉴스민 독자는 다양하겠지만, 가장 확실한 독자는 후원회원이다. 2012년 5월 1일 창간한 뉴스민은 매달 소중한 후원회비를 내는 독자들의 힘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1순위 독자인 후원회원이 바라는 점과 이야기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뉴스민은 매주 수요일, 금요일마다 뉴스민의 애독자인 후원회원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삶과 조언을 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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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서구 비산동에 위치한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에는 89년도에 창립된 공공운수노조 염색공단지부(당시 염색공단노조)가 있다. 이번 후원회원은 염색공단노조 초대 위원장이자 지금은 염색공당지부장인 한쌍태 지부장이다.
한 지부장은 인천조선에서 일하던 중 87년도 공단 내 열병합발전소를 건립할 당시 건설현장에 출장 왔다가 얼떨결에 공단에 취직해 노조를 만들고 또 얼떨결에 위원장까지 맡게 되어 우스갯소리로 “후회가 막심하다”는 한 지부장은, 한 지부장이 노조를 만드는 바람에 “공단도 그 당시 한 지부장을 얼떨결에 입사시킨 것이 후회가 막심했을 것”이라 덧붙였다.
염색공단노조는 91년 4월 산업단지가 금호강에 공장 폐수를 무단 방류하는 사건을 폭로하고 150억가량의 폐수부과금을 공단에 물리는 등 큼직한 투쟁과 더불어, 임금도 노조 결성 당시 노조가 없을 때에 비해 150%가량 인상하는 등 커다란 성과를 이룩했다.
하지만 이후 노조는 공단의 외압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한 지부장은 "공단이 보복조치로 노조 전임자 3명 중 2명을 해고 하는 등 탄압을 자행했다"고 했다.
한편 97년 IMF 한파가 몰아칠 당시 희망퇴직과 해고의 칼바람에 간부 포함 13명만이 남게 된 염색공단지부는, 2000년도 공단 측이 연봉제 전환을 강행하자 다시 투쟁하며 조합원들을 모아, 지금은 공단을 상대로 비조합원과 퇴직자를 포함한 170여 명이 공단을 상대로 통상임금 소송을 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한 지부장은 역시 노조 활동이 예전만 하지는 못하다고 했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당시 노조 활동가들에게는 수배와 구속이 만연할 정도로 혹독한 시절이었음에도 투쟁으로 돌파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만한 외압이 없어도 노동운동이 스스로 위기를 안고 있다는 것. 한 지부장은 “민주노총 중앙의 헛발질로 위상도 떨어져 ‘민주노총 소속이다’고 당당히 말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전 만큼 투쟁력이 빠졌기 때문에 위기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민을 평가해달라는 요청에 한 지부장은 “하루에도 두세 번 접속하는데, 충격을 받았다. 기존 신문에서 다루지 못하는 내용을 찾아내 자유롭게 다룬다는 점이 훌륭하다”며 “뉴스민이 아니면 대구지역에서 구미 KEC에 무슨 일이 있는지, 경주 발레오에 무슨 일이 있는지 입소문 말고는 알 수 없었을 것”이라 격려했다.
한 지부장은 “언론 매체도 정파에 영향받기 쉬운데 뉴스민은 초정파적으로 다양한 기사를 다뤄 놀랐다”고 말했다.
또한, 한 지부장은 “편집위원의 논평을 통해 노동운동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도 훌륭하다. 뉴스민의 논평이 문제가 된 적이 많은데, 이는 잘잘못을 떠나 노동운동에 다양한 의견을 표출한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돼야 할 것”이라며, “노동운동이 운동 내부에 위기를 안고 있을 때 그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