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종탑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재능교육 노동자 [출처=참세상] | | |
8월 26일 모처럼 기쁜 소식을 접했다. 마지막으로 고공농성을 하던 재능교육 노동자 오수영, 여민희 두 사람이 노사합의가 이루어져서 혜화동 성당 종탑을 내려왔다. 쟁의에 돌입한 지 2076일, 종탑농성 202일 만이다. 이 긴 세월을 견딘 재능교육 조합원들에게 무조건 지지를 보낸다.
예수는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고 했지만, 오늘날 노동자들은 되레 살기 위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하늘로 올라가야만 하는 매우 역설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노동자들을 위험한 높은 자리, 하늘에 올라가도록 만드는 현실도 원인을 따지고 보면, 예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욕심을 쫓는 인간의 욕망이 한편에 있다.
오늘 복음말씀 첫 절은 보기 드문 장면이다.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 집에 음식을 잡수시러 들어가셨다" 사이가 안 좋은 예수와 바리새가 함께 식사한다. 이게 무엇을 뜻할까?
예수께서 바리새와 함께 식사했다는 말은 누가복음에만 세 번 나온다.(7:36, 11:37, 14:1) 다른 복음서에는 없다. 다른 복음저자는 이 사실을 몰라서였을까? 누가복음에만 세 번씩이나 같은 장면을 도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역사예수가 바리새와 함께 식사자리에 앉았을까? 마태 23장을 보면, 예수는 바리새에 대해 매우 혹독한 심판선언을 한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매 단락마다 바리새파는 빠지지 않고 규탄당한다. 예수 자신이 바리새파를 극도로 경원했다. 이런 상대와 자주 식사를 한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보안수사대에서 조사받다가 점심때가 되면, 그들과 같이 식사하는데, 어찌나 어색하던지! 체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바리새 입장에서는 어떤가? 바리새는 예수와 제자들이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여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늘 비방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는 거요?"(누가 5:30)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누가 15:2)
바리새는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두 실정법-안식일법과 정결례법-에 누구보다 까다로운 집단이다. 세리와 죄인은 이 두 가지 실정법에 항상 하자가 있는 부류들이기에, (그래서 죄인이다) 이들과 어울리는 예수와 제자들도 똑같이 정죄당했다. 더군다나 예수의 별명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아닌가! 바리새가 이런 사람과 식사자리를 했다는 것은 실제라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복음말씀에는 예수가 바리새에게 교훈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바리새가 예수말씀을 듣겠는가! 턱도 없는 소리다. 요즘으로 비유하자면, 통합진보당과 그 앞에서 때려잡자고 퍼포먼스하는 집단들 관계이다. 무슨 말을 해도 튕겨 나갈 뿐이다.
그럼 뭔가? 복음서 성격 중 하나는 공동체에 대한 응답이다. 예수의 입을 빌어서 공동체에 당면한 문제를 풀려고 했다. 그때 인용하는 이야기 소재는 복음서 저자의 설정일 가능성이 많다. 설정이지만, 역사예수가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면서 부딪혔던, 기득권 세력들이 보여줬던 태도와 반응이야말로 후대에도 매우 유용한 반면교사이다.
누가저자의 목적은 바리새에게서 자주 봤던 폐단들을, 교회 안에서도 보게 되는-특히 지도자의 오류를- 안습에 대한 복음서의 처방전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저자는 공동체에 직면한 문제를 풀기 위해 대리인으로 바리새를 등장시켰다. 그래도 첫 독자들은 그 말이 누구를 향한 말인지 다 안다.
오늘 예수말씀 요지는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이다. 높은 자리에 앉으려는 시도 자체가 부질없다. 사람을 높이고 낮추는 일은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인위적으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는 시도 자체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이 인생의 지혜를 깨달을진저!
최근 국정원 선거공작 국정조사에서도 확인하였듯이, 김용판이나 원세훈을 보자. 그 자리유지가 얼마나 한시적이고 유한한가. 권불십년이 아니라 권불오년도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권력유지를 위해 온갖 부정한 수를 썼다. 그러나 이제는 그 권력에 팽당해서 이리저리 불려다니고, 재판에서 실체가 다 밝혀지고, 대중에게는 뻔뻔한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혔다.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았던 이명박은 온 나라가 뒤숭숭한데, 해남까지 내려가서 4대강 사업으로 조성한 골프장에서 놀다가 취재진이 오니까 부랴부랴 숨기 바빴다. 하는 짓 하고는!
높은 자리에 앉으려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
덜 익은 성품, 덜 된 인격으로 오로지 높은 자리에만 오르려 하는, 그래서 결국 오른 사람들이 내포한 위험성이다. 그릇이 안 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 만큼 어리석고 괴로운 일도 없다. 그 폐단을 모든 사람이 겪기 때문이다.
평생 정상에 오르려고만 했기 때문에 아래를 이해하지 못한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데만 익숙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 병폐와 파행은 높은 자리에 앉은 작자들이 아래를 이해하거나 상생하지 않고 오로지 높은 자리만 유지하려고 욕심을 부리는데 원인이 있다. 박근혜씨는 그 욕심이 지나쳐서 21세기 대명천지에 '유신부활'이라는 말을 듣고 있으니 얼마나 기막힌 현실인가!
아래를 이해하지 못하는 습성은 사람관계도 왜곡되게 한다.
오늘 복음말씀에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 있다. "네가 점심이나 만찬을 베풀 때에, 네 친구나 네 형제나 네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그들도 너를 도로 초대하여 네게 되갚아, 네 은공이 없어질 것이다.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을 불러라."(14:12-13)라고 했다.
가족이나 이웃 간의 친목도모를 금지하라니! 어째서 예수는 이렇게 비현실적인 말씀을 하는가? 더군다나 바리새는 정결례법을 의식해서, 예수가 지목한 사람들-가난뱅이, 장애인들을 초대할 수가 없다.
고대나 지금이나 어떤 사람이 누구를 초대하면 초대자 자신의 명예가 높아진다. 그러므로 주최자는 잘난 사람을 초대하기 마련이다. 그럼 초대받은 사람도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초대한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서로 영예를 누린다. 복음말씀은 사람관계를 이렇게, 이해득실을 따지고, 대가를 기대하는 상거래방식으로 하지 말라는 말이다.
최근 달서구의회에서 일어난 일이 딱 그렇다. 절친이었던 의장과 운영위원장이 이해관계가 틀어지자, 의장이 운영위원장의 비리를 폭로해버렸다. 의회여직원과 놀러가서 성추행을 했다고. 정말이지 경솔 그 자체이다. 이런 사람들이 한 구의 살림을 감시한다니! 진위를 다 떠나서 그 여직원의 인권과 입장은 뭐가 되겠는가? 여기도 지독한 갑을관계가 있다고 지부장에게 들었다.
이처럼 이권이 걸려 있는 사람관계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은 항상 바깥으로 밀려나기에 십상이다. 즉 약자들-가난한 사람들, 장애인들, 소수자들, 온갖 을들 같이, 기득권 중심사회에서 쓸모없는, 대상화로만 여기는 모든 사람은 자연스럽게 배제당한다.
그러나 하나님나라 질서는 이들에게 우선권이 있다. 누가복음은 낮은 자들을 위한 메시지로 넘쳐난다.
"그는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1:52-53) 이외에도 6:20-26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
오늘날 지도자가 욕심에 빠져서 자신이 몸담은 공동체에 큰 걸림돌이 되는 일은 부지기수로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상석을 좋아하는 바리새를, 초기공동체 지도자를 공격하기는 쉬워도, 오늘 우리에게도 냉엄하게 잣대를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적으로 우리 시선과 몸을 낮은 곳으로, 민중이 고통당하는 현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진정 나의 구원을 위해서라도.
참된 명예는 낮은 자들 속에 있다. 지금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본분을 수행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하늘은총이 넘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