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저임금 장시간노동의 대명사인 성서공단. 성서공단노조, 성서공대위는 10년이 넘게 성서공단 노동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최근 금속노조 대구지부, 민주노총 대구본부 등과 함께 ‘성서공단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이 발족했다. 성서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과 노동, 그리고 애환과 희망을 솔직히 드러내는 ‘성서공단, 노동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격주 수요일마다 <뉴스민>에 약 20회 연재한다.
사장에게 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폐지하라! 폐지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2013년 8월 18일...그 어느 날보다 뜨거웠던 날.
대구 시내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어디 몸이 불편한지 목발에 몸을 의지한 채, 집회대오로 보이는 사람들 가장 앞에 서서 무언가를 열심히 외치고 있다.
그냥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그는 왜 그렇게 가장 앞에 서서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일까?
2009년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처음 왔다는 그는 네팔사람이다.
네팔에서 한국말 시험을 치고 한국에 가서 공장에서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그는 한국말 시험을 쳤다.
그런데 그가 한국에 와서 처음 한 일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김을 채집하는 일이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배를 타고 나가서 김을 채집하는데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사장에게 맞거나 욕을 먹기가 일쑤. 그는 이야기한다.
“하루는 허리가 아파서 이야기하고 기숙사에 쉬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와서 버럭 소리 지르면서 ‘그렇게 아프면 너거 나라 가라’고 했어요. 그래도 사람이면 아프다고 누워있으면 어디가 아픈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사장은 그러지 않았어요. 사장에게 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너무나도 견디기 힘들어 사업장 이동을 하고 싶었지만, 사업장 이동을 해도 똑같은 뱃일을 할 건데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마음으로 그냥 도망 나왔다. 그래서 그는 현재 미등록체류상태다.
“내가 목발을 짚고 걷기 힘들지만, 사람들하고 같이 그렇게 외치고 싶었어요. ‘고용허가제 폐지하라. 노동권리 보장하라.’ 내가 당해봤잖아요. 고용허가제가 우리에게 어떤 제도인지. 고용허가제는 우리를 사람취급 하지 않아요. 지금은 내가 미등록 신세지만, 앞으로 많은 이주노동자가 그렇게 한국에 올 건데 나 같은 일은 당하지 말아야지요”
“집에 가라”는 말이 제일 무서워요.
“어느 날 사장님이 월급에서 퇴직금 명목으로 5만 원을 공제한다고 했어요. 얼마 전 우리 공장에서 나간 이주노동자가 퇴직금을 달라고 이야기를 했나 봐요. 그래서 사장님은 퇴직금 줄 돈이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대신 월급에서 퇴직금을 공제한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종이에다 싸인을 요구했죠. 그래서 나는 싫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사장님이 ‘그러면 이 종이에 싸인할래? 아니면 8시간만 일할래?’라고 물었어요. 8시간만 일하면 정말 돈이 얼마 되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그 종이에 싸인했어요”
2011년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그는 주․야간 맞교대 근무를 해서 한 달에 적게는 140만 원 많게는 170만 원을 버는데 고향에 130만 원씩 보내준다고 한다. 매달 170만 원씩을 받는 게 아닌데 한 달에 2~30만 원으로 어떻게 사느냐고 했더니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거의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저 주말에 친구들과 성서노조 사무실에 모여서 돈 만 원씩 걷어서 요리해 먹는 게 전부라고 한다.
그도 고용허가제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와서는 한국의 생활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한국에 와서 처음 들어간 공장은 고령의 한 공장. 양파망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점심시간도 쉬는 시간도 없이 하루 12시간씩 일을 하는 것도 모자라, 퇴근시간도 정해진 시간보다 30분 더하면서 그 30분에 대한 임금은 지급되지 않았다. 회사에 일이 없을 때는 사장이 하는 농사일을 했다. 일거리가 없으면 한국인과 달리 이주노동자들은 농사일에 투입되었다.
그렇게 일을 하지만, 이주노동자는 최저임금을 받고, 한국인은 최저임금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았고, 상여금도 한국인에게 지급되었지만,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지급되지 않았다.
“한국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더 힘든 일을 하는데 한국사람보다 임금이 적은 게 싫었어요. 보너스도 한국사람은 주지만, 우리는 없어요. 그래서 사장님한테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사장님은 ‘일하기 싫으면 너네 나라 가’라고 이야기했어요. 저는 이 말이 제일 무서워요. 동생들 공부시키려면 한국에서 더 일해야 하는데 자꾸 우리나라 가라고 하니깐요”
그는 회사를 옮기고 싶었지만, 회사를 옮길 수가 없었다. 사장이 동의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기계에 손가락을 다쳤다. 사장은 산재처리를 하지 않는 대신 사업장 이동서류에 싸인을 했다. 그는 이야기한다.
“손가락을 다친 것보다 이 회사에 일해야 하는 게 더 힘들었어요. 그래서 사장이 사업장 이동서류에 싸인하는 조건으로 산재처리를 하지 않았죠”
“지금은 성서공단에서 일하고 있어요. 지금 공장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성서공단은 나아요. 가까이 시장도 있고, 마트도 있고,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도 있고 성서노조도 있으니깐요”
고용허가제 시행 9년.
한국정부는 고용허가제가 선진적인 제도라고 떠들어대지만, 이주노동자들에게 고용허가제는 죽음의 공장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사슬에 불과하다. 어느 사장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국 사람들은 일하러 와서 하루도 못 견디고 나가요. 그런데 고용허가제가 참 좋지. 외국아들이 마음대로 사업장 이동을 못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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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케미칼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 카본가루로 얼굴이 시커멓게 덮혀 있다. | | |
얼마 전 대구 사회에서 많은 이들을 경악케 했던 D케미칼 사건 역시 불법이 두려워 공장 밖으로 한 발짝도 떼기 어려운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을 강제 노동시켰던 사례이다. 카본가루로 온통 얼굴이 시커먼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여론의 뭇매로 사업장 직권이동이 되지 않았더라면 허파가 새카맣게 타들어 죽어서야 공장을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주노동자에게 노동할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장들에게 값싼 임금노예를 부릴 수 있게 하는 고용허가제.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돈 많이 벌어서 자기나라 가는 돈벌레, 일벌레만이 아님을 이주노동자들과 딱 한번이라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알 수 있다. 이주노동자도 정주노동자와 똑같다. 땀 흘려 일하는 같은 노동자이다.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노예취급 당하는 것을 감내하며 참아야 할 이유는 없다. 임금과 노동조건을 보면서 내가 일하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고, 일하는 시간 외에는 삶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거대한 공장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마을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