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푸레나무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면
물푸레나무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물푸레나무,
부르다보면 입 안 가득
푸른 물이 고이는
물푸레나무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유순한 눈을 가진
잎사귀 아래 그늘도
자꾸 자꾸 푸르게 번져가는
물푸레나무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낡은 분노만으로 이루어진
내 슬픔을 달래어
어디로든 돌려 보 낼 수 있다면
물푸레나무,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 요즘은 고개를 숙이는 일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다. 촌에 살면서도 손에 흙 한번 제대로 묻혀 보지 않은 나는 고사리 밭이며 고추밭 등에서 그리고 물 들어찬 논에서 허리를 굽히거나 쭈그려 앉아 일을 하는 할매 할배들을 볼 때 마다 부끄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천상의 고귀한 이론과 우상에 고개를 숙이는 일, 그것은 미친 짓이다.
아무리 고귀한 이론과 우상에 고개를 숙여 본들 그것들은 우리에게 쌀 한 톨 물 한 방울도 주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는 일, 그것은 이렇게 땀 흘려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 농민과 민중들에게로 향해야 한다. 고개를 숙이는 일, 그것을 나는 다시 이 곳에서 생각한다.
신경현(시인, 노동자) 그는 '해방글터' 동인으로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2008)', '따뜻한 밥(2010)'을 출간했다. 그는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용접일을 해왔다. 2011년까지 성서공단노조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지리산 실상사 산자락으로 들어갔다. 도시를 떠나 산골에서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하고자 한다.